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만큼이나 복잡다단한 아이들의 세계... 부모의 역할은 뭘까요
저녁 준비를 마치고 시간을 확인하려 핸드폰을 보니 부재중 전화 한 통이 와 있었다. 이 시간에 누가 전화를 했을까 하는 마음에 발신자를 체크하고 화들짝 놀랐다. 발신자는 아홉 살 큰 아이의 학교 친구, 큰아이에게 이 사실을 알리니 아이의 얼굴에 반가움과 약간의 긴장이 묻어났다.
친구에게 전화를 할지 말지에 대해 가족회의 수준의 대화가 오갔고, 아이는 메시지를 보내 친구가 전화한 이유를 물어보겠다고 했다. 문자를 보내자 핸드폰 버튼을 잘못 눌렀다는 회신이 곧바로 왔다. 아이는 ‘Bye(안녕)’를 무미건조하게 보냈고, 아이의 친구는 마지막 인사조차 하지 않은 채 짧은 대화는 끝이 났다.
평소 같았으면 아이 친구의 부재중 전화 한 통에 이렇게까지 놀라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놀랄만한 시기이다. 큰 아이는 그 친구와 최근 2주 가량 데면데면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베프에서 대화를 잃은 친구로
2주 전 월요일이었다. 스쿨버스를 내려 집으로 걸어오는 큰아이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터져오르는 울분을 참아내기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미간에 힘이 잔뜩 들어간 얼굴에서, 평소 같지 않게 얇고 떨리는 목소리에서, 초조함에 갈 곳을 잃은 손짓에서 아이의 불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 A가 나랑 말을 안 해. 점심 먹을 때도 내 옆에 앉지 않았어. 엄마, 나 너무 답답해.”
“왜 너랑 말을 안 하려고 하는지 A한테 물어 봤어?”
“응, 개인적인 이유라고 했어. 그러고는 아무 말도 안 해.”
큰아이는 답답한 마음을 누르고 숙제를 하고, 책을 읽고, 저녁을 먹었다. 그날 밤, 잠을 청하려 누운 아이는 편안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곤 이렇게 물어봤다.
“엄마, A가 내일도 나랑 이야기를 안 하면 어쩌지?”
“오늘 네가 엄청 힘든 날을 보냈구나. 제일 좋아하는 친구가 말을 안 하니 네 마음이 얼마나 답답할까. 친구가 말을 안 하는 이유라도 알면 이렇게까지 답답하진 않을 텐데. 내일 학교 가서 상황을 다시 한번 보자. 내일은 친구가 먼저 말을 걸어올 수도 있잖아.”
아이는 이불 대신 지푸라기를 깔아놓은 듯 불편한 마음을 가득 안고 잠을 청했다.
지난해 9월, 4학년에 올라가며 큰아이는 A를 만났다. A는 블랙핑크와 BTS를 좋아했고, 큰아이는 A가 한국어 가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해 알려주기도 하고 발음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숙제를 하다가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큰아이와 A는 엄마들의 핸드폰으로 영상 통화를 했고, 주말이면 A 집이나 우리집에서 같이 놀았다.
아이들이 잘 어울리니 나도 A의 엄마와 친해졌다. A네는 대만에서 온 식구들이었고, 서로의 문화에 대한 이해도 쉬운 편이었다. 내가 담근 김치가 맛날 때는 김치를 나눴고, A의 엄마가 대만으로 출장을 다녀오면 대만의 유명한 파인애플 쿠키를 선물 해 줄만큼 가까워졌다.
다음날, 아이는 전날보다 더한 울분이 가득 찬 얼굴로 하교했다. 신발을 벗으며 첫마디가 이랬다.
“엄마 아직도 여전히 A가 말을 안 해. 나 말고 다른 아이들이랑은 말하는데 나한테만 말을 안 해.”
이틀째 말을 하지 않는다는 A의 이야기를 들으니 한입 삼킨 고구마가 목구멍에 걸린 듯 답답해졌다. 주말에 A의 식구들과 점심까지 함께 먹었던 터라 나 역시 A가 아이에게 말을 건네지 않는 ‘개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잠자리에 들 시간에 아이의 방에 들어가니 아이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울고 있었다. 학교를 다녀온 후 책을 읽고, 동생과 보드게임을 하고, 좋아하는 깻잎 반찬이 있는 저녁을 먹고도 답답한 마음은 가시지 않은 모양이었다.
“A 때문에 답답해?”
아이는 연신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직접 일을 해결할 수 있을 때도 있어. 하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찌 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야.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니까. 그 사람 마음속에 들어갔다 오면 제일 좋겠지만 그건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잖아.
