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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린플레이크 Jan 08. 2021

가족의 의미

베를린 다이어리 

지난 크리스마스는 남자친구의 부모님 댁에 가지 못하고 베를린에서 보냈다. 독일 남부에 있는 부모님 댁에서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냈던 이전 해와 달리, 이번엔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가족들이 아예 모이지 않기로 한 것. “연말까지 끝까지 조심히 지내서, 내년에 그동안 못 본 것까지 챙겨 보자”고 서로를 다독였다. 그래서 우리는 베를린에 남아 남자친구의 아이들과 그리고 전 부인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전 부인까지 같이 만난다고 하면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곳에선 그리 유별난 일은 아니다. 

이들이라고 헤어지면서 왜 힘든 시간이 없었겠는가 마는, 가장 중요한 아이들을 위해서는 항상 도와주고 협심한다. 전 와이프도 몇 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가 있어 우리는 아이들 생일이 되면 곧잘 모두 모인다. 그러면 아빠 쪽 커플, 엄마 쪽 커플, 그리고 두 아들이 모여 6명의 가족이 저녁식사를 하는 것이다. 결혼을 한 적도 없고, 아이를 가진 적도 없는 내가 이런 가족의 형태를 갖게 되리라곤 상상해본 적 없지만, 생각보다 나는 빨리 이 가족을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구성원이 되었다. 물론 그렇게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모든 것을 솔직하게 공유해주고, 가족에게도 나를 파트너로서 진실되게 소개해준 남자친구의 노력이 컸다.  


2주에 한번씩 주말에 아이들을 집으로 데리고 온다. 그때 전 부인과 그간의 안부를 묻는데, 갈 때마다 계절에 맞춰 나오는 트러플 버터나 딸기, 꾀꼬리버섯 등을 안겨준다. 소소하지만 그런 세심함이 고마워 나 또한 한국에서 받은 다시팩이나 마스크, 아시아마켓에서 산 막걸리 등을 사서 나누곤 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서울에 두고 온 내게, ‘남자친구의 전부인’도 어느새 친구 같고 가족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녀는 연말마다 전남편 가족에게 아이들을 보내느라 크리스마스를 아이들과 함께 보내지 못했다. 그런 그녀와 이번엔 아이들과 다같이 라클렛을 먹으며 크리스마스를 보낸 것이다. 찾아 뵙지 못한 부모님과는 화상채팅으로 ‘쭘볼(건배)’을 외쳤다. 록다운 상황 때문에 매번 가구 수를 따져가며 모임을 규제하고 있는 베를린에서, 우리는 아이들로 연결된 한 가구, 하나의 큰 가족이라는 걸 더 자주 피부로 느끼게 됐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의 아이가 나의 소중한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걸, 오십이 다 된 나이에 알게 됐다. 워낙 아이들을 좋아하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8살 난 둘째가 자기한테는 두 명의 아빠와 두 명의 엄마가 있다고 자랑하듯 얘기한 대목에서는 웃음이 나면서도 마음이 울컥하는 고마움이 있었다.  


요즘 한국은 생후 16개월밖에 안 된 정인이가 양부모(장하영과 안성은)의 잔인한 학대로 사망한 사건이 화제다. 학대한 내용을 일일이 읽기조차 힘들 정도로 가슴이 조여오고 슬프다. 그 말 못하는 아기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아프고 무서웠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이들의 만행을 보며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게 된다. 내게 가족이란 ‘소중한 것을 가장 가까이서 나누는 존재’다. 사랑과 행복, 시간, 건강, 웃음 등 좋은 것도 나누지만, 돈과 병, 아픔, 걱정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가난하고 아플 때 만큼 세상 힘들고 중요한 게 없는데, 그걸 가족이 몰라라 한다면 누가 나눠 가지려고 하겠는가. 패륜적인 부부는 입양한 딸과 아무 것도 나누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정인이는 가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족의 사랑을 나눠 가져보지 못하고 죽음에 이른 정인이가 하늘나라에서는 부디 고통없이, 평안하게 지내기를 빈다. 정인아 미안해.



이 글은 경향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베를린 다이어리> 컬럼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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