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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철학일기

중국의 마르크스주의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처음읽는 중국 현대철학_천두슈와 리다자오

by 낭만민네이션

매주 일요일 아침 철학아카데미에서 펴낸 중국현대철학사를 강의한다. 쉽지 않은 작업이지만 오늘은 마르크스주의라서 좀 쉬웠다. 그럼 구체적으로 천두슈와 리다자오를 통해 어떻게 중국의 마르크스주의가 시작되었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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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두슈와 리다자오는 동양의 전통적 가치관과 서양의 근대적 가치관이 혼재하며 모순이 심화되던 20세기 초, 중국의 시대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이들은 모호하고 신비주의적인 전통 사유 방식을 비판하고, 과학적 사유와 객관적 진화론에 입각하여 중국 사회의 문제를 진단하였다. 특히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의 성공은 이들의 철학적 방향을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들은 혁명적 실천을 통해 중국의 봉건주의, 군벌 독재, 제국주의 침략이라는 복합적인 모순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마르크스주의가 중국에 뿌리내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현대 중국의 새로운 이념적 토대를 마련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과학과 민주를 발전시키기 위한
새로운 사상의 필요성


두 사상가는 전통적인 유가철학의 권위주의적이고 가족주의적인 윤리관을 비판하고, 자유와 평등을 핵심 가치로 하는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이념을 중국 사회의 새로운 방향으로 제시하였다. 그들은 철학을 더 이상 관념의 유희나 형이상학적 논쟁이 아니라, 민중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시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적 사유 체계로 인식하였다. 이러한 실천적 태도는 중국의 지식인들이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도록 촉구하였고, 궁극적으로 노동자와 농민을 중심으로 하는 민중들이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하게 하는 사상적 발판이 되었다.


천두슈_陳獨秀

어린 시절 및 청년기 사상: 어린 시절에 전통 철학과 서양의 과학 사상을 공부하였고, 청년 시절에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공부하였다.

유학 및 초기 활동: 일본으로 유학하여 부르주아 민주주의 사상을 공부하였다. 귀국 후 《청년》(1915) 등 여러 학술지를 창간하여 민중을 계몽하는 데 주력하였다.

초기 비판: 봉건주의와 군벌 정부를 비판하였다.

주요 글: <애국심과 자각심>(1914), 〈프랑스인과 근세문명〉(1915) 등이 있다.

신문화운동: 신문화운동 기간에 《청년》(1915)을 비롯한 여러 학술지를 창간하여 민중을 계몽하고, 봉건주의와 군벌 정부를 비판하였다.

마르크스주의 수용: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을 목도한 후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를 비판하였다.

중국공산당 창립: 리다자오와 함께 1920년에 중국공산당 소조를 결성하고, 중국공산당의 주요 창립 멤버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주요 글: 〈러시아 혁명과 우리 국민의 깨달음〉(1917), 〈인생의 참된 뜻〉(1918), 〈《신청년》 선언〉(1919), 〈마르크스 학설〉(1922) 등이 있다.

공산당 활동: 1921년 중국공산당 창립 후 중국공산당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장과 총서기로 활동하였다.

사상 투쟁: 이 기간에 유물사관의 관점에서 각종 관념론과 아나키즘을 비판하며 사상 투쟁을 전개하였다.

출당 및 투옥: 1920년대 후반에 그가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일탈하자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은 1929년에 그를 출당시켰다. 1932년에 국민당에 의해 체포되어 감옥 생활을 하다가 1937년에 석방되었다.

사망 및 주요 글: 1942년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주요 글로 〈공자와 중국〉(1937) 등이 있다.


리다자오_李大釗

청년기 사상: 청년 시절에 봉건주의의 잔재인 미신과 복종의 태도를 비판하고, 민주주의와 과학 사상을 전파하였다.

청년기 주요 글: 〈염세심과 자각심〉(1915), 〈공자와 헌법〉(1917), 〈신중화민족주의〉(1917), 〈대아시아주의〉(1917) 등이 있다.

