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의 수면 전문 병원
올여름 찾아간 병원은 여러 군데 지점을 둔 전문적인 수면 치료 센터였다.
'수면 센터.' 명칭부터 참 뭐랄까, 본격적이다. 사실 십여 년 전에도 수면 전문 병원에 가본 적이 있다. 하지만 수면 전문 이래 봐야 특별히 밝혀낸 것도, 별다른 치료 효과를 보지도 못했기에 실망만 더해진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약을 먹지 않고도 숙면할 수 있을까? 일단 십 년 전의 나는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약을 먹고도 숙면할 수 없어서 문제였다. 심리상담과 동네정신과 병원이 나의 불면증 치료에 한계를 보이기 시작하자, 나는 결국 끝판왕을 찾아갔다. 예약부터 힘들고, 교통편은 무자비한 데다가, 끝없는 대기시간을 견뎌야 하는데도, 비용은 몇 곱절인... 대학병원 수면전문센터였다.
나의 증상을 간략하게 적자면 1. 잠에 드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2. 자주 깨고, 3. 가위에 자주 눌리고, 4. 악몽과 자각몽을 자주 겪고 5. 그러니 낮 일상생활에서 지나치게 피로하다는 것이었는데, 사실 돌이켜보면 강도와 빈도는 덜했지만 어릴 적부터 겪어왔던 증상들이었다. 그러니 애초에 심리적인 문제에 앞서 뇌구조학적 원인을 찾는 쪽이 내게는 더 맞는 방향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처음 간 대학병원 수면센터에서는 이런저런 검사를 받았음에도 불구, 마땅한 답을 찾지 못했다. 비싼 돈 들여 수면다원검사(Polysomnography, PSG)라는 거추장스럽고 힘든 검사까지 받았건만 결과는 애매~했다.
수면장애 분야 최고 권위 교수님은 나의 뇌 구조에서의 특이점을 찾았으나 확신이 없어 보였다. 뭐라더라,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사람의 뇌에 24시간 주기를 관장하는 특정 부위가 있는데, 나는 그 부위가 취약하게 타고났다 는 식의 진단이었다. 그리고는 당시 의학기술로 그 구조를 바꿀 방법이 없다며 말끝을 흐렸다.
실망했다. 검사 장비는 다른 병원들에 비할 바 안되게 신식에 획기적이었으나, 높은 정확도의 결과지를 받아도 해석을 못하면 그저 종이 몇 장일뿐이었다. 물론 CD를 동반한 몇 십만 원 값의.
대충 생물학적 원인이 있다는 건 알게 됐지만, 이를 밝힌 교수님의 어딘가 자신 없어 보이는 태도과 치료에 대한 회의적인 진단은 나에게 “그렇게 태어났으니 그냥 받아들이라”는 기운 빠지는 선고로 들려 실망스러웠다. 어떻게, 딱히 방법이 없다는 거니까.
엄마와 나란히 진료를 받던 도중 교수님은 다음 환자를 위해 황급히 자리를 뜨셨는데, 지금 보면 다분히 전문적이고 합당한 태도였음에도 당시 나에게는 차갑게 느껴졌다. 개인적인 감정까지 합쳐져 혼자 많이 서운했나 보다. 그도 그럴게, 한 달가량 입원하는 동안 교수님을 매일 만나니 많이 의지했고 끝도 없이 신뢰하고 있었으니까. 친밀감까지 쌓은 순진한 20대 시절 나는 일순 포기당한 기분이 들어 속상했다.
그 뒤에는 여러 개인 병원과 상담센터를 전전하며 시간이 흐르고 또 흘렀다.
