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15년간 지속되어 온 불면에 대한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으며 이를 ‘단약도전기’라는 의욕 넘치는 제목을 붙일지, ‘불면일지’라 가볍게 칭할지 고민했다. 그러다 기면증이 밝혀지고 ‘과수면장애일지’라는 옵션도 생겼다. 하지만 나는 ‘도전’이 여전히 자신 없고 뒤따라올 좌절이 두렵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나아지길 바라는 희망은 끊임없이 피어난다.
잘 자고 싶다.
약을 끊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짐이 아닌 힘이 되고 싶다.
질긴 생명력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 마음 깊은 곳에선 회복에 대한 열망이 식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질병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볼 수 있게 해 줬다. 또 앞으로의 삶의 방향도 제시해 줬다. 이전의 마음가짐과는 달라졌다. 우선, 기대 0 프로젝트는 계속된다. 만성적인 질병에 ‘희망은 독이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음울한 자세를 취하면서 살 생각은 없다.
나는
과거를 탓하거나 부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미래를 걱정하거나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을 충분히 느끼고 매 순간에 만족하고 감사하기로 했다.
최선을 다하지 않기로 했다. 최선을 다하면 죽으니까. 하지만 몰입은 나를 살린다. 무용한 일에 열과 성을 다했을 때 오는 진 빠진 느낌과 다르게, 내가 진정 좋아하는 일에 파고들고 있으면 살아있는 기분이 든다. 생기를 느낀다. 나는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엔 질보다 양 컨셉으로. 나는 최대한 <자주> 유쾌하기로 했다. 유머를 잃지 않기로 했다. 사소한 농담을 하고, 엉뚱한 장난을 치고, 그렇게 틈틈이 웃으며 행복의 빈도로 불행의 강도를 눌러버리기로 했다.
나는 현재를 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