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을 우리는 예배라고 부른다

사도행전 16장 꿈에서본 마케도니아 사람들

by 낭만민네이션

그날 밤에 바울은 꿈을 꾸었다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멀리 해안에 서서


바다 건너 이쪽을 향해 외쳤다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그 꿈이 바울의 갈 길을 정해주었다

우리는 곧장 마케도니아로 건너갈 준비에 착수했다


모든 조각이 꼭 들어맞았다

이제 하나님께서 유럽 사람들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셨음을 확신했다


사도행전 16장_메시지 성경




모든 것이 논리적이라는

인간두뇌에서 나온 생각에서는


그것을 뛰어넘는 세계에 대해서는

아예 부정하는 일이 생긴다


지성의 한계에 도달하지 못한

감성에 대해서는 등한시 하는 태도를 보이고


지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영성에 대해서는 존재자체를 무시한다


그렇게 되면 남게 되는 것은

최신 이론들에 따른 상황파악과


팩트라고 하는 상황에서 나온 지식이

진리인 것처럼 믿고 행동하게 된다


사람의 변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이 변화되었다고 했을 때


지성의 한계만을 감지하는 이들에게는

그 변화는 인지적 변화에만 국한되어 버린다


변화에 중심에 감정이 일으키는

역동과 정동과 충동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하고


변화의 지속성을 가져다주는

완전한 회심으로서의 영적인 변화는 아예 무시한다




이러한 태도를 가지고

하나님을, 성경을, 역사를 보기 시작하면


마찬가지로 지성의 한계 즈음에,

증명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


신앙을 가져다 놓고

신학이라는 잣대로 줄을 지어 버린다


그러면 이런 말들을 하게 된다

"칼빈에 의해서는 이렇고, 녹스에 의해서는 이게 틀리고


하르낙은 이게 맞고, 바르트는 이게 이단시되고

어거스틴은 진리의 답을 가지고..."


그럴수 있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인간이기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지성의 한계에 도달하게 되면

이카루스의 날개가 태양에 타들어가듯이


우리의 존재도 자신들도 모르게

까맣게 타들어가는 것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반 지성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는 게 아니라

영적인 삶에 대해서 전혀 거들떠 보지 않는


신앙인이라고 하는 이들에게서

이상한 점들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지성의 한계의 근처에서만 놀아나게 되면

한가지는 반드시 인정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은 살아 계시면서

지금 여기서 나와 함께 걸으신다!"라는 것.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우리의 지성의 한계는 당연히 초월하시면서


우리의 개인의 역사에서부터

국가의 역사까지 개입하시고 보내시고 변화시키신다


그럼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호흡을 맞추고

대화하면서 그분의 길을 우리도 가겠다는 다짐을 하고


최전선에 서는 순간순간마다

살아있는 하나님과 걸어간다


이것을 우리는 쉽게

임마누엘이라고 한다


인식론적 하나님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그래서 하나님이 죽어야만


자신의 지성의 한계가 유지되는,

자신의 정체성이 유지되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는 어느정도

"신은 죽었다!"라고 이야기한 니체가 맞았는지도 모른다




많은 공부를 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 혼나면서 칭찬받으면서


구불구불 걸어가는 것 같다

그리고 항상 하나님은 함께 걸으신다


내가 인식할 수 있을때나 없을 때나

내가 찾을 때 찾지 않을 때나


그래서 언젠나 하나님은 나보다 크시고

나의 생각보다 넓으시다


꿈에서 나타나 이야기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얼굴에 현현할 수도 있다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의 한계를 넘어서시며

우리의 일상에서 그분의 나라를 이루어 가신다


우리가 그분의 형상을 현재에서 파악할 수 있을 때는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이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니

매번 물어보고 표적을 구하고 대화하고


함께 마음을 쏟고

울고, 웃으며, 실망하고 다시 힘을 얻는 것


그래서 우리는 인간이고

하나님은 하나님이 되신다


나는 이 관계가 너무나 좋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너무 좋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끝이 없음을 느끼고


그 분의 임재와 살아 계심에

한 없이 작아지는 개미와 같은 존재이다


그럼에도 그 분은 명령하시고

때론 토라지시고 때론 화내시고


때론 말 없이 묵묵히

함께 손을 잡고 걸으신다


우리의 실수와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 구불구불한 길을 다시 걸어 오셔서


굳이 나를 만나시고

우리를 만나신다




그러니 이제 한가지

살아계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


이것을 우리는

예배라고 불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