마르크스주의 정리: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종합적으로 정리하여 1919년에 발표한 〈나의 마르크스주의관〉은 중국 사상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신문화운동: 신문화운동 기간에 제국주의와 봉건주의에 반대하는 태도로 일관하며 민중을 계몽하고, 신문화운동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중국공산당 창립: 천두슈와 함께 1921년에 중국공산당을 창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국공합작: 1922년에 상하이에서 쑨원과 국공합작에 대해 담판하여 1924년의 '제1차 국공합작'을 실현시키는 산파 역할을 하였다.

중년기 주요 글: 〈동서 문명의 근본적인 차이〉(1918), 〈나의 마르크스주의관〉(1919), 〈10월 혁명과 중국 인민〉(1922), 〈사학과 철학〉(1923) 등이 있다.

순국: 지속적으로 제국주의와 군벌을 반대하다가, 제국주의의 비호를 받은 장쭤린에 의해 1927년 4월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역사적 공헌: 역사의 주체를 깨어 있는 민중으로 생각하고, 봉건주의와 제국주의의 허위의식을 비판하며 현대 중국에 새로운 이념의 디딤돌을 놓았다.



1. 과학과 민주의 눈으로 현실을 진단한 천두슈


천두슈는 모호한 사유 방식과 신비주의를 배격하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유를 중시하며 중국의 문명을 진단하였다. 그는 현대 사회가 주관적이고 직관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며 분석적인 사유를 중시하는 과학의 시대로 진입하였다고 보았다. 특히 그는 서구의 근대 문명이 인권 존중설, 생물 진화론, 사회주의 세 가지 특징을 가지며, 동아시아의 문명은 고대 문명의 낡은 범주에 머물러 있었다고 평가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중국의 전통적인 천인합일 사상과 서양의 신학 목적론을 모두 비판하며, 과학적 사유를 새로운 문명을 건설하는 핵심 영역으로 간주하였다. 천두슈에게 하늘은 도덕의 상징이 아니라 물리적인 자연일 뿐이었으며, 자연은 진화의 원리와 적자생존의 법칙이 적용되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중요하였다. 그는 기존의 모든 관념적, 종교적 사유를 배격하고 오직 관찰, 연구, 증명을 중시하는 자연과학과 경험주의 철학을 통해 미신과 망상을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삼강오륜의 윤리관을 봉건 시대의 가족주의를 근거로 하는 권위주의적 도덕 의식으로 평가하고 이를 폐기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천두슈는 중국인들에게 부족한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태도의 원인을 유·불·도 학설의 관념성과 군주 제도의 획일성에서 찾았다. 그는 자주적이고 진보적이며 능동적이고 개방적인 국민성으로 개조하는 것이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애국의 지름길이 된다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그가 공자 사상을 권위주의적인 군주 제도를 지탱하는 이데올로기로 보고 비판하였으며, 공자 사상의 부활을 주장하는 캉유웨이, 량치차오 등의 사상가들을 비판한 배경이 되었다. 결국 천두슈는 자유와 평등의 민주주의 사상으로의 전환을 강하게 주장하면서, 군주 중심의 논리와 수직적인 질서 의식을 상징하는 전통 사상을 타파해야 할 대상으로 삼았다. 그의 이러한 비판은 중국 사회를 근대적인 민주 국가로 변혁시키려는 강력한 의지를 반영한 것이었다.



천두슈는 인류의 역사를
계급 투쟁의 역사로 인식했다.


인간의 생활환경과 인간이 처한 구조가 인간의 의식을 결정한다. 천두슈는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여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의 논리로 생산력의 발전에 비례하여 사회 제도 역시 발전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정치, 사상, 철학 등 정신적 영역이 경제의 발전에 기초하지 않는다면 사회를 변혁할 수 없을 것으로 보았다. 특히 그는 자연을 변형하고 가공하는 노동을 통하여 획득하는 물질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이러한 물질을 토대로 하는 경제 발전에 비례하여 정신적인 면이 혁명적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러한 그의 관점은 무산 계급 중심의 투쟁을 중시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혁명관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이었다. 그는 '10월 혁명과 동양'(1926)에서 레닌의 계급 모순 해결 없는 민족자결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지지하며, 볼셰비키 혁명이 중국의 계급 모순과 민족 모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는 중국인들에게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태도가 부족한 것으로 평가하고, 그 원인으로 〈저항력抵抗力〉(1915)에서 유儒・불彿・도道 학설의 관념성과 군주제도의 획일성을 짚습니다. 그에 따르면 국민성의 개조를 통해 당면한 중국의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데, 그것은 이러한 비실제적인 관념성과 획일성과 천박한 노예근성을 제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처럼 그는 유물론에 입각하여 기존의 전통철학을 비판합니다.

