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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ip Lee Nov 14. 2024

바쁜 건 바쁜 것일 뿐

바빠도 내 마음을 지켜나갔으면

낮 12시. 카페에서 제일 바쁜 시간이다. 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이 몰려오기 때문. 매장에 개미 한 마리 없다가 신기하게도 12시가 지나면 손님이 들이닥친다.      


이때는 혼자 오지 않는다. 최소 두 명부터 많게는 7~8명까지 같이 온다. 메뉴도 각기 다르다. 아메리카노부터 라떼, 에이드와 각종 프라페와 디저트까지 다양하다. 대부분 키오스크로 주문하시지만, 직접 주문을 하는 경우도 많다. 음료를 만들고 내보내고, 거기에다 주문까지 받고. 팔이 한두 개쯤 더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절로 생긴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이 시간에는 한 가지 변수가 더 있다. 바로 배달. 근처 회사와 공장에서 단체로 주문이 들어온다. 적게는 3~4잔에서 많게는 10잔이 넘어간다. ‘띵동’, ‘띵동’ 배달이 연이어 오면 카페는 완전 아수라장이 된다. 알바생과 나는 좁은 주방을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깔끔했던 바닥은 얼음조각, 커피 가루와 영수증 종이로 가득차고, 배달 알림은 계속 울린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 몰아닥치는 손님 때문에 나는 멘탈을 관리해야 했다(아니, 손님이 많이 오면 좋은 거 아닌가). 아무래도 멘탈이 흔들렸던 이유는 내 성향 때문이었다. 나는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얻는 극내향형이다. 또한, 내 주위의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어야 하는 안정형의 인간이다.      


그런데, 이 곳은 어떤가. 수십 명의 손님이 밀물처럼 몰려온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이 펼쳐진다. 물론, 마음을 편히 갖고 주문 들어오는 것을 순서대로 내 보내면 된다. 그렇지만 그게 쉽지 않다. 조금이라도 바쁘려고 하면, 머릿속에는 불안한 감정이 똬리를 튼다. 바쁜 게 정점을 치면 심한 경우에는 정신줄을 놓아버리기도 한다. 입에서는 욕설이 나오려 하고, 거칠게 음료를 제조하기 시작한다. 혹시 이런 내 모습을 목격한 손님들께는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거의 9월 중순까지 바쁜 것이 지속되어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다행히 멘탈이 아예 박살 나진 않았고, (정신과 육체 둘다) 힘든 시간은 넘겼다. 바쁜 시간을 겪으면서 깨우친 게 하나 있다.      

바로 바쁜 건 바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 그 상황은 결코 나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었다. 몰아닥치는 손님들은 나를 해코지하는 게 아니고, 그저 음료를 주문할 뿐이다. 나는 음료를 제조하고 순간의 변수들을 제어하면 되는 것이었다(물론 쉽진 않지만). 그리고 바빠야 내가 (우리 가족이) 먹고 살 수 있는 건 아닌가.     


내가 힘들다고 소리쳐봤자 손님들은 계속 올 것이고, 배달도 계속 올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마음을 (조금은) 여유롭게 갖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에 올 평화로울 시간을 기대하는 것이다. 바쁜 건 바쁜 것일 뿐이라고 되새기면서.      


조금씩 찬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다행). 지금은 바쁜 상황이 온다 해도 (어느 정도는) 감정을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물론 아닌 경우도 있지만). 바쁜 걸 즐길 순 없을지라도 괜히 마음을 졸이고 불안에 휩싸이지는 않아야겠다. 그럴 수 있겠지(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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