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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Jan 14. 2024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기브 앤 테이크를 읽고 있다. 역행자를 통해 '기버' 개념을 알았다. 기브 앤 테이크는 개념의 출처가 된 책이다. 


작년(2023년)의 새해 계획은 베푸는 사람이었다. 9월에 호주에 놀러 온 친구 덕에 역행자를 읽었다. 베푸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내게 기버 개념은 퍼즐처럼 맞았다. 그 이후로 기버에 꽂혀 있다. 기버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사람을 뜻한다. 기브 앤 테이크에 나오는 기버는 역행자 속 기버와 다르다. 역행자는 선택적 기버를 뜻했고, 기브 앤 테이크는 모두를 위한 기버를 말한다. 기브 앤 테이크의 개념이 더 이타적이고 아름답다. 



책 초반에 한 인용문이 등장한다. 영국의 시인 새뮤얼 존슨의 말이다. 이 말이 전방위적 기버가 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알려주는 기준이 된다. 좋은 말인 것 같아 발췌해 글의 제목으로 사용한다.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그가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에서 드러난다."



책에서 말하는 진정한 기버는 나의 이득이 아닌 상대의 이득을 위해 베푸는 사람이다. 돌려받을 것을 전제로 주는 사람은 매처다. 받은 만큼 주고, 준만큼 받아야 하는 사람이다. 도움이 되지 않을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기버다. 




진정한 기버 개념은 30대 후반을 사는 나의 제1 가치와 맞물린다. 바로 다정함이다. 그간 읽고 써온 모든 것의 정수다. 내가 합리적이라 판단하는 두 가지 틀이 있다.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한 '구조주의', 인간의 합리성에 의구심을 갖는 '행동경제학'이다. 환경이 인간을 만든다. 그래서 나는 모든 성취를 본인의 덕으로 돌리는 능력주의에 반대한다. 반능력주의자다. 내 풍요로움과 안정의 대표적 출처는 운이다. 그때 그 장소에 내가 있지 않았다면 나의 지금은 존재할 수 없다. 사소한 만남과 사소한 이벤트가 지금을 만들었다. 말인즉슨 나는 사소한 만남과 사소한 이벤트를 통해 아주 고된 매일을 마주하고 있을 수 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면 세상에 감사하고 겸손해진다. 아무리 대단한 개인도 세상을 이길 순 없다. 모두에게서 나의 조각을 본다. 그들이 행복하길 바란다. 그런 의지가 다정함이다. 같은 말이라도 상대가 미소 지을 수 있게, 사소한  기쁨의 출처가 될 수 있게 만든다. 함께일 때 타인을 기쁘게할 방법을 생각하고, 생각을 표현한다. 모두는 다정함을 필요로 한다. 기버가 말하는 되돌려 받지 않아도 줄 수 있는 사람이 대가 없이 다정한 사람이다. 




효율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대가를 바라지 않은 베풂이 어려웠다. 효율의 벽을 넘으면, 애초에 베풂이 효율 추구의 영역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면, 베풂이 쉬워진다. 진정한 의미의 다정함의 발현하면 순수한 마음으로 타인을 위할 수 있다. 




그럼에도 몇 가지 효율의 측면을 들여다보면 기버는 여러 장점이 있다. 우선 만족감. 남을 도우며 본인의 쓸모를 인식해 만족을 느낀다. 나은 사람이 되었단 자각과 함께, 존재를 긍정할 수 있다. 기버로 존재하는 것은 리스크 매니지먼트 측면에서도 유익하다. 테이커(착취자)의 경우 초연결 사회에서 금세 존재가 탄로 난다. 매처에 걸렸을 때 특히 곤란하다. 매처는 테이커의 불행을 위해 애쓰는 존재, 그러니까 열렬한 안티가 된다. 매처도 마찬가지로 단점이 있다. 호혜 원칙을 통한 베풂은 일종의 거래로 여겨져 뒷맛이 쓰다. 게다가 인맥도 좁아진다. 




"다른 사람이 도움이 필요할 때 함께하는 것뿐입니다." 기브앤테이크에 나오는 대표적 기버, 리프킨의 말이다. 세상에 이로운 존재가 되고자 하고 그렇게 행동한다. 성공은 온전한 나의 힘으로 이룰 수 없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해야 가능하다. 그들의 존재에 감사하고, 그들의 공을 치하하고, 나를 뒤로할 필요가 있다. 기꺼운 마음으로 남을 도우며 함께 성장한 리프킨이 좋은 예시다. 




기버로서 나는 어떤가. 부족하다. 타인의 실패를 농담 소재로 사용하고, 여전히 베풂에 대가를 기대한다. 또한 세상에 이롭지 않은 일도 한다. 요컨대 인격적으로 미숙하다. 




방법을 고안했다. 나는 타인에 다정한 말과 선물을 주고 싶다. 정서적 만족과 더불어 현실적 만족도 주고 싶다. 나는 부자가 아니다. 벌이가 한정되었고 사업의 특성상 업과 다운이 있다. 모든 자리에서 계산하고 인심 쓰기 어렵다. 쿼터제를 고안했다. 버는 돈이 많으면 높은 빈도로 상대를 위해 소비한다. 돈이 적으면 만남의 빈도를 낮춘다. 내가 더 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만남을 피한다. 선물은 형편에 맞게 구매한다. 내가 얼마나 그들을 좋아하고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지 표현하는 수단이다. 없으면 없는 대로 해줄 수 있는 게 있다. 100이 있다면 100의 선물을 줄 수 있고, 10이 있다면 10의 선물을 주면 된다. 돈이 적으면 적은 대로 상대가 원하는 것, 기뻐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데 더 시간을 쓰는 것으로 한다. 부족한 돈을 고민으로 채운다. 




베풂에도 효율을 따지는 성미가 남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효율을 따진다면 효율적 측면의 장점을 보여주면 된다. 기브앤테이크나 각종 경영서적에서 베풂의 유익함을 지속적으로 학습한다. 이 해결책은 임시방편이다. 왜냐하면 효율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대가를 바란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대가 없는 베풂, 조건 없는 다정함'에 대치한다. 서서히 나의 인간적 지향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고 그릇이 크고 여유가 있고 남을 위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 설령 베풂이 완벽한 비효율이라는 근거가 나와도 기버로서 살 것을 다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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