처음 읽는 중국 현대철학 | 중국현대철학연구회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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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천두슈는 1927년 이후 무산계급 혁명 투쟁 대신 보통 선거에 의한 국민회의 소집을 주장하며 노선 변화를 보였다. 그는 '중공 중앙에 보내는 편지' (1929)를 통해 민중 스스로가 일어나 민중 자신의 이익을 대표하는 국민회의를 소집하고, 이 민주적인 조직 운동이 국민당 정부의 군사 독재에 대항해야 한다고 제시하였다. 그에 따르면, 전국의 인민 대표가 이와 같이 해야 끊임없는 전쟁의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인민의 이익을 보장하며, 유산 계급의 군벌과 제국주의의 압박과 착취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이러한 입장은 무산계급 혁명을 정통으로 여긴 중국공산당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결국 1929년에 '우경 기회주의자'로 규정되어 당에서 축출되는 결과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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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현대 중국의 이념적 디딤돌이 된 리다자오


리다자오는 인간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초역사적인 존재가 아니라, 역사적인 존재로 생각하며, 윤리 역시 시공을 초월하는 절대 불변의 형이상학적인 것이 아님을 주장하였다. 그는 윤리가 역사 속에서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형성된 공통의 가치이며, 따라서 시간과 장소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상대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진리'(1917)에서 진리란 자연적이고 인과적인 것으로, 종교에서처럼 초월적이고 신비적인 것이 될 수 없음을 지적하며 유물론적 관점에 입각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그가 과거와 미래를 이분법적으로 단절시키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는 연속적인 관계의 정점인 현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태도로 이어졌다. 현재는 무한한 과거가 귀속되고 무한한 미래가 시작되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통로로서, 시작도 끝도 없이 연속적으로 흐르는 역동적인 생활의 현장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하였다고 보았다.


리다자오는 우주 만물이 모두 자연법칙에 따라 진화하는 자연적인 존재이며, 인간의 역사와 문명, 사상 또한 발전의 논리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도덕 의식 역시 신이나 성인이 창조한 신비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주역들의 협의와 합의에 의해 형성된 것이므로 자연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자연적 윤리관과 공자' (1917)에 따르면 우주는 시작도 끝도 없이 움직이는 저절로 그러한 존재이고, 진화는 이 우주의 흐름에서 형성되는 자연적인 현상이었다. 결국 인간 사회에서 형성된 윤리 도덕은 모두 자연의 법칙을 자각하고, 그것을 인간의 삶과 유기적으로 결합시킨 지혜의 산물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발전사관에 입각하여 그는 위안스카이의 황제 부활 운동이 민주주의로 발전해야 하는 시대적 흐름과 배치되는 것으로 보아 타파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리다자오는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을 인류의 새로운 희망이자 중국 민중을 해방시키는 방향타로 여기며, 마르크스주의 철학 연구에 깊은 관심을 집중하였다. 그는 '나의 마르크스주의관'을 통해 역사의 주역을 민중으로 생각하는 민중 사관의 관점에서 전통적인 영웅 사관을 비판하고, 물질을 세계의 근거로 생각하는 유물사관의 관점에서 전통적인 유심사관을 비판하였다. 그는 물질, 경제 등의 토대가 철학, 사상, 종교 등의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을 수용하였다. 이를 통해 육체 노동을 경시하는 풍토를 개선하고 계급 투쟁을 통해 불평등한 사회 구조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특히 그는 유물사관을 활용하여 역사를 연구할 때, 역사는 생명이 있고 활동적이며 진보하는 것이며 기록과 유물은 역사 연구의 자료일 뿐 역사는 아니다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사실의 고증뿐만 아니라 역사 발전의 규율에 관한 연구도 중요함을 지적한 것이었다.