병원을 옮길 때마다 "이런 지 얼마나 됐어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나도 모르게 햇수를 줄여말하곤 했다. 그러면 안 되는데, 아니 그럴 필요도 없는데. 시간이 오래 지났다는 건 내 노력부족으로 느껴져 창피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딱히 나아질 가능성이 크게 없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아 새로 만난 의사 선생님에게 말하기 꺼려지기도 했다. 시간처럼 나도 어떻게 흘러 흘러 이 병원까지 왔나…하는 조금의 절망감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당연히, 매번 같은 증상을 설명하는 일에 넌더리가 났고.
그러나 올해 수면센터를 다시 찾았을 때에는 시간이 오래 지났다는 사실이 '절망'이 아닌 '희망'이었다. 시간은 나를 변하게 하진 못 했지만 의학 기술을 변하게 했을 게 분명하니까. 이번에 나는 마주 보고 있는 담당의가 아닌, 의학 발달 속도와 전 세계 똑똑이들에게 기대를 걸어 봤다.
최근 몇 년간 신경정신외과만 전전하다 정말 오랜만의 수면 전문 병원이었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라, 당연히 언니와 함께였고.
수면센터에 들어서자 입구부터 일반 정신과와는 다른 공기를 느꼈다. 대기실에 '희망의 문구' 대신 의학 전문 서적에서 볼 법한 뇌 구조 사진들이 붙어있었고, 기분 탓일지 몰라도 대기하는 환자들 역시 지쳤으나 당당해 보였다. 행동과 목소리는 크고 적극적이었으며 간호사를 대함에 있어서도 거리낌 없이 밝은 경우가 많았다. 그곳에 모여있는 사람들 모두 일반 정신과에서 볼 법한 다른 환자들과 다를 바 없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다른 정신병이 아닌 오롯이 '수면장애'를 앓는 환자들만 모였다는 사실이 서로에게 암묵적인 안심이 됐을지도 모른다. 혹은 보다 세부적인 공감대가 생겨서일 수도 있겠다. 슬쩍, 하고는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나 역시 그곳의 다른 이들에게 은근한 친숙함을 느꼈으니까.
진료실에 들어갈 차례가 되자 언니는 "저도 들어가도 되나요?"라고 직원분들에게 물었고, 나는 새삼스럽게도 혼자선 아무것도 못 하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 들어 슬쩍 민망해졌다. 이내 "당연하죠."라는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오예 뭐어때 나 어린아이맞음응애' 하며 언니를 데리고 쫄래쫄래 원장실로 들어갔지만. 그리고는 매번 그래왔던 듯, 의사 선생님 앞에 나란히 앉았다.
"안녕하세요."
"네, 어서 오세요."
마치 음식점에 들어선 듯 밝은 목소리로 인사해 주던 선생님의 첫인상이 기억난다. 얼굴 반을 마스크가 가리고 있었지만 단정하게 정리한 짧은 머리, 꼿꼿한 자세, 단호한 눈빛에서 신뢰감이 느껴졌다. 다소 타성에 젖은, 빠르게 흩날리는 기계적인 말투도 괜히 전문적이고 당차게 들렸다. 어쩌면 그냥 내가 그렇게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경계해도 또 자꾸만 새로이 기대해 버려서.
대화는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부터 시작됐다. 나는 다른 정신과에서 이미 많이 리허설을 한 덕에 아주 짧고 굵게, 보다 정확하고 신속하게 내 상태를 읊었고, 표정 없이 듣던 선생님은 중간중간 "어휴, 십 년이요" "뭐 다 몇 년 단위네요" 라며 내가 제일 듣기 싫은 탄식을 내뱉었다. 언니는 옆에서 메모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고.
그리고는 내가 한 번도 해보지 못 한 검사를 제안했다. 얼핏 들어본 적은 있으나 내가 할 일은 없을 줄 알았던 검사. 뭔가 있어 보여서 괜히 더 무섭고 꺼려졌던 검사. 머리에 전극을 몇십 개 붙이고 뇌의 미세한 전기 활동을 읽어내는 뇌파검사(EEG: Electroencephalography)였다. 이렇게 긴 영어단어 첨 봐서 당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