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두통이 심해서요. 그래, 차라리 죽을 것 같은 이 두통엔 명확한 이름이 있으니 불행 중 다행이다. 왼쪽 눈알부터 시작하는 이 통증은 머리로 타고 올라가 귀 뒤쪽, 뒤통수까지 라인을 이룬다. 흔들, 흔들. 머리가 흔들릴 때마다 무언가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이 건드려지고 있는 듯한 고통. 그렇다고 흔들리지 않을 때에 고통이 없는 것도 아니다. 머리통 전체가 이렇게 아파오면 나는 늘 손오공이 생각났다. 손오공 머리에 씌워져 있던 그 금테. 잘못을 저지르면 머리를 죄여 고통을 선사하던 그 금테가 지금 내 머리에 있는 것 같다. 누구냐. 누가 날 이리 벌준단 말이냐.
그러나 손오공의 금테엔 편두통에는 없는 축복이 있다. 그 고통은 언제든 '그만'이 가능하다는 것. 온/오프 스위치가 없는 편두통엔 약도 부질없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고통에 몸부림치는 나에게 간호사선생님이 물었다. '원래 편두통 오실 땐 어떤 진통제가 몸에 받으세요?' 나는 넋을 3초 정도 놓고 선생님을 바라봤다. 그걸 알았다면 제가 이러고 있지 않았을 거예요 선생님. 온 우주를 뒤져서라도 구해다 먹었을 거랍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걸 알려주실까 봐 제가 애타게 기다렸거든요 선생님. 아세트아미노펜, 이부프로펜, 나프록센..... 아는 진통제를 중얼거려 본다. 다 먹었지만 소용없었던 나의 최선들을.
고통에 지쳐 잠이든 와중에도 멈추지 않던 이 고통은 다행히 이틀밤을 지내기 전, 어느샌가부터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그래. 걷히는 느낌. 처음엔 찡그리느라 잘 떠지지 않던 눈이 좀 편안해지나 싶더니 이내, 알 수 없는 것들이 가득 차 쪼개질 것 같던 머릿속이 천천히 비워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곧 머릿속이 맑게, 비워진 느낌. 후아.. 살 것 같다. 너무 기쁜 나머지 들을 이 없는 공간에서도 옴싹옴싹 입 밖으로 꺼내 중얼거려 본다. 이번 고통은 그래도 여기 까진가 보구나. 고마워. 어디에 무엇이 고마운지 모르겠지만 그냥 고맙다. 누가 살려라도 준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