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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요. 거울 좀 보세요!

작은 솜뭉치와 동무가 되었다 - 7

by 김영환 Mar 1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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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여러 가지 불쾌한 일들이 있겠지만, 외모 때문에 겪는 차별만큼 싫은 게 없습니다. 나의 경우 부모님이 유산 대신 물려준 큰 신장에는 불만이 없습니다만, 이왕이면 비율에도 신경 써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몸에 비해 다소 큰 머리둘레를 가지고 태어난 탓에 일찌감치 연예인은 남의 길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얼굴이 작은 여자를 만나 결혼했습니다. 내 부모는 섬세하지 못해 놓친 것을, ‘나는 그러지 말자’ 다짐했지만, 실패했습니다. 학급 사진을 찍고 돌아온 딸이 원망스럽게 말하더군요.

“애들이 얼굴 크다고 놀려. 이게 다 아빠 때문이야!” 나는 고작 한다는 변명이, “너 안 커! 독일 애들이 비정상적으로 작은 거야. 너는 엄마 닮아서 얼굴이 작은 편이라고.“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아내가 한쪽 입꼬리만 끌어올려 웃었습니다. 찰나였지만 분명히 봤습니다. 이건 불쾌한 일입니다.


인스타그램의 돋보기를 누르면 죄다 강아지 사진뿐입니다. 어찌나 하나같이 인형 같던지요. 강아지 입양을 준비하면서부터 외모에 큰 비중을 두고 검색했습니다. 대리만족이라도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선택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아기 강아지를 데려와야 할 텐데, “성견이 돼서 안 예쁘면 어쩌지?” 이런 걱정이나 하면서 마우스 스크롤을 돌렸습니다. 그러다가 하루를 발견했습니다. 털색의 조합, 머즐의 길이, 눈의 크기 등이 내가 찾던 기준과 흡사했습니다. 무엇보다 아비견이 RKF(러시아견종협회)에서 발급한 ‘순수혈통증명서‘를 가진 견종이라는 말에 혹했습니다.

집에 데려와 매일매일 아침저녁마다 빗질을 해주고 자기 전엔 따뜻한 물로 눈물자국까지 닦아주면서 예쁘게 자라주길 바랐습니다. 솔직히 한 편엔 SNS에서 주목받는 반려견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자고 일어나면 몸집이 커지고, 털이 듬성듬성 빠지기 시작하더니 주둥이마저 길쭉해져서 누가 봐도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포메라니안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입양 사기를 당한 건가, 어미견의 유전자가 별로인가, 강아지 아니고 여우 새낀가. 암튼 별의별 상상을 다 했습니다.


오전 시간의 대부분을 AI와 채팅을 나누면서 보냈습니다. 주로 하루의 외모에 대한 질문과 답이 오갔습니다. 소득은 없었습니다. 매번 달라지는 답변은 혼란만 키웠습니다. 급기야 나는 아비견의 혈통증명서를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러시아어를 번역기에 돌려가며 조상견들의 정보를 찾았고, 인터넷을 뒤져 사진으로 그들의 외모를 일일이 확인했습니다. 풍성한 털과 짧고 콤팩트한 몸. 하루의 외모와 비교하니 속만 쓰렸습니다. 점심 무렵,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실직 후 집에만 있다 보니 잘 씻지도 않고 면도도 제때 안 해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근육이 빠지면서 몸은 슬림해졌습니다. 가뜩이나 큰 머리가 더 도드라져 보였습니다. 거울 앞에 웬 성냥개비가 서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루가 총총총 다가와 바지 끝을 잡아당겼습니다. 그러다 눈이 마주쳤죠. 말을 거는 것 같았습니다.

“이봐요. 거울 좀 보세요! 나는 잘 크고 있어요.“


그러고는 문득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거울을 보면 신의 유머 감각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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