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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환 Mar 20. 2022

두 개의 피켓이 있습니다. 어느 것을 들어야 할까요?

연대할 것인가? 이기적으로 남을 것인가?

매일 밤 9시가 되면 우리 세 식구는 둥굴게 둘러앉아 손을 맞잡는다. 그런 다음 눈을 감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기도를 드린다. 종교적 신념에 의해 기도를 하지만 단순히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기도 시간은 아이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말할 기회를 제공한다. 온종일 친구들 사이에서 독일어만 사용하던 아이가 부모와 함께 한국어로 생각하고, 말하는 법을 터득해 나간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종종 기도 시간을 통해 딸의 생각을 들여다보곤 한다. 초등학교 3학년인 딸의 기도 내용은 매일 복사-붙여넣기를 반복하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나름의 진정성이 있다. 얼마 전부터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딸의 말을 그대로 옮겨 적으면 이렇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그만 공격하게 해주세요.”

딸에게 푸틴이 누구이며 우크라이나가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아느냐 물어봤다면 아마 모른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아이돌 가수가 꿈인 9살에게 푸틴이 관심 가는 인물일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아이가 사뭇 진지하게 기도할  있는  학교에서 배운 솔리다리텟(Solidarität) 덕분이다. 독일어 솔리다리텟은 우리말로 ‘연대 뜻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세계가 러시아의 만행을 규탄했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경제적 제재를 가했다. 민간인의 목숨마저 위협하는 참혹한 전쟁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분노했다. 정치가 푸틴과 러시아 정부를 압박하는 사이 민간에선 전쟁 피해자들을 감싸 았다. 그들과 함께 울어주고 고통을 나누어 짊어지는 연대(Solidarität) 정신을 보여주었다. 연대의 정신은  실재적이어서 직접 피부에 와닿을 정도였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모은 구호품을 실은 트럭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도 우크라이나를 위한 연대에 동참해달라는 메일을 보내왔다.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기도는 말이 아닌 행동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피란민들에게 보낼 생수와 생필품을 구매해 학교에 전달했다. 그렇게 아이들이 직접 가져온 구호 물품은 5톤 트럭을 가득 채웠다. 학교 로고가 박힌 트럭이 운동장을 떠나 베를린에서 수백 킬로 떨어진 폴란드-우크라이나 국경으로 향하는 모습을 지켜본 아이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학부모들은 아이들과 함께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베를린에서 진행된 반전 시위에 십만 명이 참석했다는데 참석자의 절반은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이었다. 우리도 그들과 연대해 한목소리로 외쳤다. 푸틴 스톱!

엄마의 목마를 타고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함께 할게요"
유모차를 탄 아이들. 질좋은 교육은 부모의 말과 행동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엊그제 기도 시간에 딸은 새로운 내용을 추가했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친구가 내일 우리 반에 와요. 말은 안 통해도 다같이 재밌게 놀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기도를 마친 아이는 설레는 마음으로 새 친구에게 선물할 학용품을 챙겨야겠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묵직했다. 비슷한 어려움에 놓인 사람들을 한국의 뉴스에서 보았다. 지난해 탈레반을 피해 입국한 아프가니스탄 특별 기여자의 아이 중 입학 대상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이유는 한국인 학부모들 반대 때문. ‘우리 아이들 맘놓고 학교 보낼 수 있는 대안을 달라!’, ‘먼저 외국인 학교부터 고려하라!’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선 학부모들의 모습이 화면에 비쳤다. 인터뷰를 자처한 한 학부모는 아프가니스탄 아이들로 인해 교육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에 더해 이슬람 난민이 함께 살면 치안이 불안하다며 애먼 민주주의 실종을 들먹였다. 학교 갈 날만 기다렸다던 아프가니스탄 아이들과 그 부모들의 마음을, 차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세계화 시대에 발맞춰 아이들을 글로벌(?)하게 키워야 한다면서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교육학 박사이자 행복한심리상담센터의 지현영 소장은 그의 저서에서 “아이는 부모의 말을 먹고 자란다”고 말한다. 자! 여기 두 개의 피켓이 있다. 하나는 ‘연대’라는 단어가 적혀 있고, 다른 하나는 ‘이기심’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다. 어느 피켓을 들 것인가. 내가 드는 피켓이 어느 것이냐에 따라 내 아이가 그대로 자라간다면.

교육의 질은 부모가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성숙한 사람만이 고통당한 자와 함께 울어줄 수 있다. 그것이 진정한 연대(Solidarität)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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