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청기백기게임
“꿈꾸는 사람은 그 결핍과 자격지심에도 다시 마음을 되잡으려는 의지 때문에 빛나.”라고 내게 말했던 너
지난 글에 이어, 아침 7시.
나이트 간호사의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새벽에 복용한 수면유도제 두 알의 효과는 과연 강력했다! 언제 어떻게 잠들었는지 기억이 흐릿할 정도였다. 다행이었다. 비록 수면 시간은 네 시간에 그쳤지만, 그래도 ‘잠을 자긴 잤구나. 기록이 어느 정도 가능했겠구나’ 며 안심했다.
그리고 다음 검사 일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오밤중 수면다원검사(PSG)가 끝났으니, 이젠 오전과 낮에 진행되는 다중수면잠복기검사(MSLT) 차례였다.
과정은 간단히 말하면
2시간 동안 깨어있다가, 20분 동안 수면한다.
그리고 이 한 세트를 다섯 차례 반복한다.
그러니까 두 시간 간격으로 다섯 번의 낮잠을 자야 되는, 꽤 오래 걸리는 검사였다. 아침 7시부터 오후 5시 넘어서까지 이어진다. 깨어있어야 하는 두 시간 동안에는 절대 졸면 안 된다. 행여 나도 모르게 잠들 수도 있으니 침대에 기대는 것도 금지. 그리고 그다음 20분 동안은 무조건 불을 끈 채 누워 있어야 한다.
검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시작 전부터 질려있는데, 나이트 타임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내게 김밥 한 줄을 건네줬다. 간호사는 나보다 열 살은 더 어려 보였다. 그리고 미소가 디폴트값인 데이타임 간호사들과는 다르게 다소 타성에 젖은 말투와 표정이 눈에 띄었다. 나는 창 밖에 뜬 해를 보고는 인사치레로 물었다.
"이제 퇴근하시겠네요?"
그러자 뜻밖에도 간호사가 일순 환하게 웃었다. 처음 보는 미소였다. 그러더니 당차고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주제넘지만 그 모습이 짠하면서도 귀여웠다. 실은 지난 새벽에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중간에 일어났을 때였다. 한없이 쿨하고 시크했던 간호사의 방을 가로질러야 했는데, 문득 달큰하고 자극적인 냄새가 풍겨왔다. 이 익숙한 기름내는 중국음식의 그것임이 분명했다. 나는 엄마도 아니면서 엄마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제야 밥을 먹는구나' 하는 생각에 고맙고 미안하면서도, '냄새 뭔데. 메뉴 선정 기막힌데' 하며 입맛을 다시기도 했다.
남들과 다른 시차로 산다는 건 외롭고 고된 일이다. 해가 뜨면 자야 되는 밤들이 쌓일수록 몸도 많이 상할 테고. 그럼에도 검사 전엔 예민한 기색 하나 없이 차분하게 과정을 설명해 주고, 또 검사 중엔 나를 면밀하게 모니터링해 준 그가 나는 고마웠다. 조금 덜 웃으면 뭐 어떨까. 그는 그의 방식대로 충분히 친절했다. 나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맡은 소임을 충실히 해내는, 넘치게 훌륭한 간호사였다. 나는 퇴근을 앞두고 들뜬 모습이 조금 안쓰러워 말을 이었다.
"환자들 치료해 주시다 선생님들이 수면문제 생기시겠어요..."
그러자 간호사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니까요, 저희끼리 맨날 하는 말이에요.”
베개에 이어 김밥 역시 선택권이 있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무난한 참치김밥을 골랐다. 하지만 갓 잠에서 깬지라 영 입맛이 없었다. 그리고 평소에도 아침식사는 챙겨 먹지 않기에 김밥 반줄이라도 들어갈까 싶었다. 그런데 새벽에 맡은 중식냄새가 식욕을 진작부터 대기시켰던 걸까… 김밥을 한입 먹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배가 곯아 있었던 양 정신없이 흡입해 버렸다. 반줄은 무슨, 김밥 한 줄 5분 컷 클리어 성공.
아침식사 후 본격적인 검사가 시작됐다. 이번 검사는 하도 악명이 높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긴 했다. 그래도 막상 겪으니 생각보다 더 어렵더라. 이를테면, 억지로 누워있다가 마침내 잠이 오려는 순간, 땡. 어느덧 20분이 지나 방에 불이 켜졌다. 이제 침대에서 일어나야 했다. 짜증이 솟구쳐도 어쩔 수 없었다. 겨우 찾아온 졸음을 쫓을 차례니까. 나는 시답잖은 숏츠라도 보면서 잠을 몰아내기 위해 한참을 애썼다. 그러다 마침내 정신이 또렷해지고 온전한 각성 상태에 돌입하는 순간, 다시 또 땡. 이번엔 두 시간이 흘렀다. 다시 불을 끄고 잠들 차례였다.
초조하고 답답했다. 몽롱한 걸 넘어 머리가 핑핑 도는 느낌이었다. 사실 두 시간 깨어있는 건 크게 어렵지 않다. 피곤해도 참으면 된다. 그건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었다. 그보다는 역시, 지난밤처럼 억지로 자야 하는 게 곤혹스러웠다.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 위해 무조건 시간 내에 수면모드에 진입해야 한다는데, 그건 내가 제일 못 하는 일이었다.
애초에 잠이 통제가 되지 않아서 검사를 하는 건데, 검사를 하려면 잠을 통제해야 하는 이 아이러니란 뭘까. 나는 '노력해서 잠이 오면 애초에 내가 이 지경까지 안 왔겠지!'라고 생각하며 울면서 겨자를 먹었다. 그리고 뜬금없게도 군인들이 존경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과거 전시상황에나 할법한 졸음-완벽-통제-훈련을 살짝 엿본 기분이었다. 나는 열 시간에 걸쳐 극한의 '10시간 청기백기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검사가 반쯤 지나자,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그런데 점심식사로 제공된 호박죽이 또 엄청 맛있어 버리네. 나는 ‘김밥과 죽을 대체 어디서 수급해 오는 걸까' 궁금해하며 그릇을 금세 비워냈다. 배가 뜨끈하고 든든해지니 기력이 조금이나마 차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김밥과 죽의 위로를 받으며 꾸역꾸역 청기백기 게임을 이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오후 다섯 시.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검사가 끝이 났다.
당장은 피로가 앞섰지만, 그보다 검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안도감과 뿌듯함이 더 컸다. 그리고 조금의 두려움과 걱정, 기대가 마음속에 뒤섞이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기술 발전 덕인지, 18시간에 걸친 검사에 대한 결과를 1분 만에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머리에 붙은 가루들을 떼어내며 곧 있을 면담을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진료실에서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대신 “갑자기요?”, "뇌파검사에선 안 나왔나요?" 하고 재차 되물을 뿐이었다. 불면증 치료에 매진한 기간 약 15년. 그동안의 숱한 노력들이 한순간에 쓰레기통에 처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