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즐기자
얼마 전 아내와 아들은 일본 오사카 여행을 다녀왔다. 나는? 열심히 일을 했다(흑흑). 여행 둘째 날 저녁, 아내는 카톡으로 여러 사진을 보냈다.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중 눈에 띄는 사진 한 장. 아들 선우의 독사진이었다.
해리포터 성 앞에서 찍었는데, 영화에서 주인공이 입었던 검정 망토를 두르고, 넥타이를 매고,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해리의 트레이드마크인 안경(알 없는)까지 착용했다. ‘역시 다 챙겨갔군!’ 감탄하며 나머지 사진들을 훑어보았다.
선우는 해.덕이다. 해리포터 덕후. 몇 년 전 우연히 해리포터 책을 읽고 완전 매료되었다. 영화도 몇 번 봤고, 책은 열 번을 넘게 봤다(모든 시리즈 책들을). 유튜브에 해리포터 관련된 영상이 뜨면 무조건 시청했다. 모든 알람 소리는 영화 OST. 당연히 오사카에 간 이유도 팔할은 (해리포터 존이 있는) 유니버셜 스튜디오 때문이었다.
너무 빠져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 다른 책은 읽지 않고, 주야장천 해리포터 책만 읽는 데다, 해리포터를 나쁘게 말한 친구와 다툼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래도 그 나이(초등 6)치고는 순수한 것 같아 걱정을 내려놓기도 한다. 연예인이나 게임에 깊이 빠지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며칠 전이었나. 리모컨으로 TV 채널을 이리저리 옮기다가 우연히 한 프로그램을 봤다. <우리 형, 신해철>. 가수 신해철 10주기 특별 다큐멘터리였다. 무엇에라도 홀린 듯 쭉 시청했다. 그러던 중, 한 노래를 들었다. <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니가 진짜로 진짜로 원하는게
진짜로 진짜로 원하는 게 머야 ?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머야 머야 머야 머야 머야?
신해철이 계속 “머야?”를 외치는 장면에서 갑자기 울컥했다. 이제 볼 수 없는 가수에 대한 그리움도 있었지만, 내게 다그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뭘까? 그 질문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뭘까?’로 변주되었다. 한 번에 답이 나오지 않았다.
독서. 정말로 좋아했다. 항상 책을 들고 다니고, 사람이 꽉 찬 출퇴근 전철 안에서도 읽을 정도로. 지금은 어떤가. 의무적으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오지만, 여러 핑계로 읽지 못한다(않는다). 일주일 후에 첫 장도 안 편 채로 반납하기 일쑤. 그나마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던 글쓰기는 어떤가. ‘써야지 써야지’ 매일 생각하지만, 언제나 미룬다(이 글도 미루다 며칠 만에 썼더라).
아. 난 여행을 좋아했지. 바람 쐬는 걸 좋아해 가족들과 이곳저곳 많이 다녔다. 지금은? 한번 나가려면 여러 번 마음을 (굳세게) 먹어야 한다. 막히지 않을까, 주차는 어렵지 않을까 미리 걱정이다. 맛집 찾기도 쉽지 않다. 어렵사리 나가더라도 떠나는 순간 <컴백 홈>의 가사가 머릿속에 떠올라 집이 그리워진다. 도착해서 식당에서 밥 먹고, 의무적으로 사진 찍고, 좀 둘러보다 두세 시간 지나면 아내에게 조심스레 말한다. “이제 슬슬 갈까?”
과연 나는 무엇을 좋아할까. 이 나이 때 남자들이 많이 하는 골프나 등산, 낚시도 안 한다. 돈은 안 들어서 좋은 건가. 건강을 위해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헬스나 자전거도 피곤하다는 이유로 패스. 술, 담배도 안 한다(이건 좋은 거지?).
그나마 삶의 낙이라면, 퇴근 후 소파에 쓰러져 따끈한 미드나 영화를 보는 것이다. 아니면 유튜브로 의미 없는 영상을 보는 것 정도? 그러다가 피곤이 쌓이면 장렬히 전사하는 듯 잠에 빠진다.
난 대체 무슨 재미로 살아가는 걸까?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데, 난 살면서 쌓이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고 있을까. 누구나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이때, 좋아하는 것 없이 살아간다면 얼마나 괴로울까.
해리포터를 좋아하고, 레고를 좋아하는 선우.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선우. 이런 아들의 모습이 새삼스레 부러웠다. 나한테 영화 속 주문을 외우는 선우를 보고 다짐해 본다
‘나도 그렇게 살아야지. 내가 좋아하는 걸 눈치 보지 말고 힘껏 즐겨 봐야지. 내 인생이잖아.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