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왜 봄과 다를까?

by 낭만피셔

"봄과 가을의 온도는 숫자로 보면 비슷한데, 왜 몸이 느끼는 결은 이렇게 다를까?"


이 물음은 어릴 적부터 가을이라는 계절의 문턱에서 떠올리는 오래된 습관 같은 질문이었다. 누구에게 물어도 명쾌한 답이 돌아오지 않았던 질문. 올해도 어김없이 가을이 돌아왔다. 요즘의 계절은 마치 필름이 끊기듯 중간의 과정을 생략한 채 장면을 전환한다. 뜨겁던 여름의 잔상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정신을 차려보면 공기는 이미 차갑고, 거리에는 이미 두터운 패딩을 껴입은 사람들이 겨울의 초입을 걷고 있다. 지금이 가을의 끝인지, 겨울의 시작인지 경계가 점점 흐릿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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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한 경계 속에서 이번 주, 3박 4일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일기예보가 예고했던 궂은 날씨는 온데간데없고 계절을 역행하는 듯한 뜨거운 햇볕이 쏟아졌다. 숙소 마당의 흔들의자에 앉아 나는 그 열기를 온몸으로 받아냈다. 읽고 싶었던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내리쬐는 햇살 아래서 문득 "여기는 가을 같지가 않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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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가을의 온도는 숫자로 보면 비슷한데, 왜 몸이 느끼는 결은 이렇게 다를까?"


어쩌면 내 무의식은 가을이 따뜻한 것을 용납하지 못했나 보다.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이 이제야 희미하게 잡히는 듯했다. 나에게 가을은 뜨거웠던 것들이 식어가는 서늘함으로 증명되는 계절이었다. 차가움에서 따뜻함으로 나아가는 봄과는 정반대의 방향이었다. 해가 진 뒤 무심코 열어둔 창문으로 서늘한 밤공기가 스며들 때 비로소 '가을이 왔구나' 실감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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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풍경 속에는 서늘함의 징조인 단풍도 은행잎도 없었다. 오직 계절을 잊은 듯한 짙은 초록뿐이었다. 어쩌면 그래서였을까. 모든 것이 제자리를 벗어난 듯한 그 이질적인 공기와 온도 속에서 나는 도리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편히 쉴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불과 3일. 내가 잠시 다른 시간대에 머물다 돌아온 사이 이곳의 시간은 맹렬하게 흘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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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단지는 온통 노랗고 붉은 낙엽들로 뒤덮여있었다. 아이들은 계절의 잔해 위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제주와 숫자로 찍히는 온도는 비슷했는데, 살갗에 닿는 공기의 질감은 전혀 달랐다. 이미 겨울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이곳의 공기 속에는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의 차가움이 묻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