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대구 대현동 주택가에 짓던 이슬람 사원 건축이 중단되었다. 밀집 지역에 종교 시설이 건설되면서 생활 불편과 재산권 침해를 호소하는 주민들의 요구에 대구 북구청이 공사 중지 행정명령을 내린 것이다. 시민단체와 건축주는 건축 중단이 종교적 편견과 혐오에 따른 부당한 조치라며 소송을 냈고, 12월 1일 법원(대구지법)은 북구청의 처분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반대 주민들은 여전히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구청은 물리적 충돌을 우려해 갈등 중재를 고심하고 있다. 이슬람 사원 공사는 재개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인구 100명 중 44명이 종교를 가지고 있다. 2,155만 명의 종교 인구 중 98%가 3대 종교인 개신교, 불교, 천주교 신자다. (*2015년 통계청 조사). 나머지 원불교, 유교, 천도교와 민족종교까지 7대 종단이 매년 종교문화축제를 열 정도로 우리는 종교 간 화합과 협력이 잘 이뤄진다. 이슬람의 교세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국내 신도는 외국인을 포함해도 26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이태원에 1976년 건립한 이슬람 중앙성원을 중심으로 전국에 총 26개 사원이 있다.
이태원의 이슬람 서울중앙선원
이슬람은 의외로 우리와 인연이 깊다.
한자권 밖에서 한국(신라)이 처음으로 교류한 외부인은 아라비아 상인들이기 때문이다. 서기 845년 이븐 후르다드비(Ibn Khurdadbid)가 펴낸 <왕국과 도로 총람>은 신라를 살기 좋고 풍요로운 나라로, 특히 금이 많은 곳으로 묘사한다. 서역 먼 곳에서 들어와 신라에 정착한 무슬림 상인이 신라 향가 <처용가((處容歌)>의 주인공인 처용의 모델이라는 설도 있다.
현대에 와서도 중동 건설 붐(1974~1980)은 우리의 경제성장에 숨통을 틔어줄 특급 호재였다. 1977년 서울시와 이란의 수도 테헤란시가 자매결연을 맺으면서 이름 붙인 ‘테헤란로’는 이제 누구나 선망하는 노른자위 땅의 상징이다. 강남 불패의 핵심 거리, IT와 첨단 비즈니스의 거점으로 거듭났다.
스포츠에서도 관계가 남다르다. 월드컵 길목마다 중동의 고원과 모래바람은 넘기 팍팍한 난적으로 껄끄러웠다. 하지만 이슬람 국가인 터키와 우리는 끈끈하다. 2002년 월드컵 3-4위전은 승패를 넘어서 형제 같이 진한 우정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1950년 6·25 전쟁 발발 시 참전한 유엔군 중 터키는 유일한 이슬람 국가다. 16개국 중 네 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견해서 형제의 나라로 불렸는데, 이 인연은 실제 국내에 무슬림 공동체가 형성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스페인 알람브라 궁전과 터키 카파도키아
개인적으로도 여행지에서의 기억이 많다. 20여 년 전 자동차로 여행했던 스페인 남부는 유럽에서도 가장 독특하고 이질적인 곳이어서 여행자의 인기가 높다. 알람브라 궁전을 비롯해 그라나다와 세비야 등 750여 년에 걸친 이슬람의 역사와 문화유산으로 볼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세계적인 관광지인 인도의 타지마할과 터키의 카파도키아도 명소 중의 명소다. 터키의 동굴 극장에서 만난 이슬람 신비주의 교파인 '수피즘(sufism)'의 세마 댄스는 몰입과 무아지경의 극치를 보여줬다. 내게는 잊을 수 없는 빛나는 순간으로 남아 있다.
인도네시아,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해 이슬람 국가를 여행할 때 나는 틈나는 대로 주변의 모스크를 찾았다. 현지인들을 따라 경배의 예를 갖추며 분위기를 느껴보기도 했다. 여행지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문화적 종교적 관심도 작용했을 것이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사람과 문화를 만나는 건 여행자의 설렘이자 행복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여행을 통해 이슬람 문화와도 자연스레 친숙해졌다.
이슬람을 상징하는 모스크(터키 이스탄불과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레기스탄 광장)
이슬람 종교는 610년 아라비아 반도에서 탄생한 후 계속 성장해왔는데 인구증가율을 고려할 때 앞으로 종교 중 가장 빠른 확산이 예상된다. 현재 140여 나라 19억 명의 신도(무슬림) 중에 60%가 아시아에 있다. 오늘날 이슬람이 주목을 받는 것은 단지 종교만이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에서 중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무슬림 지역은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경제력이 탄탄하고 소비성향이 높다. 세계적으로도 고성장의 매력적인 시장으로 꼽힌다. '만수르'가 상징하는 중동의 오일머니는 글로벌 프로젝트 투자와 세계적인 프로스포츠팀 인수에서도 큰손으로 위력을 떨치고 있다.
