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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Mar 11. 2019

인생과 부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_인생을 다시 산다면

다음 번에는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리라

 긴장을 풀고 몸을 부드럽게 하리라


 이번 인생보다

더 우둔해지리라


 가능한 한 매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보다 많은 기회를 붙잡으리라


여행을 더 많이 다니고

 석양을 더 자주 구경하리라


 산에도 더욱 자주 가고

강물에서 수영도 많이 하리라


 아이스크림은 많이 먹되

콩요리는 덜 먹으리라


 실제적인 고통은 더 많이 겪을 것이나

 상상 속의 고통은 가능한 한 피하라.


보라, 나는 시간 시간을,

하루 하루를


 의미있고 분별있게 살아온

사람 중의 하나이다.


 아, 나는 많은 순간들을 맞았으나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나의 순간들을

더 많이 가지리라


 사실은 그러한 순간들 외에는 다른 의미없는

 시간들을 갖지 않도록 애쓰리라


 오랜 세월을 앞에 두고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대신

 이 순간만을 맞으면서 살아가리라


나는 지금까지 체온계와 보온물병,

레인코트, 우산이 없이는


 어느 곳에도 갈 수 없는

그런 무리 중의 하나였다


 이제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이보다

 장비를 간편하게 갖추고 여행길에 나서리라


내가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초봄부터 신발을 벗어던지고


 늦가을까지 맨발로 지내리라

 춤추는 장소에도 자주 나가리라


 회전목마도 자주 타리라

 데이지 꽃도 많이 꺾으리라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_인생을 다시 산다면.




내가 만약 새로운 삶을

지금 사는 것이라면


과거의 기억이 지워진체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면


그토록 후회하던 것들을

다시 범하지 않기 위해서


부활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면

그런데 그 이전 기억이 지워진 상태라면


지워졌다는 것만 알고

지워진 내용은 모른다면


나는 인생을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가 매번 하는 실수들이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는 것들이


지워지기 전 삶의

데자뷰라면


혹은 내가 겪었는데

처음 겪은 것 같은 자메뷰 현상이라면.




다시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내가 진정 원했으나 그렇게 살지 못했던 삶


나의 비석에 쓰여질

글귀들을 그려본다


지금 내가 살고자 하는 욕망

내가 얻고자 하는 것들에서


잠시 거리를 두고서는

나의 존재론을 고민한다


나르시시즘에서 잠시 벗어나서

다른이들의 마음과 시선을 돌아본다


나에게 당연한 것들이

그들에게 무리한 거였을까?


나에게는 쉬운 것들이 그들에게는

말이 안되는 것이었을까?


이런 질문들이 생각 속에 오가는 게

내가 진짜 살고 싶었던 삶이란 이런 거 였을까?




내가 가만 돌아보니

내가 사랑할 때마


그 사랑의 행위만이

내 인생에서 빛나고 있었다


다시 태어났을 때의

데자뷰도 자메뷰도


사랑의 행위만이

하나의 프리즘이 되어 주었다


다른 이들이라는 단서가

나에게 그들과의 사랑으로 남겨져 있었다


보르헤스도 깨닫지 못했던 것 같은

역사와 시간에서 혼자 존재하지 않은 방법은


다른이들과 사랑하는 것

그것을 오늘 실천하는 것이리라


그것이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더 많이 하고 싶은 것들이리라


언제가 신 앞에 섰을 때

신도 이것만을 물으리라


너에게 주어진 자유로

얼마나 많은 사랑을 하였는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나는 오늘도 사랑을 선택하겠다


미래의 내가 웃고 있겠다

박수치면서.




자메뷰현상_자메뷰 현상은 데자뷰 현상과 반대로,

이미 경험하거나 잘 알고 있는 상황을 처음 경험하는 것처럼

느끼는 기억의 착각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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