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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Oct 02. 2024

영화<잠>보다 공포스러운 검사

수면다원검사


레이먼드 카버의 책상 위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 조금씩 글을 씁니다.“




8월의 시작.

아침에 일어났을 때 기운과 기분이 크게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하루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뇌파치료도, 새로 처방받은 약물도 어느정도 적응이 됐다는 뜻이었다. 이미 한참전부터 도처에 깔려 있던 행복들을 그제야 하나 둘 발견해냈다. 나는 조금씩 일상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사소하고, 그래서 더 사랑스러운 순간들이 이어졌다. 테니스 대신 차선책으로 선택한 배드민턴 코치님들이 너무 다정하다든지, 계속 미뤄뒀던 당근마켓을 시작했는데 뜻밖에도 옷 포장이 너무 재밌다든지 하는.


 소박하다고 하기엔 조금 큰 행복


하이라이트는 비행기 타고 미국에서 날아온 생일선물이었다. 대학시절 2년간 동거한 친구가 기가 막힌 주문 제작 맨투맨을 보내왔는데, 처음엔 의아하다 바로 옆에서 날 본체 만체 하고 있는 고양를 보자 웃음이 터졌다. 맨투맨에 그 얼굴 그대로 자수가 놓여 있었다. 이 친구는 나의 공략법을 너무 잘 안다. 그러니 당연히 웃음만 터진건 아니었다.


옹심아 왜 거기있어...?

 



나는 '웃을 수 있을 때 웃자. 언제 쌉칠지 모르는게 기분이다.' 라는 X(구 트위터) 짤처럼 그런 기회가 올 때마다 최대한 자주, 또 크게 웃으려 했다. 왜냐하면 그 '언제'가 이미 예정되어 있었으니까.


나는 8월 중 수면검사, 정식 명칭 수면다원검사(Polysomnography, PSG)를 받아보기로 했다. 대학병원에서 받은지 약 10년 만이었다. 근래들어 많이들 수면장애를 앓는지, 예약이 가득 차 두 달 전부터 계획되었던 검사였다. 그리고 영화 <잠> 속 '현수'가 뜬 눈으로 받았던 검사이기도 하고.


10년 전의 수면다원검사에서는 유의미한 결과나 해결책을 얻지 못 했다. 그래서 처음엔 '굳이' 싶었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2024년의 의사 선생님이 권하는데 말 잘 듣는 환자인 나에게 '굳이' 따윈 없다. 그냥 '당연히' 받는 거다.


수면다원검사는 병원에서 하룻밤을 자며 진행된다. 추가로 다중수면잠복기검사(MSLT)도 함께 받기로 해, 다음 날 오후 6시까지 병원에 있어야 했다. 그렇게 두 검사를 모두 받으면 수면패턴 및 각성 주기를 정교하게 알아낼 수 있다.


...고 하긴 하지만. 주렁주렁 번거로운 장비를 수반하고, 하루 하고도 반나절 동안 진행돼 꺼려지는 검사인게 사실이다. 심지어 더 큰 문제는 전날 밤 부터 약을 복용하지 못 한 다는 데 있었다. 물론 검사 당일, 취침 시에도 약을 주지 않는다. 내가... 약 없이? 과연...?




8월 중순.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집에서 대충 샤워를 찌끄린 뒤 밤 9시에 병원을 찾았다. 건물에 수면센터를 제외하고 모든 불이 꺼져 있었고, 그래서인지 매주 두 번씩 갔던 곳임에도 조금 서늘하고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센터 안에는 나이트타임 간호사 한 분, 그리고 환자 한 분이 계셨다. 매일 밤 그렇게 두 명씩 검사를 진행하는 듯했다.


검사에 앞서 작은 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일반 모텔 혹은 비즈니스 호텔 같은, 깨끗한 1인실이었다. 방에는 씨씨티비가 설치되어 있다. 그래서 밤 내내 간호사분이 실시간으로 나의 자세를 볼 수 있고, 뇌파 반응도 틈틈이 확인할 수 있다. 신기했던 건 베개가 세 종류나 있다! 높은 베개, 낮은 베개, 그리고 경추베개.


베개커버, 이불커버는 셀프로


그런데 병원에 오기 전 덕지덕지 바른 수분크림의 물광이 과했는지 ”기름이 이렇게 많으면 전극이 붙지 않으니 세수하고 오시라는 명이 떨어졌다. 나는 기름이 아닌걸 혼자 억울해 하며 채 벅벅 세수를 했다. 그리고는 9시부터 대략 11시까지, 두 시간 동안 머리에 전극을 부착했다. 뭐 얼굴은 당겼지만 전극은 척척 잘 붙더라…


전극들을 주렁주렁 매단 뒤엔 간단한 테스트가 진행됐다. 치아 딱딱 부딪히기, 코 크게 골기, 눈알 돌리기 등을 몇 차례 반복했다. 테스트가 끝나면 그대로 눕고, 눈를 감는다. 이제 본격적인 수면검사의 시작이다.


수면검사 동안 전자기계는 모두 전원을 꺼야 한다. 나는 핸드폰으로 지루한 글을 읽으며 잠에 드는 버릇이 있어서 걱정이었다(블루라이트 차단하고 봄). 그리고 걱정은 곧 현실이 됐다.


다소 번거로운 신상백을 얻었다



 큰일이다. 시간이 분명 많이 지난 것 같은데 도무지 잠이 안 온다. 가만히 눈을 감고 누워 하릴없이 해파리를 그렸다.


"나는 해파리다. 나는 해파리다. 나는 해파리다….“


실패. 약을 복용할 수 없어 전 날엔 3-4시간만 잤고, 낮잠도 자지 않았고, 카페인 섭취 일절 없었고, 그래서 너무나 피곤했는데도, 나는 잠에 들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두 시간이 지났다.


나의 상태를 모니터링 하고 있던 간호사가 방에 들어왔다. 그리고 결국 나는 수면유도제를 먹어야 했다. 하지만 진짜 징하고 유별난 나의 불면증. 수면유도제도 소용이 없는 거다. 그렇게 다시 또 곧게 누워 눈을 감은 채로, 두시간이 흘렀다.


괴로웠다. 눈감고 깨어있는 시간들이 마치 영겁 같았다. 눈꺼풀이 덮은 깜깜한 시야를 네 시간동안 계속해서 보고 있자면 처음엔 막막하고 두려운 기분이 들다가, 나중엔 정말 고문 같았다.


일단 수면부족에 수면유도제 복용까지 하니 피곤하긴 피곤해 죽겠다. 그런데 잠은 도저히 안 온다. 그래도 부동의 자세로 가만히 누워있어야 한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는지도 모르게 하염없이…통증은 잘 참아왔지만 이 기약 없는 어두움은 다신 겪고 싶지 않다.


결국 새벽 세 시. 간호사분께서 원장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지시에 따라 나는 두 번째 수면유도제를 복용했다. 약 두 개까진 몸이 못 버텨서 정말 다행이었다.


30분쯤 지났을까. 그 뒤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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