이럴 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찾아야 해. 앞으로 그 친구가 너를 어떻게 대하는지 조금 더 지켜보자. 그리고 구멍이 난 너의 마음을 다독이는 것에 집중하자. 자라면서 더 많은 친구를 만나게 될 텐데, 어쩌면 지금 이 일이 친구들 사이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해프닝의 시작일 수도 있어.
이번 해프닝을 시작으로 친구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대처해야 할지 고민해 보자. 엄마는 언제나 네 편이고, 너 뒤에 서 있어. 네가 울고 싶고 답답할 때 지금처럼 늘 같이 있어 줄게.”
상처가 아물면서 자라는 아이들
여기까지 말하고 아이를 안았다. 아이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흐느끼는 소리도 잦아들었다. 이제 잘 수 있다고 말하는 아이를 뒤로하고 나오는데 윤가은 감독의 영화 <우리들>이 떠올랐다.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는 초등학교 4학년 ‘선’과 전학생 ‘지아’의 우정이 한순간 사소한 말과 행동으로 어긋나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선과 지아와의 관계가 삐끗거리기 시작한 순간, 아이들 사이에 등장하는 다른 친구들의 이간질에 불거지는 오해들, 다시 화해할 것 같은 순간 불쑥 삐져나오는 모난 마음들까지도 이야기는 묘하게 아이의 현재 상황과 닮아 있었다.
<우리들>을 보면서 언젠가 나의 아이도 이런 친구 관계 속에서 마음 아파할 때도 올 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시간이 예고도 없이 찾아와 본론이 전개되고 있었다.
나무에 매달린 밤송이가 떨어지듯 마음이 ‘툭’ 하고 떨어진 영화 장면이 있다. 주인공 ‘선’의 동생 ‘윤’이 어린이집 친구 ‘연우’에게 매일 맞고 다니니까 주인공 ‘선’이 왜 ‘연우’를 때리지 않냐고 동생을 다그쳤다. 누나 이야기를 듣던 ‘율이’ 한마디를 한다.
연우가 나를 때리고, 내가 연우를 때리고,
연우가 또 나를 때리고, 내가 연우를 또 때리면,
우린 언제 놀아?
아이들 세계도 어른들만큼이나 복잡다단하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친구가 가지고 있을 때 부러워하고, 질투심이 차오른다. 거꾸로 자신이 조금 더 가진 것도 모르고 건넨 말에 친구는 으스대는 말로 느낀다.
상대방의 마음을 고려한 대화를 자연스레 나누는 것은 소원하다. 심지어 이런저런 감정이 어떤 모양과 색깔인지 가늠하는 것조차 어렵다. 아직은 조금 서툰 감정 표현과 대처에서 아이들은 크고 작은 마음의 생채기를 마음에 안고 산다.
그런데도 매일 학교에서 마주하는 그 친구들과 좋아하는 가수와 웃긴 이야기를 나누고, 운동장에서 술래잡기를 하고, 집에 돌아오는 스쿨버스에서 학교생활과 숙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그 친구를 좋아하는 마음이 더 크니까, 그것만으로도 관계는 지속될 수 있다고 믿어서가 아닐까.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아이 친구 엄마에게 먼저 연락해 아이들의 관계에 관해 물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일은 부모가 개입할 정도로 심각하진 않다고 판단해 두고볼 생각이다. 사람의 마음은 고요한 호수 같을 때도 있지만 해와 달이 끌어당기는 힘이 작용해 생기는 썰물과 밀물 같을 때도 있다.
아이의 마음도, A의 마음도 어디로 어떻게 번져나갈지 모르는 인간의 마음이다. 작은 돌멩이 하나를 호수에 던지면 한없이 퍼져나가는 물결처럼 사람의 마음도 사소한 일을 시작으로 어디까지 퍼져나갈지 알 수 없다는 것을 아이와 먼저 나누고 싶다.
아이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점심을 먹고 소파에서 뒹굴뒹굴하던 아이가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고 했다. 학교를 가지 않아도 A가 생각나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아이는 친구에게 여전히 자신에게 화가 났냐고, 우린 더 이상 친구가 아니냐고 물어봤다. 하루가 지나도 친구에게서 답장은 오지 않았다. 친구의 답장은 오지 않을 수도 있고, 느닷없이 올 수도 있다.
날아간 메시지와 돌아오지 않는 메시지 사이에서 나와 아이는 우리 마음의 파장을 살펴보며 나무줄기에 나이테가 하나 늘어나듯 자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