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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 Amelie Jul 11. 2023

14. 남프랑스 여행 마지막에 만난 베르동 협곡

아멜리 인 베르동 협곡(Gorges du Verdon)

20년 전 엄마와 남동생과 여 할 때 잠깐 들렀던 곳이 니스였다. 기차에서 내려 니스 해변으로 곧장 와 물에 뛰어 들었다. 그때에도 이곳에는 브래지어를 벗어 던진 여성들이 태닝을 하고 바다에서 수영했다. 그 때 중 2였던 남동생은 해변에서 너무 놀란 나머지 프랑스를 방탕한 나라라 여겼다. 20년 전이니 그렇게 보일만도 하겠다.


여행이 막바지에 달하고 하루 정도 여유가 생겼다. 전 세계 여행객이 모이는 니스 해변에도 몸을 담가 보자는 생각에 니스 해변으로 다시 왔다.


지중해 바다의 파란빛 그라데이션은 보고 또 봐도 지겹지 않고 파도를 타고 또 타도 재밌다. 동남아에서 만난 해변들은 대부분 모래사장인데 이곳은 조약돌 해변이다. 밟고 다닐 때 발바닥이 조금 아파서 그렇지, 바다에서 놀다 나와서 모래에 뒤엉켜 찝찝한 느낌은 덜하다. 수영복에 모래가 들어가는 일이 없어서 물로 대충 씻고 다니는 것도 한결 수월하다.


프랑스 사람들은 옷을 잘 입는다. 비싸고 좋은 옷이라기보다 본인들의 개성이 잘 드러나게 입을 줄 알고 꾸밀 줄 안다. 내가 미국에 오래 산 건 아니지만 미국인들에게서 이런 인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에 이곳 사람들의 감각이 남달라 보인다.


나도 앞으로 내 개성을 한껏 뽐내는 스타일로 치장 아닌 치장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바다에서 노는 건 매일 해도 지겹지 않다.

 

20230709


남프랑스 여행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날이다. 니스에서 액상프로방스(Aix-en-Provence)로 이동하며 베르동 협곡에 갔다. 베르동 협곡 (Gorges du Verdon)은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중 하나인 무스티에 생트마리 Moustiers Sainte Marie) 옆에 있다.


이 협곡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협곡으로  유렵의 그랜드 캐니언이라 불린다. 캐나다 반프(Banf)에서 만났던 커다란 호수 같기도 하고, 프랑스 중부 산지에서 만난 르쀠(Le Puy)와 꽁끄(Conques)의 작은 도시가 떠오르기도 했다.


찾아보니 베르동 협곡은 약 이억 오천만 년 전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수백만의 해양 생물이 살고 있던 바다가 오늘의 프로방스 지역이다. 남프랑스는 대부분 바다였던 곳이 해수면 위로 올라온 셈이다.


협곡에서 큰 아이가 좋아하는 카약을 한 시간 동안 탔다. 싱가포르에서 바다 카약을 했던 경험으로 아주 신나게 노를 저었다.


노를 저으며 위를 바라보니 절벽처럼 깎인 바위들이 만든 절경이 그림 같다. 구불구불한 물줄기를 따라 오르며 지리 시간에 배운 ‘침식’과 ‘퇴적’이란 단어를 떠올려 본다. 억겁의 시간 동안 자연이 만들어 낸 절경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자연 속에서 인간은 그저 모래알 같아 겸손하게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다.


카약과 통통배를 타고 협곡을 다니는 사람 중 몇몇은 바위 위로 올라가 다이빙하며 놀고, 구명조끼를 입은 채 수영을 하며 논다. 나도 수영복 차림이었다면 벌써 물에 들어가 신나게 수영하고 놀고 있을 텐데 하는 마음에 못내 아쉬웠지만 카약 국가 대표 선수가 된 듯 가열차게 노를 젓고 방향을 조정하며 뱃놀이했다.


출발지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호수에서 수영하고 싶다고 했다. 자신 있게 말하는 모습이 마치 지구 끝까지 헤엄쳐 갈 기세다. 팬티와 구명조끼만 입고 물에 들어가라 하니 겁도 없이 뛰어든다.


몇 분 후 헤엄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 느꼈는지 카약 뒤 꽁무니를 손으로 잡아 붙들기 시작했다. 아무리 노를 저어도 카약은 앞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은 이리저리 잘도 다니는데 우리 카약은 한 곳만 맴맴 돈다.


갈 길은 멀고, 카약은 점점 무거워지고, 노를 젓는 건지 바닥을 파내는 건지 알 수가 없는 팔 동작이 이어진다. 예정된 시간보다 30분이나 더 노를 저어 출발한 곳에 돌아왔다.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 들어와 위약금 5유로를 내고 카약을 반납했다. 당분간 어린이는 겁 없이 혼자 물에 들어가는 일은 하지 않을 것 같다.



2023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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