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맛보는 즐거움
정신 없이 살았다. 몸에는 커피 냄새(향이 아니다)가 들러붙었고, 모자를 항상 쓴 내 머리는 이리저리 엉켜있다.
각양각색의 손님을 응대하느라 내 미소의 총량은 진작 바닥이다. 시간을 좀 더 알차게 보내야겠단 마음은 집에 돌아가자마자 소파로 다이빙하는 순간, 한순간에 사그라졌다. 내 취향에 따라 선택된 영상과 쇼츠의 바다 속으로 풍덩.
온갖 짜증과 피곤이 덕지덕지 붙은 금요일, 나도 모르게 외마디 소리를 지른다.
“아! 이제 샤워할 때구나!”
퇴근 후 향한 곳은 도서관. 집이 아니라고? 샤워를 도서관에서? 몸이 더럽고 피곤할 때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다. 그런데, 내 영혼과 마음이 피곤하고 지쳤다면? 난 도서관으로 향한다. 즉, 영혼의 샤워를 하는 곳! 그곳이 내겐 ‘도서관’이다.
도서관에 가면 세상과 다른 공기가 흐른다. 책을 고르거나 책이나 신문을 보거나 무언가에 푹 빠져있는 사람들. 평생을 읽는다 해도 반의 반의 반도 못 읽을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있는 서가. 이곳에 발을 내디딘 순간, 바깥의 소음과 내 안의 어수선함은 사라진다. 오직 고요만이 가득한 이곳, 분주했던 내 마음은 한순간 평안해진다.
저번 주에 빌렸던 책을 반납한다. 다섯 권 중에 두 권을 읽었다. 한 권은 아예 펼치지도 못했다. 괜찮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래도 이 책들로 한 주를 버텼으니까.
어떤 책이 있을까 서가를 쭉 둘러본다. 평소에 읽고 싶었던 책이나 신뢰하는 명사의 추천도서를 검색한다. 앗! 누가 선수를 쳤네. 뭐, 괜찮다. 읽어달라고 무언의 압박을 주는 수천의 다른 책들이 있으니.
요즘 책 진도가 잘 안 나가니까 소설을 한 번 읽어볼까. 아니면 연말이니까 한해를 돌아볼 수 있는 철학책은 어떨까. 읽어보지 못했던 과학 분야에 도전해 볼까. 발길 가는 대로 둘러보다 눈길 가는 제목이 있다. 오호라, 횡재한 기분이다. 이런 식으로 다양한 분야의 책을 5권 빌리고, 아들 책도 빌려 집에 온다. (영혼의) 샤워를 한 시간쯤 했다. 기분이 상쾌해졌다. 다시 한 주 살아갈 힘을 얻었다. 이런 맛에 도서관 오는 거지!
사실, 내 도서관 사랑은 유별나다. 이사를 가면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 위치를 파악한다. 동사무소나 마트보다 먼저. 다행히 지금 우리 집 근처엔 걸어서 갈 수 있는 도서관이 두 군데나 된다. 이런 걸 ‘도세권’이라 부르나.
물론 책은 사서 봐야 한다. 그래야 정독할 수 있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책을 쓴 저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응원이 된다. 하지만 내가 읽고 싶은 모든 책을 다 살 수는 없다. 경제적 이유도 있고, 내가 예상했던 내용과 다른 경우도 많다. 그래서 책을 빌려 읽고, 소장할 가치가 있는 경우 지갑을 연다.
또한, 책을 빌리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 거듭 말하지만, 그 행위가 내겐 마음을 정돈하고, 다시 삶의 전장으로 나아가는 재충전이 되기 때문이다.
요즘은 여유로워져서 도서관에 자주 간다. 일하는 카페 근처에도 걸어서 갈 수 있는 도서관이 있어 바쁘지 않을 때, 3~40분씩 다녀오기도 한다. 이때는 샤워까진 아니더라도 졸음을 깨우는 ‘세수’ 정도는 되는 것 같다.
긴 하루 끝에 좋은 책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만으로 그날은 더 행복해진다
자주 가는 도서관의 문을 열면 벽에 큼지막이 쓰여 있는 이 문구가 나를 반긴다. 1년도 이제 한 달 남았다. 힘들고 다운되는 일도 꽤 있었다. 그래도 용케 버텨왔던 건 순간순간 읽었던 여러 책 때문이었다. 내년에도 특별한 일은 일어나진 않겠지만, 새로 만날 좋은 책들과 함께 행복한 한 해를 보내고 싶다.
더 자주 샤워하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