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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siseon Jan 30. 2024

괜찮아지지 않을 것 같아

우울증 환자들은 대부분 현재 상황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했다. 지금 이 현재 상태. 내 주변 상황. 그리고 거기에 대응하는 나의 감정 상태까지, 이 모든 것이 앞으로도 계속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우울을 벗어나기가 몹시도 힘겹다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늘 생각했지. 그렇지 않은데. 이렇게나 상황과 감정은 다채롭게 변화하는데 그들은 왜 그리 시야가 좁아져 있단 말인가. 


그리고 오늘, 나는 그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감각에 파묻혀 끝간대 없이 울음을 터트렸다. 한 번 터진 울음은 도저히 멈추질 않아 몇 번이고 다시, 사람들이 없는 곳을 찾아 대피해야 했다. 


아침부터 유난히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이었다. 제법 잘 잤다고 생각했는데 목구멍으로 넘기려는 음식이 쉬이 삼켜지지 않았다. 오늘은 수액도 맞고, 모처럼 샤워도 해야지. 나름 오전의 계획이 있었는데 때마침 올라간 수액실은 만실이라 나중에 다시오라 했다. 샤워.. 하고 싶은데. 기다렸다 올라간 시끄러운 수액실을 피해 병실로 줄을 줄줄 끌고 내려왔다. 편안하게 누워서 맞으면 괜찮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태가 점점 더 나빠졌다. 몸이 무거운데 팔도 아픈 것 같고, 가장 피하고 싶은 편두통이 눈알부터 시작될 징조가 보였다. 그래도 때마침 회진을 돌던 선생님께서 진통제도 주신다고, 수액도 희석해 주신다 하시니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1시간. 온다던 진통제는 소식이 없고, 바늘만 꽂혀있는 수액을 누구도 어찌해주지 않았다. 눈도 떨어지지 않지만 전화를 걸어도 아무도 오지 않아 결국 다시 줄줄 줄을 끌고 올라갔다. 그리고 말할 차례. 마음은 정상적으로 이성적인 사람의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진통제의 진을 꺼내는 순간 이미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힘겨운데 힘겨운걸 일일이 설명할 힘조차 없는 상황이 되니 기가 찼다. 처음 왔을 때 그렇게도 친절하게 자리에서 모든 걸 해결해 줄 것처럼 이야기했던 병원에서도 결국 가장 힘든 순간을 감당하는 건 오롯이 내 몫인 것이었다. 


갑자기 서러움이 몰려왔다. 한 달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편두통이 이렇게 하루 걸러 하루마다 찾아오고, 이미 수술로 떼어내 버린 호르몬 조절 장치는 돌아오지 않을 테니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식은땀이 줄줄 흐르겠지. 이렇게 몸을 덜덜 떠는 내가 이제 어떤 스트레스를 감당하며 일이란 걸 할 수 있을지, 아니 그냥 수술 전의 일상이란 걸 앞으로 되찾을 수는 있는 건지 아무런 확신이 들지 않았다. 기가차고, 또 기가 찼다. 이 하나밖에 없는 엉망진창 몸뚱이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을 것만 같았다. 


울고, 또 울었다. 멈추지가 않아서 남들 보는 앞에서도 울고, 쉬었다가도 울었다. 그 와중에도 이렇게 내가 우는 건 호르몬 조절장치가 없어서지, 내가 구제불능이라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자존심까지 부려가며, 또 울었다. 


그래도 울음엔 장점이 있었다. 지쳐서 잠들 수 있다는 것. 더욱 서러워할 체력조차 없는 몸뚱이는 그래도 잠이 들어주었다. 그리고 똑똑똑. 누군가 병실을 찾아왔다. 한 두어시간쯤 잠이 들었다 깬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면서, 이야기 많이 들었다며 말 붙이러 와준 그 누군가는 '아니 나 오늘 항암하고 들어와서 내가 제일 아픈데~~ 자꾸 사람들이 당신만 챙겨주래애~~' 하면서 자꾸만 웃어댔다. 그러게나. 나는 그저 이 세계의 뉴비일 뿐, 가장 아픈 사람은 아닌데. 결국 가장 이기적인 방식으로 위로를 받았다. 나보다 더 아픈 사람도 있는데,라는. 그래도 항암 중인데도 저렇게나 밝고, 에너지 있는 누군가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을 다독였다. 그래. 오늘을 지내보자. 오늘을 지내고 나면 내일은 또다시, 혹은 더 많이 아플지도 모르지만 결국은 나도 저렇게 밝아질 날이 오겠지. 뉴비를 위로하는 에너제틱한 누군가가 될 수 있을 날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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