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해가 짧아졌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여름도 미련 없이 또 떠나가나 보다. 그 위세를 떨친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지겨웠던 무더위도 막상 보내려니 또 아쉬운 마음이 든다.
어둠이 깊어지는 계절에 당도하니 나는 또 마음이 살랑거린다. 이 지랄 같은 마음은 “나 가을타”라는 한마디로 용서받을 수 있으니 나는 맘껏 마음으로 바람이 불게 내버려둔다.
그동안 내 맘에 많은 집을 짓고 살았던 이들의 모습을 떠올려도 보고 그들과 함께한 시간 속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언제 그렇게 많은 이들에 마음의 방을 내주었는지 나는 꽤나 높이 쌓아 올린 건물의 건물주인 셈이다. 돈으로 따지면 ‘이게 다 얼마야’ 싶다.
내 마음을 드나들며 선물을 남기고 간 이도 쓸모없는 마음 조각들을 말도 없이 남기고 간 이도 있다. 선물은 아직도 마음 깊이 새겨 두어 때로는 마음을 따뜻하게도 했다가 또 한순간 뭉클하게 만든다. 버리고 싶은 마음 조각들도 나름 제자리를 꽤 차고앉아 비 오는 날 가끔씩 마음 한편을 후비고 철마다 존재감을 드러내며 욱신거린다. 허물어 버렸다고 생각했던 자리도 아직 잔해로 남았다.
그래도 빈집 투성이인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이렇게 좋았던 세입자, 나빴던 세입자 다 거쳐 제법 수완 좋은 건물주가 된 것 같아 좋게 생각하려고 한다. 공실률 낮은 건물의 건물 주니 나름 성공한 셈이다.
이번에 한국에 가보니 집값이 너무 올라 다들 걱정이 많아 보였다. 의식주 중 하나인 집이 해결안 된 삶은 여러모로 고달프다. 내 몸뚱이 하나 누일 지붕 딸린 집 하나 얻기도 하늘의 별따기인데 누군가의 마음속에 집을 짓고 살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 누군가가 쉬이 들어와 집을 잘 짓고 살 수 있도록 나는 내 마음의 토양을 비옥하게 가꾸고 쓸고 닦는다. 나의 사랑이 나의 벗들이 내 마음속에 집을 짓고 그 지붕 아래서 고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밤이 깊어지는 가을의 어느 날, 저마다의 가슴속 비질 소리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