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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홀랑 빠져든 재미 2가지

퇴직 후 행복한 삶을 위한 충만한 시간 보내기

by 김성일 Feb 19. 2025

매일 출근도장 찍는 곳


2023년 2월 퇴직 후 3년째, 요즘 두 가지 재미에 빠져 지낸다. 첫 번째는 도서관에서 노는 일이다. 도서관에 가면 주로 책이나 잡지를 읽고 영화 DVD도 즐겨 본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건 간행물실의 잡지다. 비치된 일간 신문, 시사 주간지, 문학이나 영화 전문지, 에세이를 눈길 가는 대로 들춰본다. 거기엔 세상 사는 이야기들이 수북하다. 뜻밖에 다양한 사람들을 금방 만날 수 있다. 혼자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도서관에 가면 내 또래나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과 자주 스친다. ‘출근 도장’을 찍는 퇴직자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출산율 감소와 고령화사회 진전 등으로 젊은 층 인구는 줄어드는 대신 중장년층 이용자가 가파르게 증가한 탓이다. 도서관은 복합 문화서비스 공간뿐만 아니라 가성비 좋은 식당과 휴식 공간으로도 인기 최고다. 자격증 공부를 하며 평생 현역을 꿈꾸는 사람들도 보인다.



절친과 함께 즐기는 시간


두 번째 더 즐거운 건 친구들을 만나는 일이다. 매달 정기적으로 모이는 친구들이 서너 팀 있다. 퇴직 후 나는 연락처를 대폭 정리하고, 폭보다 ‘깊이’에 비중을 두기로 했다. 지금 얼굴 보는 사람의 숫자는 줄어든 대신 예전보다 자주, 긴 시간을 함께 보낸다. 그만큼 단순한 근황이 아니라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고민을 하는지 속이야기를 나눈다.


지난주 만난 두 친구와는 보통 오후 3시에 만나 저녁 식사까지 함께한다. 입사 동기인데 퇴직 후 꾸준히 만난 덕에 이제는 글자 그대로 ‘절친’이 됐다. 이번엔 연남동 인근 경의선 숲길에서 걷기 시작해 공덕시장의 순댓국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대화 주제는 소설과 요리였다. 한강과 무라카미 하루키, 현재 중국의 최대 문제 작가라는 옌롄커의 소설이 화제에 올랐다. 내가 잘 모르고 읽지 않은 작품까지 즉석에서 듣고 배우는 자리였다. 허구적인 소설이 오히려 실제 삶보다 강렬하고 현실적이라는 데 우리의 의견은 모아졌다. 이어서 집에서 할 만한 나만의 요리에 관해 숨은 노하우(?)도 공개하면서, 조리법은 단톡방에서 공유하기로 했다.


타인의 생활을 접하면 새로운 걸 배우게 되고 나의 세계 또한 확장한다. 혼자 노는 것도 재미있지만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은 나를 기분 좋게 자극한다. 특히 마음과 결이 통하는 사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들과 상호 연결성을 느끼며 내 일상에 활력이 솟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행복의 조건


행복을 좌우하는 필수요건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친밀한 인간관계’가 꼽혔다. 행복의 조건을 밝혀내기 위해 1938년부터 진행한 하버드대의 장기 연구 성과인 『세상에서 가장 긴 행복 탐구 보고서』(2023)의 결과다. 그 관계는 가까운 가족이나 친한 친구뿐만 아니라 직장 동료를 포함한 약한 유대관계까지 적용된다.


희로애락의 원천은 대부분 사람이다. UCLA 리버만 교수의 2013년 연구에 의하면 우리 일상의 대화를 엿들어보면 70%는 다른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고 한다.


하지만 적절하고 균형적인 관계 맺기가 쉽지는 않다. 인간관계는 행복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불행의 씨앗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숫자가 많다고 좋은 게 아니라 필요할 때 내 곁에 있어야 좋은 관계다. 현직일 때 다양한 인맥은 원활한 직장생활에 필수지만, 인생 후반부에는 삶의 질 측면에서 그 중요성이 한층 배가된다.


사람들 사이에 행복이 있다 (사진: pixabay)사람들 사이에 행복이 있다 (사진: pixabay)



소소한 일상의 행복 만들기


『행복의 기원』(2014)의 서은국 교수는 행복의 정의를 사진 1장에 담으면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라고 말한다. 한국인이 가장 즐거움을 느끼는 행위는 ‘먹을 때’와 ‘대화할 때’의 두 가지라는 연구 결과가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좋은 사람과 충만한 시간을 보내는 게 핵심이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말한다. 화끈한 한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소소한 기쁨을 자주 느껴야 한다는 뜻이다. 인생에서 로또에 당첨되는 행운은 보통의 사람에게 극히 희박하게 일어난다. 설사 대박 행운이 오더라도 쾌락은 일시적이고 결국엔 계속 뭔가로 채워져야 한다. 화려한 파티나 이벤트보다 일상의 자잘한 즐거움이 반복되는 게 중요하다.


세상은 혼란스럽고 갈수록 사람들의 피로감은 깊어진다. 이럴 때일수록 나만의 방어법과 생존의 지혜가 필요하다.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내 일상을 소소한 기쁨으로 채워가는 것이다. 혼자 놀든 함께 놀든 우리 삶에서 사람은 중요하다. 우선은 가까이 있는 소중한 사람과 자주 어울리며 마음을 나누는 게 급선무가 아닐까 싶다. 나이 들면서 갈수록 절실하게 느끼는 생각이다.





*표지 사진: 남산도서관 디지털라운지. 요즘 도서관은 카페처럼 힙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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