리다자오는 토대(경제)가 상부구조(사상)를 결정한다는 유물사관을 바탕으로 중국 사회를 분석하였다. 그는 중국의 대가족제도가 농경 사회의 산물이고, 모든 정치, 법, 윤리, 도덕 등의 상부구조가 이 대가족제도에서 구축된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외국의 제국주의 침입으로 중국의 사회 경제가 변화하면서 공자 학설의 근본이 동요되고 있었으며, '영원한 스승'의 권위를 유지할 수 없었다고 예견하였다. 따라서 그는 노동을 신성시하는 새로운 가치가 출현할 것이라고 예측하였으며, 유물사관이 전통의 인생관과 구별되는 새로운 인생관을 수립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는 유물사관이 역사의 발전에 비례하여 새롭게 형성되는 보편적인 가치관을 인식하게 하고, 민중이 역사의 주인이자 추동력임을 자각하게 하며, 발전적인 세계관과 가치관의 수립에 도움을 준다고 강조하였다.


1949년 3월23일 마오와 당중앙기관이 중국 내전(內戰)의 총괄 지휘부가 있던 허베이성 시바이포(河北省 西柏坡)에서 베이핑(베이징)에 입성했을 때, 마오는 감격을 이기지 못해 이렇게 술회했다.

“30년이 흘렀다. 30년 전 나는 구국구민의 진리를 찾아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많은 고초를 겪었지만 잘한 일이다. 나는 베이징에서 대단히 훌륭한 한 사람을 만났다. 리다자오 동지다. 그의 도움으로 나는 한 사람의 마르크스 레닌 주의자가 될 수 있었다. 대단히 애석하다. 그는 이미 혁명을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받쳤다. 그는 나의 진정한 좋은 선생이다. 그의 지도와 가르침이 없었다면 내가 오늘 어디에 있을지 모를 것이다.”



3. 과학적 사유와 진화론


천두슈와 리다자오는 과학적 사유와 진화론을 중국의 전통 철학과 관념론을 비판하는 핵심적인 도구로 활용하였다. 천두슈는 항저우 중서구시서원에서 옌푸(嚴復)가 번역한 헉슬리의 '천연론'을 통해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과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을 수용하였다. 그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논리에 의거하여 중국 전통의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과 서양 전통의 신학 목적론을 모두 비판하였다. 그에게 하늘은 도덕의 상징이 아니라 물리적인 자연이었으며, 자연은 진화의 원리와 적자생존의 법칙만이 적용되는 냉철한 공간이었다. 천두슈는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에 입각하여 인간 사회 역시 자연계와 마찬가지로 적자생존과 자연도태설의 법칙이 적용된다고 보았다.


리자다오는 “한 번은 음陰하고 한 번은 양陽하는 것을 도라고 한다”(《주역》 〈계사〉 상)라는 전통사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진화의 논리를 전개하였습니다.


그는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과 정신은 모두 진화의 과정에 있었으며, 도덕 의식 또한 신이나 하늘이 준 것이 아닌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형성된 사회적 산물이라고 주장하였다. 천두슈는 '공자의 도와 현대생활' (1916)에서 우주 사이의 정신과 물질이 항상 진화 과정에 있음을 강조하며, 인간 사회에 끊임없이 적용되는 우승열패와 적자생존의 법칙을 역설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태어날 때부터 도덕성을 안다는 공자의 생이지지(生而知之)나 맹자의 양지양능(良知良能)을 비실제적인 윤리관으로 평가하고 폐기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전통 도덕관 역시 신진대사의 원리처럼 새로운 시대에 맞게 전화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우주의 원리와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종교가 아니라 과학이었다.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필요한 건 형이상학이 아니라 헤겔이 주장한 변증법이라고 역설하였다.



