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신발 공장을 3일만에 퇴사한 풋내기 시절
필자가 사회과학대를 선택한 이유는 수능 준비 중 사회 선택 과목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과목이 바로 사회문화와 정치 과목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 아무 생각없이 고시나 공무원 준비를 하려면, 행정학과 가면 되겠다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사회 문화나 정치쪽에 관심이 없었다면 무난한 경영학과나 학교 간판학과를 갔을 것이다.
대학교 입학 전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라는 책을 가장 재미있게 읽기도 하였고,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던가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와 같은 사회 비판적인 책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대학교 입학 후 도서관에서도 그와 결이 비슷한 책을 많이 읽게 되었다.
특히 필자가 대학생이던 시절에는 우석훈 교수의 "88만원 세대"라는 책을 필두로, 흔히 말하면 좌파적인 색채가 짙은 주제의 책이 인기였기 때문에 필자 역시 자연스럽게 좌파적인 마인드를 많이 가지고 있던 시기였기도 했다. 물론 이런 마인드는 회사일을 조금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잃어버리기는 했지만서도 말이다.
좌파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가장 공통적으로 떠올리는 주제는 역시 인권이라는 주제일 것이다. 필자 역시 이 주제에 대해 에세이 쓰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고, 대학 시절 4년 동안 발달장애아동 봉사활동을 진행하며 나름 행동도 하고자 노력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필자는 사회 문제와 인권 문제를 책으로만 접한, 흔히 말하는 패션 좌파였다고 말하고 싶다. 실제로는 편하게 용돈이나 받아서 쓰는 대학생이었고, 딱히 경제적으로 문제를 겪어본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편안함 때문에 봉사활동이나 인권 문제에 열을 올리며 선민 의식을 가졌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만약 내가 정말 경제적으로 힘들고, 삶이 힘들어 누군가에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고민을 할 생각에 돈이나 벌었을테니 말이다.(지금처럼 돈 벌 생각에 그런 생각은 할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나같이 아무 고민 없던 대학생이 인권에 대한 현실을 깨닫게 된 것은 책이 아닌 바로 베트남 신발 공장에서였다. 베트남 동나이라는 호치민에서 약 1시간 정도 북쪽에 떨어진 이 동나이라는 곳은 공단 단지가 밀집해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는 신발 공장과 같이 흔히 말하는 1차 제조업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필자가 간 공장은 신발 갑피를 만드는 공장이었다. 이 회사는 신발 갑피와 신발끈을 생산하는 흔히 말하는 2차 벤더사였고, 여기서 제작된 갑피와 신발끈은 1차 벤더사로 보내져 쿠셔닝 등과 함께 조립되어 완제품으로 거듭나게 된다.
1차 벤더사도 가본 적이 있는데, 이곳은 갑피 제작 공장보다는 시설이 훨씬 나아보였다. 먼지가 꽤 날리기는 했지만, 최대한 정제되고 안전 관리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적어도 도료의 화학 냄새가 진동하지는 않았다. 내가 일하게 된 공장은 신발 갑피에 나염을 하는, 즉 색을 입히는 공장이었기 때문에 화학 물질이 엄청나게 많이 필요한 곳이었다.
공장에 들어선 첫 날 화학품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적어도 우리나라였다면, 마스크든 뭐든 줬을 테고, 만약 아무것도 없다면 안전관리 책임자가 해고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곳에는 그런 규정 같은 것은 없어보였다. 사실 이런 상황이 공장에서만 벌어지는 건 아니었다. 나는 베트남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베트남에 들어온 한국 업체들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노이의 대학교에서 언어 연수를 받을 당시, 그 학교 내부에는 연수 프로그램 관리자 방이 따로 있었는데, 관리자 2명은 그 방에서 담배를 미친듯이 피워댔었다. 한국에서라면 못할 실내 흡연을 그들은 베트남에 와서 아무런 눈치도 보지 않고 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은 한국인들이었다. 한국에서는 더 이상 하지 못하는 흔히 말하는 쌍팔년도 문화를 한국인들이 버젓이 할 수 있는 곳이 그 당시 베트남이었다.
(하지만 최근 사무실과 차 내에서 옆에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자 담배를 피우는 대표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 대표가 되면 다른 사람들을 의식을 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그들이 그런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이런걸 보면 그들이나 이들이나 별반 차이는 없어보인다.)
하지만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는 사회에 익숙해진 탓인지, 공장 내 화학물질이 근로자들의 코와 뇌를 타고 들어가도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이르자 그 생각 자체가 소름끼쳤다. 나는 그곳에 단 삼일만 있었는데, 그 삼일 내내 머리가 멍해진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다행히 법인장이 내 얼굴이 너무 안 좋다며, 3일 만에 신발끈 공장으로 보내버려 나는 그곳과 작별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근로자들이 마스크도 끼지 않고, 화학 냄새에 절여진 채로 갑피에 나염을 하는 것을 보며 인권 침해를 실제로 당하는 사람은 인권 침해라고 생각하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던 신발을 구매하는 것 자체를 꺼려하게 되었다. 뭔가 그들의 생명을 앞당긴 대가로 만들어진 제품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유독 화학 냄새에 약해 특이 케이스로 머리가 멍해진 것 일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염을 하기 위해 손에 묻히는 여러 화학 제품들과 그 냄새 때문에 신체적 휴유증 혹은 정신적 휴유증을 겪는 이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나는 거기서 일했던 사람들이 어떤 휴유증을 겪는지, 아니면 어떤 병을 겪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어쩌면 나 혼자만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어 머리가 하루종일 멍했던 것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10년 정도가 지난 후인 지금의 나라면 공장에서 발생하는 여러 화학 물질들을 센서로 파악하여, 데이터화할 수 있는 사업아이템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지만, 이 때의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에 불과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