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한잔이 주는 위로
처음 카페를 즐겨 가게 된 것은 필리핀에서 였다. 내가 살던 필리핀의 팔라완이라는 곳은 전기가 끊어지는게 일상인 곳이었다. 전기가 끊기면 집은 무더워 졌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렇게 카페를 드나드기 시작했다. 노트북과 작은 노트를 챙겨서 카페를 가는 것은 전기가 끊어졌다는 뜻이었다.
워낙 작은 동네라 카페를 가면 만나게 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다가 수다도 떨기도 하고 서로의 소식을 알게 도니는게 좋았다. 우연인 것 같은 만남이었지만, 사실은 우연은 아니였던 셈이다. 항상 야외 테이블에서 담배를 피고 있던 친구는 지금도 그곳에서 아직도 있을까?
물가가 싸서 케이크를 마음 것 먹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그 중 최고는 당근케이크였다. 심지어 카페 이름도 Divine Sweets 였다. 론니플래닛에 의하면 이곳은 팔라완 최고의 케이크를 제공하는 곳이라고 한다. 그렇게 나는 카페 죽순이가 되어갔다.
영국에서는 카페가 길마다 많이 있었다. 제일 많았던 곳은 costa 와 스타벅스 였다. 그 외에도 학교 주위의 로컬 카페가 있었다. 영국의 카페들은 너무 시끄럽지도, 너무 조용하지 않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 카페에서 너무 시끄럽게 말하는 것이 실례인 곳이었기에 나 또한 조심해야 했다. 그렇다고 자유롭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였다. 편안한 쇼파에서 눕다싶이 해서 쉬는 사람들, 커피를 앞에 두고 각자 독서를 하는 커플, 조별과제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어디에나 있듯 페이스북을 5분에 한번 씩하는 사람들, 그런 곳이 영국의 카페였다.
주로 따뜻한 flat white를 마셨다. 한국에서도 요즘 종종 볼 수 있는데, 카페라떼보다는 조금 진한 라떼의 맛이었다. 차에도 우유를 섞어 마시는 곳에서 살다보니 커피에도 우유가 무조건 듬뿜 들어간 것이 먹고 싶었나 보다.
함께 카페에 가는 것도 좋았지만, 혼자가는 카페도 좋았다. 아무 스케줄 없는 날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여유롭게 아침을 챙겨 먹는다. 그리고 햇살을 한가로이 받으며 카페에 가서 읽어야 하는 숙제들을 하는 것은 바쁜 일상에서 내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사치였다. 암기 위주의 공부보다는 사고를 통해 글을 써야 하는 것이 내 대학원 생활을 대부분이었기에 이런 곳에 가면 신기하게도 생각이 더 잘 떠올랐다. 물가에 비해서 커피값이 그리 비싸지 않은 것도 내가 카페를 자주 가는 이유 중 하나였다.
한국에서는 카페는 주로 친구를 만날 때 가는 곳이었다. 2~3시간 씩 묵혔던 이야기를 하기 좋은 곳이었다. 그대신 혼자서 카페에 있을 여유가 있는 생활은 아니었다. 지금 사는 경기도의 소도시로 연고지를 옮기고 나서야 카페를 갈 마음의, 시간의 여유가 생겼는데 제일 자주 가는 곳은 스타벅스다.
대자본의 노예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 혼자서 아무 눈치보지 않고 있을 수 있는 곳이 여기 말고는 딱히 없다. 그리고 다른 카페에 비해 스타벅스에 혼자오는 이들의 비율이 월등히 높다. 그리고 스타벅스의 가구 색이나, 조명들이 너무나 내 스타일이 인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나는 아직도 마음에 드는 카페를 찾는 중이다.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스타벅스 같이 장시간 눈치를 보지 않고 않아 있을 수 있는 카페가 적은 탓에 카페는 항상 붐빈다. 그리고 시끄럽다. 인구 밀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좀 여유로운 카페를 찾을 수 있을지 자체가 의문스럽기는 하다. 손님이 왕이 아닌 유럽과 피릴핀이기에 카페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한국보다 한템포 늦다. 과잉친절도 없다. 예를 들면 이런식이었다. "아메리카노 한잔 시켰는데 이거 지금 먹을껀가요? 나중에 먹을껀가요?" "말안해도 10분은 기다려야 할꺼예요, 알죠?" 한국은 빠릿빠릿하지만 여유는 없다.
여행할 때 내가 꼭 가는 곳은 그곳의 카페이다. 날씨가 적당히 따뜻하다면 그곳의 길거리에 앉아서 거리를 구경하는 것은 여행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여행지의 분위기와, 그곳의 사람들과 공기, 여행 온 여행자들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그것, 한 가운데 서 커피를 마시는 것. 완벽한 여행은 아닐지라도 충분히 좋은 여행이 될 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