한류와 관광 측면에서도 이슬람은 전략적인 의미가 크다.
근래에 우리와 관계도 가까워지고 있다. 방한 무슬림 관광객은 2019년 약 107만 명으로 전체 외래객의 6%지만 2016년 이후 동남아 시장이 눈에 띄게 성장하는 단계다. 방한 중국 관광객이 크게 늘면서 한국 관광이 그간 중국 의존도가 커졌는데 결국 '한한령(限韓令)'으로 타격을 입었다. 동남아와 중동의 이슬람권 방한 관광은 지역적인 다변화와 시장의 외연 확대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한류의 중동 확산은 놀라울 정도다. 2003년 드라마 <대장금>은 중동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란에서는 무려 90%의 시청률을 기록.) 중동 여성들에게 장금은 롤모델이나 정신적인 멘토로 떠올랐고, 한국 음식 전파에도 절호의 기회로 작용했다.
BTS는 2019년 10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비아랍권 가수로는 최초로 스타디움 콘서트를 열었다. 현장은 문화 향유의 주체로 떠오른 (검은 아바야를 입은) 여성들의 환호로 가득 찼다고 한다. 국가 차원의 문화 개방과 사회 변혁과 맞물려 중동의 한류가 빠르게 점화되는 분위기다. 세계 경제와 문화 관광의 허브를 지향하는 아랍에미리트에서도 한류와 연계된 이벤트 유치 노력이 활발하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발간한 <2020 한류, 다음>은 이 같은 이슬람 문화권 속 한류 담론을 의미 있게 조명하고 있다.
중동의 한류는 이미 본격화하고 있는데 이슬람은 우리에게 여전히 낯설고 이질적이다.
아무래도 그간 경제와 외교, 스포츠로 맺은 관계가 종교나 문화와는 따로 노는 느낌이 있다. 테헤란로는 익숙하지만 이태원의 이슬람 사원은 어쩐지 멀어 보이는 것 같다. 테러리즘이나 무장 투쟁이 연상되는 이슬람 극단주의에 대한 거부감과 부정적 인식도 깔려 있지 않을까. 일부 과거 사례의 일반화보다는 이슬람 국가와 문화에 대한 차분하고 총체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한류의 다음 진출지라는 측면에서 먼저 상대국 정서와 분위기를 살펴보고 이에 적절히 대응하면서 상호 교류의 폭을 확대해가는 것이다.
무슬림은 독특한 예배 관습과 식습관으로 여느 종교와 비교해서도 여행지의 수용 태세가 중요하다. 한류 콘텐츠에서 간접적으로 접하던 한식을 직접 체험해보려는 수요가 높아지는데 한식이 이슬람 율법에서 허용한 ‘할랄’에 부합하는지 따져야 한다. 현재 국내 관광 접점의 무슬림 인프라는 69개소로 집계된다(기도실 56, 할랄 인증식당 13). 국내의 수용환경은 세계 각국 중에 현재 34위 수준인데, 지속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한국관광공사의 <2020 방한 무슬림 관광 실태조사> 참고.
인사동의 한국관광명품점(한국관광협회중앙회 운영)
이제 우리는 다문화사회를 살고 있다. 국내 체류 외국인은 2019년 말 사상 처음으로 250만 명을 돌파했다. 전체 인구의 4.9%에 해당한다. 요즘 서울의 거리를 거닐다 보면 외국 음식점을 어렵지 않게 발견한다. 서울 도심 곳곳에서 세계 각국의 사람과 문화를 만날 수 있다. 광희동 중앙아시아 거리, 이태원 무슬림 마을, 창신동 네팔 마을, 서초구 서래마을, 가리봉동과 대림동의 차이나타운, 혜화동의 필리핀 거리 등.
우리가 나가는 만큼 그들도 들어오는 것이다. 한류가 세계로 퍼질수록 세계도 우리에게 다가온다.
결국 한류가 지속 가능하려면 일방적인 전파가 아니라 문화의 상호 교류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문화의 교류는 당연히 상대가 있다. 그들의 문화와 종교를 존중하고 배려해야 우리에게도 되돌아오는 것이다. 문화의 다양성과 종교의 다원주의 관점이 절실한 이유다. 이런 게 바로 지속 가능한 한류의 출발점이자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까.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미래 지향적인 공통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우리의 문화와 그들의 문화가 만나 보편적인 인류의 자산으로 발전하는 미래의 모습이 그것이다.
* 표지사진은 인도 아그라의 타지마할. 이슬람국가인 무굴제국의 5대 황제 샤 자한이 죽은 왕비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사당 성격의 건축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