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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다보니 전문가가 된 건에 대하여

1. 생각해보니 이제 전문가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 취업편

by Nak

전문가라고 제목에 썼지만, 내가 사회적으로 전문가로 인정받는지는 잘 모르겠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던 2014년 나는 대학교 졸업을 한 학기 연기하고, 국내 1위 여행사인 H투어에 인턴으로 입사했다. 당시에는 정규직 전환 인턴 유형의 기업 공채가 유행할 시기였는데, 나는 인턴활동 9개월 중 4개월만 근무한 후 자발적으로 그만두었다. 취업 준비생 시절 가고 싶었던 기업 중 하나이기도 했고, 본사 근무 시 집에서 걸어서 다닐 수 있는 회사를 그만두었던 이유는 나의 부족한 점도 있었으나, 회사에서 장밋빛 미래를 그려볼래야 그려볼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 왜 회사에서 장밋빛 미래를 그려볼 수 없었을까? 그 시절 이야기를 잠깐 해보도록 하자.


당시 채용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면접 당시 영어 인터뷰를 굉장히 잘 보았던 기억이 난다. 누가봐도 나를 뽑을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자신감 있게 면접을 치뤘던 기억이 생생하다. 영어 인터뷰 준비를 열심히 했고, 자신감 있는 태도로 영어 인터뷰까지 해서 회사에 들어왔지만, 실제로 하는 업무는 상상했던 것과는 크게 달랐다.


처음 배정 받은 업무는 영업관리 업무였다. 여행사 대리점을 돌아다니며 여행 상품을 소개해주고, 각종 쿠폰 등을 나눠주며 대리점을 관리하는 업무였다. 여행사 대리점은 전문 판매점과 일반 판매점으로 나뉘어지는데, H 여행사의 여행 상품만 취급하는 여행사는 전문 판매점, H 여행사뿐만 아니라 M, L 여행사 등 다른 대형 여행사의 상품도 판매하는 여행사를 일반 판매점이라고 우리는 불렀다.


일반적으로 대형 여행사는 이런 소규모 여행사에게 B2B로 여행 상품을 공급하는 비즈니스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모든 대형 여행사는 이런 대리점들을 관리하는 영업팀이 존재했고, 영업팀은 지역이나 지점의 카테고리 등에 따라 나뉘어 대리점들을 관리하였다.


여행업 미종사자의 눈에는 잘 띄지 않겠지만, 여행업 종사가가 한번 되고 나면 어느 거리를 돌아다니듣 여행사 대리점이 눈에 띄게 마련이다. 그때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자유여행 상품 구매가 너무 기본이다보니, 이전보다 대리점 숫자가 많이 줄어들었겠지만, 패키지 여행에 대한 수요가 높은 당시에는 오프라인 대리점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았던 시기였다.


인턴인 내가 하는 업무는 오프라인 대리점들을 돌아다니며 상품 소개 등을 하고 쿠폰을 나눠주는 업무였다. 외근이 많은 업무였기 때문에, 업무에 익숙해지면 자유롭게 내 시간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업무 난이도 자체도 어려워보이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항공사 코드라던가 공항 코드와 같이 생소한 단어들이 어색하기는 했지만, 적응되면 크게 어려울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것보다 어려운 것은 나의 성격이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대학교를 막 졸업하는 시점이었고, 사회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에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전혀 몰랐다. 팀내에서 다른 인원들과 갈등이 있지는 않았지만, 팀장님이 나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영업치고는 너무 내성적이라며, 조금 더 적극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했다.


다만 그 당시 나는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언가 분석을 하는 업무를 하고 싶었다. 어떤 스킬도 없고, 능력도 안 되지만 막연하게 내가 관리하는 대리점들이 있다면, 그것들을 분석해서 무언가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물론 당시에는 무엇을 분석해야 할지도 모르는 풋내기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또한 이대로 영업만 할 경우 어떤 전문성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실제로 여행 관련 프로세스를 운영하는 것은 소규모 여행사들이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내가 일한다고 여행에 대해 전문가가 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또한 차장님, 부장님들을 보아도 업계 전문가라는 느낌보다는 관리자 느낌밖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이렇게 나는 전문성이라는 키워드에 빠져, 이 회사를 다니는게 맞는지에 대한 고민을 2개월 차 때부터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퇴사를 하게된 계기가 발생하는데, 바로 월차 사건이다. 3개월쯤 된 시점에 나는 트래비스라는 밴드의 내한공연을 보기 위해, 월차를 신청했다. 공연 날짜가 10월 26일이라면, 나는 그 다음날인 10월 27일로 연차를 신청했다. 다음날 힘들어서 쉬고 싶었기 때문이다.


월차를 올린 뒤 외근 후 돌아왔는데, 팀장님이 갑자기 나에게 욕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트래비스 공연 때문에 월차를 쓴다고 말하고 결재를 올렸는데, 팀장님이 그 밴드의 공연 날짜를 찾아본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공연 날짜는 10월 26일인데, 왜 10월 27일 연차를 쓰냐며 거짓말을 했다고 약 2시간 동안 욕을 해댔던 것으로 기억한다.


안 그래도 회사 업무도 전문성이 없어 보였고, 연봉이 높은 산업군도 아니었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시점에 그런 일을 발생하니 , 그게 도화선이 되어 다음날 그만 둔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팀장님이 나도 여기서 10년 정도 다니면 팀장님처럼 될 수 있다며 퇴사를 보류하라고 설득했다. 그래서 1달 정도 더 다니기는 하였지만, 그 한달 동안 다음에 할 것을 찾아보게 되었다.


다음 일에 대한 플랜 A, B, C가 확정 되었을 때 나는 회사나 직무가 나와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하지만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비단 회사의 직무가 나와 맞지 않는 점도 있었지만, 여행업에 종사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또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외부자극에 대한 탄력성이 너무나 높은 산업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내가 여행사에 입사한 2014년은 세월호 사건이 터진 해였다. 회사에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월호 사건이 터졌는데 세월호 사건 때문에 여행상품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회사 내부에서도 비상 경영 등과 같은 긴급 체계가 발동되었다. 물론 세월호라는 사건은 현대 한국사에서 가장 큰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이기는 하나, 그걸로 인해 회사가 이토록 위기감을 느낀다는 사실은 외부의 변동성이 여행 업계에 엄청난 큰 파장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었다.


그때 나는 내가 무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산업군에 가서도 일을 할 수 있는 전문성이라는 무기 말이다. 지금은 이런 전문성이라는 무기와 도메인에 대한 이해가 같이 융합되어야 나의 경쟁력이 훨씬 더 증가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 당시에 나는 전문성이라는 무기를 갈고 닦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선은 전문성으로 생각한 것이 바로 베트남어이다.


그리고 이듬해 나는 베트남 하노이로 떠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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