리다자오 역시 진화론을 바탕으로 역사관과 윤리관의 상대성을 주장하였다. 그는 모든 우주와 자연계는 끊임없이 진화와 신진대사의 과정이며, 우주 만물은 모두 자연법칙에 따라 진화한다고 보았다. 그는 인간의 역사와 문명 역시 시간의 흐름에 비례하여 이전보다 나아지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사상 역시 이러한 발전의 논리에 따라 현재의 사상이 이전 시대보다 뒤지지 않는다고 보았다. 따라서 도덕 의식 역시 신이나 성인이 창조한 신비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주역들의 협의와 합의에 의해 형성된 것이므로 자연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자연적 윤리관과 공자'(1917)에 따르면 우주는 시작도 끝도 없이 움직이는 저절로 그러한 존재이고, 진화는 이 우주의 흐름에서 형성되는 자연적인 현상이었다.


결국 인간 사회에서 형성된 윤리 도덕은 모두 자연의 법칙을 자각하고, 그것을 인간의 삶과 유기적으로 결합시킨 지혜의 산물이라고 주장하였다. 리다자오는 이러한 발전사관에 입각하여 공자의 도와 봉건적인 윤리도덕은 2,000여 년 전에 형성되어 권위주의적인 군주 제도를 강화하는 이론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20세기 초의 중국 사회에 적합하지 않았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청춘' (1916)에서 개인과 가정, 중화민족의 미래와 운명을 다루며, 중국 민중의 치열한 노력을 통해 '낡은 중화'를 '청춘의 중화'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였다.



4. 전통철학과 유물론


천두슈와 리다자오는 전통철학의 관념적이고 비실제적인 부분에 대해 비판적이었으며, 또한 봉건적인 요소, 신비주의, 모호함 등을 철저히 비판하였다. 그들은 세계의 기원을 정신이 아니라 물질이라고 생각하는 유물론적 관점을 견지하였다. 그들에 의하면 정신은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이 최고로 발전한 단계라는 것이 유물론의 핵심이었다. 천두슈는 인류 사회의 각종 불행한 현상은 대부분 도덕이 진보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자살론-사상 변동과 청년 자살〉 (1920)에서 '성유선유악(性有善有惡)'설을 주장하였다. 그는 인간의 본성에 본래 선과 악이 공존하며, 인간이 문화적인 존재이므로 악의 측면이 점점 감소하고 선의 측면이 점점 발달하여 품격이 더욱 진화할 수 있다고 보았다.


천두슈는 지향해야 할 선한 측면을 우리가 추구해야 할 윤리 도덕으로 생각했지만, 그 윤리 도덕은 시대를 초월하여 불변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시대의 영향을 받으며 변화할 수 있는 상대적인 것이라고 규정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삼강오륜의 윤리관을 봉건 시대의 가족주의를 근거로 하는 권위주의의 도덕 의식으로 평가하고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중국인들에게 부족한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태도의 원인으로 유·불·도 학설의 관념성과 군주 제도의 획일성을 짚었으며, 국민성의 개조를 통해 비실제적인 관념성과 획일성, 천박한 노예 근성을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결국 그는 유물론에 입각하여 기존의 전통철학을 비판하고, 자주적이고 진보적이며 능동적이고 개방적인 국민성으로 개조할 것을 주장하며 민주주의 사회를 구축하고자 하였다.

리다자오 역시 다윈의 진화론과 마르크스주의의 유물론 관점에서 도덕관을 펼쳤다. 그의 〈물질 변동과 도덕 변동성〉 (1919)에 의하면 도덕은 초자연적인 것도 아니고, 물질을 초월하는 이상적인 것도 아니며,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도덕의 기초는 자연이고, 물질이며, 생활의 요구이며, 이는 사회생활의 요구에 부응하는 사회적 본성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도덕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절대 불변의 선험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 과정에서 사회적 필요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보았다. 그는 성현의 말씀이라도 영원히 불변하는 것은 아니었으며, 생활의 변화와 사회의 요구에 따라 변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세계의 기원을 정신이 아니라 물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에 의하면 정신은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이 최고로 발전한 단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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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새로운 생활과 새로운 사회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도덕의 출현을 요구하며, 물질이 새로운 것이면 도덕 또한 반드시 새로운 것이고, 물질이 옛것이라면 도덕 또한 반드시 옛것이라고 단정하였다. 왜냐하면 정신의 근원은 물질이기 때문이었다. 리다자오는 이러한 유물사관을 활용하여 역사의 주역을 민중으로 생각하는 민중 사관의 관점에서 전통적인 영웅 사관을 비판하고, 물질을 세계의 근거로 생각하는 유물사관의 관점에서 전통적인 유심사관을 비판하였다. 그는 물질, 경제 등의 토대가 상부구조인 철학, 사상, 도덕 등을 결정한다는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을 수용하였고, 이를 통해 전통의 인생관과 구별되는 새로운 인생관을 수립하고자 하였다.



