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두개직류자극술(tDCS)
뇌파검사와 첫 번째 진료 후, 선생님이 짜주신 계획은 크게 두 가지였다.
1. 뇌파치료, 그리고 2. 약물.
뇌파치료의 정식 명칭은 경두개직류자극술(tDCS)이다. 나만 그리 느끼는지 몰라도 어감이 무시무시하다…뇌파검사 전 주눅들었던 마음이 다시 되풀이됐다. 하지만 검색 결과, 경두직류자극술은 '비교적 안전한 비침습적 뇌자극 방법'으로 알려져 있었다. '비침습적'.... 뭐 이런 말은 대충 넘어가고, 일단 '비교적 안전'하다고 하니까 안심했다.
치료 방향은 내 예상과 달랐다. 밤에 잠을 더 깊게 자게 만들거나 / 낮 동안의 피로를 없애주거나 하는 쪽으로 뇌파치료를 받을 줄 알았는데, 뇌파검사 결과를 보고 선생님은 오히려 반대로 방향을 결정하셨다. 나는 각성상태가 우울/번아웃 상태를 이겨버린지라 일단 각성 억제가 우선이라는 것. '그럼 낮동안 과하게 피곤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일단 선생님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앞으로 최소 10회, 각성을 줄일 수 있는 부위에 전극을 붙이고 뇌파치료를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뇌파치료는 자주 하는 것보다는 꾸준히 오랜 기간 받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한다. 빈도보다는 지속성이라는 것. 최소 주 1회를 추천해 주셨는데, 최상의 효과를 최대한 빨리 보고 싶었던 나는 주 2회를 받기로 했다.
효과는 언제쯤 느낄 수 있을까. 당연히 사람마다 편차가 크지만, 뇌파치료는 비교적 강한 치료에 속해 빨리 효과를 보는 사람은 단 2회 만에도 상태가 많이 호전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 정도는 기대하지도 않기에(기대하면 안 되기에!) 나는 효과가 더딘 사람의 경우를 물어봤다. 효과가 아예 없는 사람도 물론 꽤 있고, 최소 10회 이상은 받아야 한다고. 보통 대학병원에서는 10~30회를 권장한다고 한다. 나는 그냥 마음을 비우고 치료기간을 길게 잡기로 했다.
약을 전부 바꾸기로 했다. 선생님은 내가 이전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듣더니 고개를 저었다(옮긴 병원 특). 그리고는 이전 약들은 의존성이 강해, 바로 단약이 힘들더라도 의존성 없는 약물들로 전부 교체하자고 말씀하셨다. 물론 이전 약들을 바로 끊기엔 부작용이 우려되니 조금씩, 천천히 줄여가며 다른 약들로 대체하기로.
아침약은 각성 효과를 내는 약, 그리고 번아웃과 우울증을 완화해 주는 약 두 종류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피로도가 클 것으로 예상돼 하루 커피 한 잔은 허가받았다. 그리고 저녁약은 잠에 빨리 들고, 덜 깨고, 악몽을 줄이는 약들로 구성되었다. 또한 중간에 깬 뒤 잠이 오랫동안 안 온다면, 심지어 다음 날 중요한 일정이 있다면 새벽에 복용할 '필요시'약도 처방되었다.
사실 병원을 바꾸기 전부터 걱정했던 증상이 있었다. 언젠가부터 침대에 자려고 누우면 내가 다리를 미친 듯 떨고 있다는 것이었다. 초반엔 크게 인지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누워서 끊임없이, 심지어 빠른 속도로 다리를 움직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가만히 있으면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했다. 나는 낮에도 종종 다리를 흔들어 처음엔 별 생각이 없었다가, 문득 어느 날 '하지불안증후군'에 대한 기사를 접하고부터 조금씩 걱정되기 시작했다. 증상을 훑어보니 겹치는 부분이 꽤 있었다.
그래서 첫 진료 때, 이 부분을 선생님에게 질문했다. 선생님은 누워서 다리를 떠는 증상은 빈혈 탓일 경우도 있으니, 우선 산부인과 등 다른 병원에 가서 빈혈 검사를 해보길 권하셨다. 그리고 검사 결과... 빈혈은 없었다. 그렇게 하지불안증후군 약도 추후 추가됐다. (이 약은 잠들기 2-3시간 전인 저녁식사 타이밍에 먹어야 했다)
그래서 이전 병원의 약은 [아침/저녁]에만 복용했던 반면, 새 병원에선 [아침/저녁 먹고/자기 전/필요시] 이렇게 3~4차례에 걸쳐 복용해야 하는 약들로 처방받았다.
처방전을 받았을 때, 약의 종류가 많아 보이면 기운부터 빠진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선생님은 "약이 개수는 많지만 용량은 모두 적으니 너무 염려 말라"며 날 안심시켜 주셨다.
