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사라진 시대에 히트상품으로 '여행'이 선정되었다.
<트렌드 코리아 2021>에서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선정한 2020년 대한민국 10대 트렌드 상품 얘기다. 갑자기 막혀버린 해외여행을 대신한 국내 여행 열풍을 반영한 것이다. 자동차를 활용한 차박,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발굴 등 새로운 여행 트렌드가 부상한 것을 조명하여 ‘국내 여행’이 포함되었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는 사라지지 않는다.
코로나 19가 세계적 유행(팬데믹)으로 우리의 일상을 뒤덮고 하늘길이 막힌다고 해도 사람들은 여행을 꿈꾼다. 여행의 방식이 달라지는 것뿐이다. 그렇게 국내 여행이 떠올랐고 사람들은 안전한 여행을 찾아 떠났다. 그들은 인파가 붐비는 곳을 피해 자연으로 갔고 조용한 곳을 찾았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지친 심신을 어루만졌다. 차박과 캠핑은 대박 상품으로 떠올랐고, 숨겨진 보물 같은 장소가 사람들의 눈길과 발길로 이어졌다. 휴식과 힐링은 그렇게 계속되었다.
코로나 19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하지만 우리 시대만의 재난은 아니다.
대규모의 질병이나 감염병은 시대를 넘어 반복된다. 동시에 어김없이 역사의 변곡점으로 작용하면서 인류의 생활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14세기 중엽 유럽을 강타한 페스트는 중세 봉건제를 무너뜨린 불씨가 되었고, 잉카와 아스텍의 두 고대 문명은 생전 처음 만난 천연두라는 음험한 불청객에게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스페인 독감은 유럽의 퇴조와 미국의 시대로 이어졌다. 스페인 독감의 변종은 2009년 신종플루로 우리를 다시 찾아왔다.
감염병은 인류에게 피할 수 없는 생태적 변수다. 자연을 개조하는 인간의 유별난 능력은 생태계의 질서와 균형을 끊임없이 파괴했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과 위기, 재난 상황 중의 하나가 감염병이다.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다. 약 46억 년 전에 지구가 탄생했고, 그로부터 약 10억 년 후에 최초의 단세포 동물이 등장했다. 현재 지구 상에서 가장 고등 생물인 인류는 맨 나중에 태어난 포유동물에 속한다. 유인원 시절부터 잡아도 수백만 년 정도로 지구 나이의 10만 분의 1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지구가 오늘날 온난화를 비롯한 온갖 환경변화에 직면하여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오로지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구를 못살게 굴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코로나 19로 하늘길이 멈췄다. 공식적으로는 2020년 3월부터 외교부 여행경보에 따라 내국인의 해외여행과 방한 외국인 여행이 전면 중단되었다. 4,600만 명의 국제관광 수요는 사실상 정지상태에 있다. 문제는 미래를 쉽게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태가 종식되더라도 자유로운 여행이 재개되고 관련 산업이 정상화되기까지는 상당 기간이 걸릴 전망이다.
방역과 경제는 코로나 19라는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가는 두 개의 수레바퀴다. 우리는 높은 시민의식과 신속하고 체계적인 의료시스템, 의료진의 헌신과 봉사로 방역 선진국의 기틀을 다졌다. 이제는 코로나 이후를 내다본 발 빠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안전이 보장된 K-관광의 기치 아래 한국형 안심여행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행은 좀 억울하다. 코로나 19의 확산단계나 사회적 거리두기의 상향 때마다 ‘여행 자제령’이라는 경고를 받았다. 2020년 8월 중순에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상향 시에는 정부가 추진했던 숙박과 여행 할인권 사업에 대해 일부에서 코로나 19 확산의 주범처럼 공세를 펼치기도 했다. 정부는 사업을 바로 중단했다.
여행은 집단 감염 경로가 아니다. 중앙일보가 빅데이터 전문업체인 사이람과 코로나 19 확산의 집단 감염경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분석 대상인 7430명(2020.1.20~8월 말) 중 4480명(60.3%)이 집단 관련 확진자였다. 집단적인 감염경로 상위 7곳은 종교시설(46.3%), 집회(5.5%), 유흥주점(5.4%), 방문판매(4.6%), 요양시설(3.6%), 금융(3.5%), 직장(3.4%)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단계별 방역조치가 시행되는 유흥시설·노래연습장 등 '중점관리시설'에 여행 관련 업종은 하나도 없다. 결혼식장·PC방·학원·마트 등 '일반관리시설' 중에 놀이공원과 워터파크만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사람들의 이동을 뭉뚱그려 여행으로 생각했을까? 여행은 이동에 가깝고 이동을 수반하지만, 모든 이동이 여행은 아니다. ‘이동 자제령’이라고 해야 적절할 것이다.
여행하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짐을 꾸려본 사람들은 안다. 특히 코로나 19라는 재난 상황이라면 ‘여행해도 될까’라며 안전을 생각한다. 지금 상황에 걸맞은 이동 수단과 여행지, 누구와 갈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현명한 여행자의 몫이다. 그들은 가족 중심의 소규모로, 안전수칙을 지키면서 조용한 곳으로 떠났다. 바로 여행 없는 시대에 여행이 히트상품이 된 이유다. 캠핑장이나 골프장에서 발생한 소수의 감염 사례는 이런 기본을 지키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행지에서 모르는 그룹끼리 어울리거나 골프를 친 후 단체 뒤풀이를 한 사람들이었다.
여행과 질병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지금 우리가 고통을 겪고 있는 코로나 19라는 미증유의 감염병도 한편으로는 성찰의 계기가 된다. 우리 인류가 현재의 생활방식을 자연 친화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환경파괴와 감염병의 폐해는 갈수록 심각해질 것이다.
모든 분야에서 ‘지속 가능성’이 대주제로 설정되어야 한다.
인간이 자연에 기생하며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조화롭게 상생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떠들썩하게 몰려다니며 방문지의 평화를 깨뜨리는 관광객들의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 지역과 상생하는 공정여행의 목소리도 높다. 머리를 맞대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기다. 코로나 19를 계기로 바쁜 현대 생활 속에서 잊고 살았던 자신과 주변을 차분하게 돌아보게 된다. 균형과 절제, 품격과 배려를 생각하는 그런 여행을 떠나보자.
여행은 죄가 없다. 문제는 인간의 탐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