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고 쓸 때 무서운 것은, 상대의 권위와 배경에 눌려 비판적인 시선을 잃는 것이다. 전업 작가, 국문학과 교수 등의 타이틀에 지레 겁먹어, '아마 그들이 맞을 거야.' 하고 넘겨짚을 때가 있다. 논리적 오류, 문법적 오류를 봤음에도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려 든다. 읽기 전에 상대를 '몇 단계 위에 있는 사람'으로 상정하고 글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글을 보는 이해 시력이 좋지 않아, 제대로 된 비평도 못 한다. 잘 쓴 글, 논리적으로 완성도 있는 글, 작가의 사상이 제대로 들어간 글을 지속적으로 학습하며 선구안을 기를 필요를 느낀다.
내 글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문학평론가 최강민의 글을 읽으며 떠오른 질문이다. 몇 개의 칼럼을 본 후 얻은 답은, '갈 길이 멀고,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수준'이다. 요즘 어떤 주제로 칼럼을 쓸까, 잘 쓴 칼럼, 수준 높은 칼럼이란 어떤 것인가 고민한다. 기본적으로 말하는 바가 명확하고, 문장에 군더더기가 없고, 높은 수준의 배경 지식을 기반으로 쓰였으며, 자신만의 생각이나 답을 보여줘야 한다. 알고 있지만, 작은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표현이 더 적합한지 답을 내리지 못 하는 경우가 잦다. 국어사전을 통해 정확한 뜻을 찾아서 비교하지만, 이는 한계가 있다. 선택지의 모든 출처가 머릿속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인된 잘 쓴 칼럼을 찾는다. 브런치나 글쓰기 동호회 파운틴의 글은 재밌지만, 길잡이로써의 역할은 하지 못 한다. 그래서 직업적으로 몇십 년 동안 활동한 명망 있는 문학평론가, 칼럼니스트의 글을 찾아 읽는다.
담백한 글쓰기를 지향하는 나에게 과장은 버려야 할 첫 번째이다.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되거나, 주장의 근거가 감정의 호소로 흐르지 않게 신경 쓰는 편이다. 모순을 가리기 위한 불필요한 수사와, 애매한 표현을 내보내면 빈 공간이 생기는데, 논리로 메워야 한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 글쓰기 플랫폼엔 수준 낮은 글이 많다. 선별 능력의 부족으로, 그런 글에 영향을 받고 학습을 할까 두렵다. 위기감이 들 때, 앞서 말한 잘 쓴 칼럼을 찾는다. 돌고 돌아 웹진 <문화 다>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문화 다는 순전히 편집장인 최강민의 글을 보기 위해 방문했다. 낮에 구글을 통해 읽을거리를 찾았다. 이런저런 사이트를 기웃거리다 교수신문이라는 사이트를 발견했다. 깊이와 쟁점이 살아있는 학술 담론의 장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로 만든 곳인데, 문학평론보다 시사 문제를 주로 다뤄 흥미가 떨어졌다. 얼마 없는 문학 칼럼 중에 최강민의 글이 있었다. 현시대 한국 작가들을 분석하고, 때로는 비판했다. 이름만 들어도 '와' 소리가 나는 중견 작가들도 그의 날카로운 시선을 피해갈 수 없었다. 문장이 깔끔하고, 깊이가 있어, 작가의 다른 글이 읽고 싶어 졌다. 문화 다의 편집장이란 직책을 보고, 문화 다에 접속해 즐겨찾기를 눌렀다.
작년 말에 쓴 칼럼을 하나 골라 읽었다. 재밌게도 만화책에 관한 글이었다. 줄거리를 소개하고, 등장인물과 상황을 알기 쉽게 정리했다. 글 후반부에는 만화의 내용과 지금의 한국의 상황을 대조해 분석했다. 철학, 경제, 사회 전반에 걸친 이해로 작품을 낱낱이 해부했다. 논리가 탄탄해 거슬리는 부분도 없었다. 특히 분석을 끝마치고 마지막에 선택지를 제시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내공 없이는 나올 수 없는 문단이다.
- 신자유주의 체제가 전지구를 지배하면서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탈국가를 해도 여전히 신자유주의 체제가 덜한 국가를 선택할 수 있는 정도만 선택의 여지가 남아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체제 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선택 사항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첫째, 대한민국에서 미개한 노예가 되어 극우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일베와 어버이연합 등이 보여주는 모습이다. 열심히 450 볼트의 전기 스위치를 누르는 삶이다. 둘째, 후지모토처럼 탈국가의 대열에 동참해 좀 더 나은 환경이 있는 국가로 탈출하는 것이다. 헬조선 현상의 구체적 실행이다. 셋째, 탈국가의 이민을 할 수도 없다면 이 체제를 바꾸도록 저항, 투쟁, 변혁이라는 항목에 자신의 삶을, 미래를 걸어야 한다. 지배권력의 명령을 거부하는 길이다. 넷째,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고 그냥 시간을 뭉개면서 대충 살아가는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그냥 믿는 것이다. -
글을 읽으며 초라해졌다. 그만큼 이해하고, 분석하고, 답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글쓰기 역사가 짧아서, 배움이 부족해서, 재능이 모자라서이다. 자신의 생각을 담아낸 글이 좋은 글이다라는 말에 반대한다. 생각의 수준은 분명히 존재하고,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능력의 수준도 존재한다. 좋은 글과 나쁜 글은 나뉜다. 나를 돌아본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쓰는 글은 좋은 글이 아니다. 사회 여러 분야에 대해 이해가 담긴 것도, 핵심을 찌르는 날카로움이 있는 것도 아니다. 유기적인 분석과 고민을 문장에 싣지 못 하고, 짧은 식견으로 주제의 겉만 핥고 있다. 건물은 기둥이 튼튼해야 무너지지 않는다. 마음이 급해, 첨탑만 길게 더 길게 만들고 있다. 나는 더 잘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