천두슈는 인류 사회의 각종 불행한 현상은 대부분 도덕이 진보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의 전통철학사에서 인간의 본성론은 도덕관의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합니다. 천두슈는 이 문제에 대해 〈자살론-사상 변동과 청년 자살自殺論-思想變動與靑年自殺〉(1920)에서 선善도 있고 악惡도 있다는 ‘성유선유악性有善有惡’설을 주장합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본성은 본래 선과 악이 공존합니다. 진화의 측면에서 볼 때 인간 또한 동물인데,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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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회변혁과 현대 중국의 방향


천두슈와 리다자오는 계급 모순과 민족 모순이 팽배하던 당시 중국을 위기의 상황으로 진단했다. 이에 대한 이들의 대안은 노동자와 농민을 중심으로 하는 민중들의 단합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생산력과 생산 관계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계급 투쟁의 필요성을 중시하고, 경제의 발전에 비례해 정치, 사상, 문화가 발전한다는 마르크스주의에 기초한 사회 혁명론을 주장하였다. 그들은 중국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의 의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으로 보았다. 천두슈는 인류의 역사를 계급 투쟁의 역사로 인식하고, 인간의 의식이 인간의 생활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활이 인간의 의식을 결정하며, 생산력의 발전에 비례하여 사회 제도 역시 발전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의 기원)


천두슈는 정치, 철학, 사상, 언론 등도 모두 사회를 발전시키는 도구이지만, 그러한 것들이 경제의 발전에 기초하지 않는다면 사회를 변혁할 수 없을 것으로 보았다. 그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능동적인 참여와 노동을 통하여 획득하는 물질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이러한 물질을 토대로 하는 경제 발전에 비례하여 정신적인 면이 혁명적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10월 혁명과 동양’(1926)에서 그는 미국의 윌슨 선언이 불평등한 계급의 문제를 외면한 채 민족자결을 주장했기에 한계가 있다는 레닌의 주장을 지지하였다. 그는 계급 모순이 팽배한 자본주의를 극복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진정한 민족의 해방이 일어날 수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소련의 볼셰비키 혁명이야말로 무산계급이 중심이 되는 국내 혁명으로서 러시아 내부의 민족자결을 실현한 것으로 여겼다.


리다자오는 ‘10월 혁명과 중국 인민’(1922)에서 볼셰비키 혁명의 목표가 '세계의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타도하는 것'이라고 천명했다. 리자다는 이러한 목표가 중국에서도 유효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세계의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혁명의 대열에 동참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리다자오는 유물사관을 활용하여 중국 사회의 실제 상황을 연구하고 분석하였다. 특히 농민이 많았던 당시 중국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여 토지 제도의 문제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는 봉건적인 토지 소유제의 폐기를 주장하고, '경자유전(耕者有田)' 사상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리자다오는 농민을 노동자 계급의 동맹군으로 생각하고, 농민과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불합리한 토지 제도를 개혁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생각이 중국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성공한 이유이다. 리다자오는 역사의식이 깨어 있는 노동자와 농민을 중심으로 하는 민중을 혁명 정신이 가장 풍부한 선봉대로 여겼다. 혁명의 성공은 노동 계급의 지도적인 역할과 농민의 연합 전선에 있었기 때문에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그는 이러한 사회적 실천을 통해 만연한 제국주의와 군벌, 봉건 사상 등의 병폐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이를 계기로 중국의 국가적 방향을 사회주의 이념의 지향으로 설정하였다. 결국 리다자오는 마르크스주의의 보편 원리를 중국 혁명의 구체적인 실제와 결합하였도, 자신이 직면한 모순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이후 마오쩌둥 사상의 형성에 중요한 기여를 하게 된다.




