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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양 Apr 22. 2017

아이유의 스물 다섯을 들으며

나의 스물 다섯, 그 세 조각 중 첫 번째를 회고한다

무슨 말로 문장을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써본다.

내 스물 다섯은 크게 세 조각으로 나뉜다. 세상에 둘도 없이 행복했던 봄, 끝도 없이 침잠하던 여름과 가을, 천천히 떠올라 부유하던 겨울. 그런데 이 노래를 듣고 떠오르는 시기는 봄이다. 스물 다섯이라는 나이의 의미에 대해서 한참 생각했었다. 일단 행복했었다. 삶의 분기점이었고 가치관의 분수령이 되어준 나이, 스물 다섯. 스물 다섯 이전의 내가 남긴 기록들을 보면 지금으로서는 소스라칠만큼 낯설다. 겁이 많고, 소극적이고,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했고, 혼자 여행간게 무섭다고 흑흑 울면서 음성녹음을 켜놓고 통화하는 척 낯선 도시의 거리를 쭈뼛거리던게 얼마 되지 않았었다. 성공의 기준은 부와 명예라는 가치에 순응했었고, 그러면서도 아프리카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을 움켜쥐던 이중성에 혼란스러워했던 바보. 그렇게 조금씩 성장해서 아, 이게 나구나. 이런 사람이구나, 나. 했던 게 바로 스물 다섯 살 때였다.


I like it, I'm Twenty five.

너나할 것 없었다, 스물 다섯 살이 된 여자에게 크리스마스 케잌이니, 꺾였느니 비유하는 꼬라지 하고는.

그런데 남이사 뭐라건, 나는 오히려 스스로를 정말 사랑하게 된 시점은 그때부터였다.

나 자신을 '여자'라고 하기엔 너무 객쩍었고, 소녀라고 하기엔 또 열없었던 20대 초반을 막 끝맺은게 그 때였다.

나는 틴트가 아닌 립스틱이 어울리는 여자가 되었고, 하이힐을 신고도 비틀거리지 않고 허리를 곧게 세우고 걸을 수 있었다. 퀼팅백을 들어도 엄마 가방을 슬쩍 들고 나온 애 같지 않았고, 하얀 셔츠의 깃과 각이 딱 맞아 떨어지게 되었다. 아가짱 시절에나 입던 파자마가 다시 다른 맥락에서 어울리기 시작한 시점도 정말이지 그 때였다, 스물 다섯. 버겁고 무겁고 어렵던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브래지어 끈을 탁 하고 풀 때처럼, 확 쉬워졌었다. 사랑도, 일도, 온갖 관계들과 일상을 이루는 것들이 조금씩 익숙해졌던 시점, 스물 다섯. 내게 오렌지색 립컬러가 어울린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펄이 든 섀도우나 화려한 블러셔보다는 눈썹만 정리한 얼굴에 입술색보다 조금 더 붉은 정도의 립스틱을 발랐을 때 가장 예쁘다는 것도. 어떤 머리 스타일과 색이 잘 받는지, 어떤 옷차림이 편안하게 어울리는지 알게 된 것도 스물 다섯을 기점으로였다. 내가 어떤 사람과 잘 맞는지,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지, 어떤 미소에 홀리고 어떤 눈빛에 빠져드는지 알게 되었다. 진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들을 세 번쯤 거쳤고, 눈 감으면 떠오르는 얼굴들이 차곡차곡 쌓였고, 생각하면 입꼬리부터 올라가고 난 뒤에야 말할 수 있는 이름들을 가졌다. 스스로가 섹시하다고 느꼈던 것도 이쯤부터였다. 그래, 어쩌면 크리스마스 케잌이 맞을 수 있겠다. 크리스마스 케잌은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케잌 아니던가? 바로 그 날부터 역사가 쓰였듯, 스물 다섯부터 비로소 나의 나로서의 인생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I got this, I'm truly fine.

자기혐오와 자기애가 얽히고 섥혀 범벅이 되었던 소녀 시절 역시 이쯤으로 매듭을 지었던 것 같다. 나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자기용납을 시작했다. 실수는 계속되었고, 스스로에 대해 실망하는 순간은 이후로도 이어졌지만 한숨 한 번, 도리질 한 번이면 털어냈다. 말했듯 대부분의 것들에 손톱을 물어뜯지 않게 되었고, 그 누구보다, 남자친구보다 엄마보다 강아지보다 물론 친구보다, 나 자신을 사랑한다고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독일에서 체제했던 경험의 영향으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연습을 확실하게 끝냈다. 약간 설명하자면, 독일에서 나는 외모가 너무 확연하게 달랐고, 말투부터 행동, 성격, 문화, 배경 지식 그 어떤 것 하나 독일인들과 쉽사리 교집합을 찾기 어려웠다. 물티 쿨티, multi-cultural 하다는 베를린이지만 동네에서 동양인은 길 전체에서 한두 명 살까 말까였고 내가 사는 곳의 지하철역에서 나 외의 동양인을 본 적은, 글쎄, 우리 집에 놀러온 내 친구들 정도? 언제나 가장 눈에 띄는 사람, 좋든 싫든 시선을 받는 사람이 나였다.

