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후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도겸 Mar 06. 2024

다른 사람

강화길 소설

다른 사람

한겨례출판


이 책은 2023년 4050 책의 해 사업에서 '책과 생일, 4050 CEO가 주도하는 도서복지' 사업에 선정되어 생일책 선물에서 받은 도서다. 책의 발간 일자와 나의 생일이 같은 날이다.


‘다른 사람’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고, 우습게 볼 수 없는 사람.

'다른 사람'은 포식자, 절대자, 나 이외 다른 사람들이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사람을 말한다.



사내 연예를 하면서 데이트 폭행 및 강간을 당한 여자가 자신의 억울함을 인터넷에 호소하여 기사화 되지만 돌아오는 건 자신에 대한 신상털이와 비난 밖에 없다.


주인공의 현재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어릴적부터 시작된 집단 따돌림이 대학교 다닐때까지 지속 된다. 대상은 바뀌지만 다수의 무리들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친한 친구도 떠나고, 술을 많이 마신탓에 원치 않는 강간도 당한다.

따돌리는 사람,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 그들의 사이를 오가는 사람 모두가 피해자이며 가해자다. 남들이 건드릴 수 없는 '다른 사람'이 되려고 친구를 배신하고 가해자의 편에 선다.

12년이 지난 후 친구의 이전 사건을 조사하면서 모두가 자신의 언어로 가해자이자 피해자임을 회상한다.


강남 묻지마 살인과 미투에서도 많이 느꼈지만 여자들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은 일상화 되었다. 그때 비로소 나의 젊은 시절의 말과 사소한 행동들도 상대방이 느끼기에는 폭력이라고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 소설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한다. 나는 가해자가 아니라고. 내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다른 등장 인물의 입장에서도 똑같은 피해자와 가해자로서의 합리화를 발견할 수 있다.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그 상황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행동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

단추가 잘못 채워졌으면 풀고 다시 잠그면 된다. 그래도 잘못 되었다면 또다시 풀고 바로 잠그면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관계가 잘못되었다면 솔직하게 시인하고 다시 관계를 만들어 가면 된다. 그 잘못된 관계를 굳이 바로잡고 싶은 마음이 없을때는 그냥 생각하지 않으면 된다. 계속 생각나고 뇌리에 남는다면 다시 시작하면 된다. 삶은 달라질 수 있다.


데이터 폭력과 강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흥미롭게 담아 냈다. 남자로서 모든 내용을 공감하지는 못하겠지만 주인공들의 아픔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고 사람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본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되어야만 세상을 마음 편하게 살아 갈 수 있는가. 왜 다른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가. 당신과 나는 다른 사람인가?



P.85

병에 걸린다는 건, 내 행복을 남에 맡겨놓는 것과 마찬가지야. 불안하고 끔찍하지.


P.105

인간의 언어란 정말 대단했다. 본질을 감추고 외피를 만드는 데 언어만큼 적당한 건 없었다. 진실하다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따라붙는 무수한 수식어는 정말 놀라울 지경이었다.


P.226

수진 역시 할머니를 사랑했지만. 할머니는 무거운 짐이기도 했다. 할머니가 옆에 있는 한 수진은 영원히 ‘다른 사람’이 될 수 없었을지도 몰랐다. 그녀가 그렇게 열망하고 노력했던 ‘다른 사람’.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고, 우습게 볼 수 없는 사람.  절대 강간당하지 않는 사람.


P.314

첫 단추를 잘못 잠그면 옷 입기는 모조리 실패해버린다. 잘못된 생각이라고 한다. 단추를 풀고 다시 잠그면 된다. 물론 또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다시 풀고 잠그면 된다. 삶은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고, 달라질 수 있다고.

하지만 내가 단추를 잘 잠근 채 살았다고 착각한다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알아채지 못하고 그대로 살았아면? 그래서 계속 단추를 어긋난 자리에 맞춰왔던 거라면? 아니면, 단추가 잘못 잠겼다는 걸 모른 척하고 살았던 거라면?

제대로 고개를 들어야 한다고. 계속 모른 척한다면 단추는 계속 비틀어질 것이고 언젠가는 절대 감당할 수 없게 되어버릴 거라고. 물론 그는 희망이 없다는 말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모른 척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후에 내가 감당해야 하는 시간 역시 길어진다고 말할 것이다.


P.318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마음이 누군가 나를 학대하도록 내버려두는 마음과 닮았을지도 모른다는 걸 말이야.

매거진의 이전글 장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