6. 의의와 한계


천두슈와 리다자오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동양과 서양의 가치관이 혼재하던 근대 전환기의 중국에서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직접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졌다. 그들에 의해 중국에 확장된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현실의 문제에 대해 도피하거나 관조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역할을 하였다. 특히 1917년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 성공 후 마르크스주의가 중국에 빠르게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이 두 사상가의 지대한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1921년 중국공산당이 창립될 때 산파의 역할을 수행하며 현대 중국의 정치적 이념적 기반을 다졌다.


또한, 이들은 신비주의나 모호한 사유 방식을 배격하고, 과학적 사유를 토대로 하여 객관 사실의 증명을 중시하는 철학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철학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변증법적 논리를 동원하여 철학적 내용을 명쾌하게 설명하려는 그들의 노력은 철학을 어렵게 생각하는 많은 민중들에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 철학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민중을 역사의 주변이 아닌 주역으로 여기는 그들의 사상은 철학을 관념의 유희가 아니라 시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유 체계의 확립과 실천 활동으로 생각하는 태도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러한 그들의 철학 활동은 마오쩌둥을 비롯한 현대 중국의 설계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현대 중국의 새로운 이념적 디딤돌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철학 내용 가운데 전통철학에 대한 이해는 제한적이라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였다. 특히 그들은 유가철학에 대해 경직된 자세로 접근한 면이 있었다. 곧 그들은 유가철학의 구조를 계급 투쟁의 관점에서만 바라보았기 때문에, 유가철학이 함유한 다양하고 풍부한 내용을 심층적이고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면에 한계를 드러냈다. 그들은 유가철학의 윤리적, 인간 본성적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오로지 봉건적인 군주제도를 지탱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로 단순화하여 비판하는 경향을 보였다.


유교는 단순히 지배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가


이는 새로운 이념인 마르크스주의의 틀에 맞추어 전통 사상을 이분법적 관점에서 해석하려 했기 때문에 발생한 한계였다. 천두슈와 리다자오는 유가철학이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한 긍정적인 측면이나, 심층적인 인간론을 간과하고 낡은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철학사상은 당시 중국 사회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으며, 현실 참여와 실천을 통해 새로운 국가 이념을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들의 실천적 유물론은 중국의 근대화와 사회주의 혁명에 가장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리자다오와 천두슈의 사상을 그린 영화 ‘각성연대’



0. 나오기


천두슈와 리다자오는 근대 중국이 직면했던 내부의 봉건 모순과 외부의 제국주의 압박이라는 복합적인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과학적 사유, 진화론, 마르크스주의 유물사관을 결합한 혁명적 사유 체계를 구축하였다. 이들은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설정하고, 경제적 토대의 변혁 없이는 정치, 사상 등 상부구조의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능함을 역설함으로써, 중국 지식인 사회에 현실 참여와 실천의 중요성을 각인시켰다. 특히 이들은 노동자와 농민의 연합을 통한 사회주의 혁명을 중국이 나아가야 할 유일한 방향으로 제시하고 중국공산당 창립에 기여함으로써, 현대 중국의 역사적 진로를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들의 철학은 관념론에 대한 유물론의 승리와 엘리트 중심의 영웅 사관에 대한 민중 사관의 승리를 의미한다. 이는 철학의 대중화와 혁명 운동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 비록 전통철학 해석의 경직성이라는 한계를 가졌지만, 그들의 변증법적 논리와 실천적 태도는 마오쩌둥을 비롯한 후대 지도자들에게 계승되어 현대 중국의 새로운 이념적 디딤돌이 되었다. 따라서 이들 두 사상가의 철학은 중국 사회의 근본적인 변혁과 새로운 국가 건설을 이끈 가장 중요한 사상적 원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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