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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Sep 18. 2024

그냥 피곤한게 아닐 수도 있어요.

수면센터에서의 뇌파검사(EEG)

최근 브런치에서 암 투병일지를 읽었다.


가늠할 수 없는 공포와 고통을 작가님은 담담하고 솔직하게, 그리고 심지어 사랑스럽게 써 내려가고 있었다. 4기라는 숫자에 기죽지 않았다. 당장의 막막함보다 가족들의 슬픔을 염려했다. 항암 전 매번 루틴으로 엄지 척 사진을 찍는, 유쾌하고 용감한 작가님에게 어찌 누가 감화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나이 먹고 "나만 생각할 거야!" 다짐했던 나는 숙연해졌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작가님 같은 사람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생각했다. 작가님의 아픔에는 연민과 슬픔을, 회복에는 안도와 행복을 느끼는 걸 보니 나 역시 조금씩 나아지고 있나 보다고.


지난 몇 개월간 나의 감정은 극도로 무뎌져 있었다. 원체 주제넘다 싶을 정도로 감정이입을 해, 매체에 불우이웃이라도 나오면 속상해 미쳐버리곤 했었는데 말이다. 나는 하루 몇 시간, 아니 단 몇 분이라도 개운함을 느낄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이 부러웠고 그 외의 감정들은 닳아 있었다.


요즘은 다행히 예전의 컨디션을 회복하고 있나 보다. 어제 나는 용감한 작가님에게 보낼 응원의 말을 한참 동안 고르고 골랐다.





아픈 사람에게 조언 내지 위로를 할 때에는 평소라면 사용하지 않을 온갖 ‘세심 에너지’를 전부 끌어모으곤 했다. 나는 디뎌본 적 없는 고통을 준비자세 없이 듣게 됐을 때를 기억한다. 위로는커녕 어떤 표정과 반응을 보여야 할지 당혹스러웠다. 결국 바보 같은 조금의 어버버 끝에 말을 찾지 못하고 꼭 안아주는 게 나의 최선이었다. 어쩔 땐 보편적이고, 그렇기에 기계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는 위로를 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무언가 빈 듯한 형편없는 위로를 건네고 돌아서 후회했던 날들이 정말 많았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쉽게 댓글을 달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찾고 있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라며 고통에 공감과 연민을 표하면서도, 과하게 동정하지 않는 자세를. “다 지나갈 거예요, 별거 아니에요.” 라며 상태를 파국화시키지 않으면서도, 그간 겪은 아픔을 대수롭지 않은 양 치부하지는 않는 자세를.


어렵다. 어렵게 생각하다 보면 사실 한도 끝도 없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어느 날은 내 고통을 나보다 크게 느껴주는 이가 도움이 됐고, 어느 날은 내 고통을 별일 아닌 걸로 만들어주는 이에게 감사하기도 했다. 결국 아무 말 없이 꼭 안아주는 게 최선인 건가.


작가님은 모든 종류의 말들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결국 그 글에 댓글을 달지 못했다.





내가 이렇게 위로의 말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된 데에는 역시 불면증 탓이 컸다. 여러 말들에 자주 다쳤으니까.


사실 불면증이라는 게, 병원에서의 면밀한 검사를 통해 수치화되어 진단받은 질병이라기보다는, 우리 현대인들이 겪는 수면 부족을 세 글자로 줄여 말하는 쪽에 가깝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모두의 불면증. 매일 모두가 겪는 어려운 밤들. 나 말고도 다들 지난밤 잠을 설쳤으니 불면증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운용하지 못하는 나에게 위로해 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건 어찌보면 당연했다. 다시 말하지만 모두의 불면증이었고,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은 이 정도의 불편함은 별일 아닌 듯 감내하고 성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있었으니까. 제일 기본으로는 부모님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꾸준히 매달 돈을 벌고 있었다. 나이에 걸맞은 당연한 사회적 함의였다.


그리고 나는 이조차 못 하고 포기한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여유가 있으니 포기할 수 있구나, 부럽다." 했고, 퇴사 후 이어진 나의 불면증엔 "근데 그렇게 포기하니까 더 못 자지." 했다. 나의 불면증은 배부른 소리이자 스불재,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었다. 인정받지 못하는 피로고, 인정받지 못하는 우울이었다.



그런데 짜잔. 언니와 간 수면센터에서 뇌파검사가 결과가 나왔다.






 "우울증과 번아웃은 이미 오랜 기간 지속돼 만성화됐고 그래서 하루종일 피곤한 건데, 또 각성 정도가 이걸 다 덮을 정도로 세서 늘 두근거리고 잠이 안 오는 것"


이라는 진단이었다. 다시 말해 나는 기준치보다 더 피로한 게 맞았고, 그럼에도 내가 밤에 잠을 못 자는 건 커피나 숏폼 탓이 아니라 지나친 각성 탓이었다. 내가 직접 증상을 설명해 진단이 내려지는 정신과와 다른, 명쾌하고 객관적인 답이었다.


그럼에도 보자마자 "뭐 이래요?" 싶었던 이유는... 나른함과 예민함 / 졸림과 깸 / 번아웃과 각성이 대체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 건지, 이건 마치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었던 건지, 하는 의문이 생겨서였다. 혼란스러워하는 나에게 선생님은 별 고민 없이 "네. 가능합니다." 답했고 나는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그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나 피곤한데 잠 안 와" 이 말을 시각화하면 저 그림과 가깝지 않을까. 그냥 매일 밤 내가 느끼는 기분 그 자체였다.


중요한 건 전부 엄살이 아니었다는 거다. 하루 만에 나는 힘들 자격과 피곤할 자격이 생겼다. 뼛속까지 F인 내가 정성 어린 위로보다 객관적 지표에 위로받았던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선생님은 "어떻게 이렇게 지냈어요? 많이 힘들었겠네."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마음이 몹시 홀가분해졌다.


그러니까 나의 불면증은, 스불재가 아니었다.




(+추가) 아래 이미지도 뇌파 검사 결과인데, 선생님이 해석을 해주시지 않는다... 해석 가능한 분이 혹시 있으실까 해서 추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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