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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Sep 13. 2024

언니와의 꽉 찬 여름

본격적 치료의 시작

불면증의 종류 중 희귀 질환에 속한다는 나의 만성 질환. 희귀 질환 중에서도 희귀한 여러 증상들. 그 본격적 치료가 시작됐다.


물론 나는 언제나 '본격적 치료'를 한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에 임했지만, 이번의  '본격적 치료'는 달랐던 것이 혼자가 아니었다. 언니와 함께였다.


우리 언니로 말할 것 같으면

새똥이 한 발 차이로 눈앞에 떨어졌을 때 아쉬워하는 사람이다.


“새똥을 맞아야 엄청난 행운”이라며,

한발 늦었다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조금 이상한 사람이고

그렇게 자주 엉뚱해서 특별한 사람이다.


그리고 언니는

결혼식 2부 드레스를 eBay에서 8만원에 구매하는 사람,

가족한정 F 99, 그 외의 사람에겐 T 99인 사람,

말 던지는 거 보면 세상에서 제일 웃겨서 아무래도 천재가 분명한 사람에다가


나와는 많이 다른 사람,

제대로 할 엄두가 안나 늘 시작이 어려운 나와 달리

뭐든 얼렁뚱땅 쉽게 쉽게 해치우는 사람, 그리고 결국 다 해내는 사람,

학창 시절 쫄리는게 싫어서 여유롭게 천천히 등교했던 나와는 또 달리

항상 아슬아슬, 머리도 안 말린 채 뛰어가곤 했던 사람,

덕분에 폐활량이 늘어 오래달리기 반 1등을 거머쥔 사람,

J인데 P가 되기로 노력하는 중이라는데… 내가 보기엔 이제 그런 노력 그만해도 될 것 같은 사람이다. (애초에 P였을거 같은 사람이다…)


그리고

명품업계에서 일하면서도 수트는 미쏘 / 귀걸이는 자라(쇠독위험을 무릅쓴) / 신발은 지하상가 제품을 신고 / 커서도 여전히 머리를 안 말리고 출근했던 사람,

그래서 애초에 드라이기가 필요 없는 사람,

이를 지적받아도, 회사평판을 거론하며 '품위 유지'를 누군가 요구해도

듣는 둥 마는 둥 신경도 안 썼던 사람,

몸에 걸친 물품들의 값이 본인의 값이 아님을 진작부터 잘 알고 있던 사람,

하지만 누군가 명품을 둘렀다고 평가하지도 않는 사람이며


그런 모습이 참 멋있어서 닮고 싶은 사람,

하지만 내가 절대 닮지 못할 사람,

보여주기식 말과 행동이 난무하는 나완 달리 모든 게 진심인 사람,

그러니 가끔 존경스럽고 언제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다.


언니. 나의 언니.

유일무이 '같은 배' 출신.

내가 만든 이 표현을 그리도 좋아하는 우리 언니가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왔다.




엄마한테 뭘 들은 건지 언니는 나를 사랑할 준비로 똘똘 뭉친 채 귀국했다. 집에 온 지 며칠 안 돼서 언니는 말했다. 울고 있는 내게 "걱정 마 내가 널 꼭 고칠 거야"라고. 의사도 아니면서 그렇게 단언했다. 흔들리지 않고 또렷이 내 눈을 보고 있었다. 확신과 희망을 전해주려 애쓰고 있는 게 느껴졌다.


언니가 있던 두세 달, 매주 두 번 같이 병원에 갔다. 엄마처럼, 그러니까 "엄마가 없을 땐 네가 엄마 역할이다"는 말을 들은 일곱 살의 언니처럼. 손 잡을 나이는 아니어서 우리는 가끔 새끼손가락을 걸고 걸었다. 종종거리며 20분 거리 병원에 갔다가, 한 시간 남짓 치료를 받고는 다시 20분을 걸어 집에 돌아왔다.


유독 더웠던 여름이라 병원에 도착할 때면 씻고 나온 게 무색하게끔 언니와 나는 매번 땀에 젖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미안함을 넘어 머쓱했다. 오랜만에 한국에 와 이런저런 약속도 많을 텐데. 결혼해서 만든 새로운 가족, 그리고 새로운 가족의 원래의 가족까지 챙기느라 늘 바쁜 언닌데. 서른을 훌쩍 넘은 동생의 병원에 동행해 준 마음을 나는 헤아리기 힘들었다. 언니에겐 당연한 마음이었을까.


병원 대기실에서 손으로 땀을 대충 훔쳐내고 있을 때면, 언니는 이미 혼자 저만치 정수기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내게 찬 물을 건네줬다. 내게 미안해할 틈을 주지 않았다. 대신 언니는 시답잖게 웃었다. 재밌다는 듯, 이쯤은 별거 아니라는 듯.


당연할 수 없는데 당연해 보였다. 나는 그러면 그냥 따라 웃었다. 물을 받아마시고 혼자만의 숨까지 돌렸다. 언니에게 성숙한 예의와 사과 대신 철없고 선 넘는 농담을 던졌다. 그저 즐겁다는 듯. 애초 모든 일들이 정말 정말로. 별게 아니라는 듯.


그렇게 언니가 한국에 온 뒤로 내내 찬란한 여름이었다. 마치 늘 붙어 다니던 대여섯 살의 우리 같았다. 그러면서도 청소년과 사회인을 넘나들었다. 쓸데없는 연예계 가십부터 인생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까지 모든 걸 나눴다. 온갖 드립으로 매일 수차례 빵 터졌다. 여기저기 얼룩져 있던 마음이 그때부턴 다채롭게 느껴졌다. 대체로 몽롱했음에도 드문드문 기꺼웠다. 전부 언니 덕이었다. 여전히 나는 언니가 세상에서 제일 웃기다.


사람은 응당 다른 사람이 필요한 걸 안다.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결벽증마냥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기 싫었던 나는 차라리 불가능한 채로 냅두는 쪽을 택하곤 했다. 도움과 민폐를 서로 주고받으며, 그렇게 다른 이들과 인생을 포개어가는 것이 삶이라 배웠건만, 늘 그런 원활한 민폐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다. 그렇게 많은 이들을 떠나보냈다.


하지만 가족은 달랐다. 무조건적인 사랑이 전제된 관계에선 민폐가 덜 불편했다.  '같은 배 출신'이란 실로 내게 어마어마한 의미였다. 그러니 지난 글을 정정해야겠다. Love wins all, 그 말이 맞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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