그래서 오히려 신경쓰지 않을 수 있었다.


한국인들 사이에서만 살 때, 나랑 피지컬이나 얼굴이 어느 정도 비슷한 연예인을 보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일례로 나는 (이런 말 하면 스스로에게 무척 마이너스인거 알지만 그냥 예시를 들려면 어쩔 수 없다) 특정 아이돌을 닮았다는 말을 꽤 여러번 들었는데, 그것이 정말 고릴라와 침팬지 정도의 유사성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딜 조금 고치면, 몇 키로나 빼면 더 닮을 수 있을지 고민했었다. 실제로 성형수술을 해보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쌍커풀 수술로 눈을 조금 더 키우고, 코를 조금만 더 높이면 더 닮을 것 같아서.


그렇지만 독일에선, 냉정하게 말해서 나는 독일 초딩 여자애들 정도의 발육 수준이었고, 얼굴은... 거의 입체-평면 수준의 차이였다. 어느 날, 독일인의 미적 기준이 궁금했던 내가 내가 일하던 회사에서 제일 예쁜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냐고 동료들에게 물어보았던 적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정말 모두 입을 모아서 '카샤'를 말했는데, 내가 예쁘다고 생각했던 그 누구도 아닌 낯선 이름이었다. 그래서 누군지 확인하는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나로서는 일평생 단 한번도 예쁘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 타입이었다. 그리고 심지어 내가 보기엔 그녀의 실제 나이보다 10살은 많아보였다! 심미적 기준에서, 나는 그들의 취향에서 억만광년쯤 떨어져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 나는 깨끗이 항복했다. 나는 이 곳에서 '보편적인 미의 기준'에 단 하나도 걸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갑자기 키가 10센티미터쯤 자라고, 골반이 지금의 두 배로 넓어지고, 주먹만한 가슴이 머리통만큼 자라고, 혀를 쭉 내민 것만큼 코가 높아지길 바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그건 성형이든 뭐든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다시 태어나야 가능한 챌린지였다.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게 되었다. 왜냐면, '나 같이 생긴 사람들'과 비교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비교 대상이 없자, 오직 유일한 나의 (이 곳에서는 특이한) 생김새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게 되었다. 조금 못마땅하던 코 높이도, 약간 더 커도 좋았겠다고 생각해온 눈도 여기선 오직 하나 뿐이었고, 비교를 그만두자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래, 난 달라. 너네랑 다르지. 누구와도 같지 않아. 그래서 어쩌라고?'


물론 지금도 사투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긍정하기 시작한 것, 정말이지 스물 다섯부터였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스물 다섯 초반의 매일밤이 떠오른다.

지친 하루를 겪어내곤 온통 시달려 잔뜩 풀이 죽은 나는 나른히 가라앉아 가만가만 호흡했다. 이불을 사지에 휘감고는 가르릉가르릉 소리를 내면서 뒤척뒤척 뒹굴거렸던 밤의 시간들. 긴, 기나긴 베를린의 겨울밤. 그러다가 갑자기 치솟은 아드레날린, 으악! 난 내가 좋아! 다양! 사랑스러워! 멋져! 최고야! 넌 어쩜 이래? 하고 부르르 떨며 다리를 버둥거리던 나. 높다란 알트바우 천장, 예뻤던 전등 갓을 바라보며 발로 걷어찰 듯이 신나선 공중자전거를 타턴 가느다란 다리. 노란 조명 아래 내 다리가 유난히 갸날파 보이던 것도. 내겐 조금 너무 커다랬던 방 바닥의 나무바닥을 삐걱이며 서성이던 밤. 으음... 내가 나라서 행복해, 오늘도 고마웠어. 하고 까무룩 잠들던 밤.


물론 내가 스물 다섯에 반듯이 자른 단발이었던 것도 한 몫 할지도. 음악이 불러일으키는 심상은 참, 굉장하다. 베를린에서 샤워할 때마다 틀어놓았던 음악이 바로 아이유의 스물셋이었는데, 음, 그 때 나는 스물 넷이었고.


그녀와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난 그게 마음에 든다. 그녀가 지난 시간동안 성장해온 것이 느껴지는 새 음반을 듣고 있으면, 그 시간들 속에서 마찬가지로 훅 자란 내 모습이 보인다. 그녀의 성장이 눈부신 것만큼이나, 나 역시 그렇겠지.


아, 언제나 그렇지만 특히 오늘 밤은, 내가 나라는게 너무 행복하다. 누구와도 바꾸고 싶지 않은 알차고 가열찬, 보람되고 후회없이 감사한 삶이다. 감사합니다, 이지은씨. 당신의 치열함이 좋아요. 그대의 영리한 시선과 풍부한 목소리를 느낄 때면 나는 내가 더 좋아지거든요. 당신 못지 않게 지난 시간들을 성실하게 자라낸 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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