약물은 3주는 지나야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울증도 일단 약물로 최대한 막아보다가, 3주 뒤에도 차도가 없으면 다른 치료를 병행하기로 했다. 이 치료는 뇌파치료와 일면 맥을 같이 하는데, 정식 명칭은 TMS(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이고 전두엽에 자극을 주는 전형적 우울증 치료법이다. 이 또한 그 뭐시기(?) 비침습적 치료라고 하는데 역시나 잘 모르겠다.... 어쨌든 우울증 완화에 있어 탁월한 효과를 보여 대학병원에서도 많이들 권하는 방법이라 들었다.
첫 뇌파치료는 역시나 함께 간 언니 덕에 아무런 불안도, 걱정도 없이 받았다. 우선 작은 방으로 안내받은 후, 첫 진료에 앞서 필수적인 동의서를 작성했다. 언제나처럼 3초 잠깐 읽는 척하고 바로 싸인. 그럼에도 혹시나 모르니 사진은 찍어뒀다.(그냥 동의서를 꼼꼼히 읽어...)
머리, 그리고 팔에 패치 부착 후 치료 내내 이런 모습으로 30분을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30분이 마치 3분... 까진 과장이고 10분처럼 빨리 간다. 그도 그럴 것이, 저 편안한 소파가 있는 작은 방엔 OTT 시청이 가능한 TV와 내가 언제든 조절할 수 있는 에어컨이 구비되어 있다. 뇌파치료 동안 무조건 깨어있어야 해서 졸림 방지를 위한 최적의 환경을 마련해 놓은 듯했다. 강도는 제일 약하게 시작한 후, 회차가 늘어남에 따라 점차 강하게 설정한다. 그날그날 컨디션에 따라 조금 간지럽거나, 따끔따끔하거나, 혹은 살짝 아프기도 한데 참을만하다.
치료동안엔 핸드폰을 해도 되고, 심지어 언니와 수다를 떨어도 된다. 졸지만 않으면 되는 듯. 언니와 시시콜콜한 얘기를 시작하면 그땐 정말 치료 시간이 3분인 것처럼 느껴지더라.
문득 치료실에서 언니 핸드폰으로 토이스토리 4 하이라이트 장면을 같이 봤던 날이 떠오른다. 극 T 언니의 도저히 알 수 없는 눈물버튼... 언니는 내가 이해하지 못할 타이밍에 눈물을 후두둑 흘렸고, 나는 그 모습이 황당해 빵 터졌다. 그리고는 언니는 내가 웃자 휴지로 눈물을 닦으며 갑자기 껄껄 웃기까지 했다... 조금 무서웠고...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또, 평생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고.
그리고 전극을 머리에 붙이면서 선생님이 하셨던 말도 기억에 남는다.
"우리 병원 tDCS 환자 중 두상이 1등이에요."
언제나 진지한 선생님이 뜬금없이 저런 엉뚱한 칭찬을 해주시다니. 나는 순간 당황해서 대충 어버버 하며 웃었던 것 같다. 감사하다고 하기도 웃긴 듯. 그래도 기분 좋았다. 뭐든 1등은 좋은 게 아닌가. 이런 외모칭찬은 대환영이다.
그렇게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나의 뇌파치료가 시작됐다. 언니가 함께해 주니 전의까진 아니어도(전의 안된다 기대하면 안 된다 전의 멈춰!) 은근한 의욕이 샘솟았다. 어떻게든 되겠지 뭐. 더 나빠질 수는 없으니 두려울 것도 없다. '아주 조금, 미세하게라도 나아지겠지. 그리고 그거면 됐지.' 첫 치료 날 밤,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앞으로 술 절대 마시면 안 되는데. 무슨 재미로 사나'라는 생각과, ‘근데 남자친구는 왜 또 연락이 안되지.‘ 라는 생각도.
그리고 1차 치료 바로 다음 날, 나는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맞다. 내 글을 읽었단 이유로 나를 분노케 했던 바로 그 전남친...이긴 하지만, 사실 안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헤어진 직후 이병률 작가의 시에서 그를 떠올렸던 부분은 "내가 한 사랑이 겨우 그랬나 싶어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난 것이 몇 번이었나"였다. 그런데 또 웃긴 게, 양귀자 작가의 글에서도 그를 떠올리고 있더라. 그런 걸 보면 역시나 귀한 인연이었다. 그 사람이기에 가능한 귀여운 순간들이 많았다. 그는 스스로를 나쁜 사람으로 평가하곤 했는데, 이제야 말하지만 누구나 알거야. 그는 좋은 사람이다.
"사랑하지 않고 스쳐지나갈 수도 있었는데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걸음을 멈춰준 그 사람이 정녕 고맙다고."
- 양귀자, 모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