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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Sep 20. 2024

“3개월 봅니다.”

단약에 대한 포부


뇌파검사를 마친 후. 이마에 웃기는 자국이 남았다.

뾱뾱




사실 초진 때 당일 뇌파검사를 제안받았는데, 나는 생각해 보고 다시 오겠다며 후퇴했다. 왜냐면…. 무서웠다. 전기 활동 측정한다는 뇌파검사에 대한 설명에서 ‘전기’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감이 있었다. 그전엔 딱히 뇌파검사에 대해 들어본 적도, 검사장비를 병원이나 매체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본 기억도 없었기에 괜히 더 무시무시하게 들렸다.


막… 전기 찌지직! 감전돼서 무지 아플 것 같고. 아니면 자칫하면 전기자극으로 기억 일부를 잃을 것 같고…그런데 검색해 보니 안전하기로 정평이 났다 하네. 그래서 바로 다음 진료 때 검사를 실시했다.


뇌파검사 방법

검사는 대략 한 시간이 걸리는데, 우선 작은 방에 들어가 머리 여기저기에 작은 전극들을 붙이고 멍하니 한 군데를 응시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안내에 따라 눈을 감고 몇 분, 또 눈을 뜨고 몇 분을 가만-히 있는다. 중요한 건 이때 절대로! 잠에 들면 안 된다. 그건 내 특기였고, 겁먹었던 게 머쓱하게도 거의 통증이나 자극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적인 뇌파검사 주기는 3개월 간격이라고 한다. 비용은 약 10만 원. (비급여 실비보험 적용 안됨) 나는 6월 말에 검사를 받아 다다음주에 다시 두 번째 뇌파검사를 받기로 했다.


사실 두렵다. 선생님은 상태가 그때와는 많이 달라져서  굳이 안 받아도 될 것 같다 했는데 왜 이리 확인하고 싶은지. 큰 차이 없으면 다행이고, 더 얼룩덜룩 엉망진창의 색들이 나올 수도 있는데. 실망할 수도 있는데. 모르겠다. 희망을 경계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는데 또 이제부턴 되는 대로 두기로 했으니, 그냥 희망은 꺾이는 맛이지 뭐~하는 마음으로 살면 또 어떻게 될지 궁금도 하네.





우울증 선별검사

참고로 뇌파검사 외에 우울증 및 불면증 선별검사도 했는데, 이는 환자가 주관적으로 근래의 기분상태를 평가하는 검사였다.


우울증 및 불면증 선별검사


생각보다 결과가 세게 나와서 놀랐지만 한 친구가 나의 결과지를 보더니 대수롭지 않게 말하더라.


 “근데 저거 자기가 설문하는 거니까 요즘 사람들 다 저렇게 나올걸?ㅎㅎ”


(그러니까 다시, 인정받을 수 없는 우울과 인정받을 수 없는 불면증이다…) 하여튼 그래서인지 나 역시 크게 와닿진 않았다. 참고용으로 사진만 찍어뒀다.


선별검사 결과에서 조금 웃겼던 건 우울증, 불면증, 즐거움 모두 정상 범위에서 벗어나 있는데, 충동성(무계획/인지/운동)만은 극히 정상이라는 것. 홧김에 섣부른 행동을 할 걱정은 안 해도 될 듯하다.





뇌파검사 결과 해석

다시 한번 뇌파 검사 결과를 간략히 요약하면,

1. 만성이 된 우울증과 번아웃, 그리고 그로 인한

2. 전두엽 기능 상실, 마지막으로

3. 과각성상태 였다.


나의 뇌파검사 결과


아래 사진은 비교를 위한 건강한 뇌파 패턴 예시. 반을 갈라, 우측이 정상 뇌파 패턴이다.

치료 전/후 뇌파 피교 예시


 1. 번아웃

나의 뇌파검사 결과 사진을 보면 Delta파, Theta파 모두 짙은 푸른색이다( 1열 1, 2행). 그러나 정상 범주의 사람들은 아주 낮은 수준으로 활동하고 있는, 옅은 녹색의 양상을 보인다. 즉 집중할 수 있고 인지 기능을 최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 극심한 피로와 주의력 저하를 겪는다는 의미였다.


2. 전두엽 기능 상실

그리고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전두엽 기능이 많이 약화돼 있었다. 하여 브레인포그, 그러니까 인지기능 저하, 기억력 감퇴와 같은… 내게 제일 속상한 증상들이 점점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3. 과각성 상태

그럼에도 어이없는 건, 이 축축 쳐지는 푸른색의 증상들을 빨간색의 각성 상태가 꺾어버렸다는 것이다. 결과지의 두 번째 줄은 각 뇌파의 강도를 상대적으로 비교한 그림인데, 나의 뇌파 사진에서 마지막 그림(2열, 5행)을 보면 파란색은 온데간데없다. 우울감보다 예민함이 훨씬 크다는 뜻이다.




앞으로의 치료

선생님과 나의 목표는 간단했다. 단약. 이를 위한 방안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1)  뇌파 치료,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2) 약물 처방이었다.


진료실을 나서면서 나는 선생님에게 물었다. “해봐야 알겠지만… 저 얼마나 지나면 약을 전부 끊을 수 있을까요? “ 그러자 선생님은 언제나처럼 명쾌하게 말했다.


“3개월 봅니다.”


3개월.

징글맞던 15년간의 투약,

그러나 단약까지는 단 3개월.


기대를 억누르기 힘든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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