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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ip Lee Oct 07. 2024

쓰레기는 기억하지 말자

좋은 것만 기억하는 습관 들이기

나는 사람을 많이 상대한다(카페 노동자).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에게 인사하고, 주문을 받고 음료를 만든다. 그나마 키오스크라는 인류 최대의 발명품이 없었다면 난 일찌감치 다른 일을 찾았을 것이다.      


어느 직종도 마찬가지지만, 여기에서도 소위 JS(진상) 손님들이 존재한다. 그들이 오면, 정글 한복판에서 사자를 만난 가냘픈 영양처럼 바짝 긴장한다. 그들의 스타일은 어찌 그리 다른지. 스타일에 따라 응대 방식도 조금씩 달라진다.     


여느 날처럼, 열심히 샷을 뽑고 있었다. 밖에 흰 소형차가 들어왔다. 순간 긴장이 팍! JS의 차였던 것(매일 오는 손님들의 차는 대충 기억한다. 이럴 땐 좋은 기억력이 원망). 갑자기 속이 더부룩해졌다. 뭐 특별한 일은 없었다. 황야의 결투처럼 해묵은 감정을 서로 퍼붓진 않았다. 그는 키오스크로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문했고, 난 재빨리 만들어서 전달했다. 5분도 안 지나 사건 종료.       


커피를 받아들고 떠나는 JS의 차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번호판. 한 번도 손님의 번호판을 본 적이 없었는데, 무의식중에 보였다. (지금도 믿기지 않지만) 그 찰나에 나는 차량 번호를 외우려 했었다. 그 JS의 차번호를(다른 손님이 와서 외우진 못했다)!     


일이 다 끝나고, 집에 가면서 그 일이 떠올랐다. 굳이 왜 차 번호를 외우려 했을까? JS의 출현을 빨리 대비하고 싶었을까. 차 색깔과 번호판으로 JS를 누구보다 빨리 판명했다 치자. 내게 도대체 어떤 유익이 있단 말인가. 카페 매출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내가 평생 느껴보지 못할 강 같은 평화를 누려보는 것도 아니다. 단지 몇 분, 아니 몇 초 일찍 긴장의 끈을 잡고, 마음을 추스를, 딱 그 정도?      


이런 내 모습이 한심했다. 인간의 뇌는 한계가 있다. 새로운 것을 저장하면 분명히 그 전에 기억되어 있었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자연스레 잊히게 된다. 그런데 난 굳이 왜 쓸데없는 번호를 기억하려 했을까. 굳이 기억하려면 천국 국적을 이중으로 소유한 듯한 천사표 손님들의 차 번호나 외울 것이지. 생각만 해도 별로인 사람의 번호를 왜...?      


가만 보면, 난 쓸데없는 걱정을 만들면서 살아간다. 숨만 쉬어도 힘든 세상에 굳이 왜 영양가 없는 걱정을 한두 스푼 씩 첨가하며 사는지. 아내도 항상 걱정 좀 미리 하지 말라고 조언(협박?)한다.     

 

물론 걱정이 아예 없을 수는 없다. 아무 걱정 없이 태평하게 사는 것도 또 하나의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굳이 내게 도움 안 되는 걱정과 상황을 만드는 건 오히려 독이 된다. 내게도 주위 사람에게도. 어쩌면 나의 이런 행동들이 나의 사십춘기를 더욱 심화시켰는지 모른다.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쓸데없는 망상을 하고, 쓸데없는 가정을 하고...      



가족들을 위해, 아니 무엇보다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이제부터는 걱정을 만들지 말아야겠다. 점점 기억력이 깜빡거리는(흑흑) 내 뇌를 위해서도 좋은 것만 기억하고 싶다. 나쁜 기억보다는 좋은 기억을, 별 볼 일 없는 사람보다는 따스한 온기를 건네는 사람을, 쓰레기보다는 장미꽃을...        


자, 오늘은 어떤 좋은 것을 기억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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