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가 일어나고 있다
올해 초였다. 갑자기 눈이 안 보인 것은. 소설 <눈 먼 자들의 도시>의 인물들처럼 눈이 아예 안 보인 건 아니다. 바로 눈앞의 가까운 물체가 잘 안 보이기 시작한 것. 피곤해서 그랬거니 여기고 그냥 지나쳤다. 한 달쯤 지났을까. 증상은 더 심해졌다. 책을 읽는데 글자들이 잘 안 보이는 것이었다. 스마트폰을 볼 때도 글자들이 왠지 더 작아 보였다. 순간 내 머리를 스친 생각. ‘아! 나도 노안이 왔구나’
보통 마흔 중반부터 노안이 온다던데,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음. 뭐 남들 다 오는 노안이니까 괜찮겠지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노안은 생각보다 불편했다. 글자를 읽는 것이 더 힘들어졌다. 책을 읽을 때나 스마트폰을 볼 때는 아예 안경을 벗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시작되는 잔소리(당연히 아내로부터). “안경 안 쓰면 눈 더 나빠진다니까.” 안경을 쓰면 오히려 안 보이는 노안의 애환을 당신이 알아?
그래도 참았다. 노안쯤이야. 불편하긴 해도 그럭저럭 살 만했으니까(나도 참 무던하다). 그런데, 운전할 때 노안의 영향력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바로 눈앞 네비게이션이 잘 안 보이는 게 아닌가. 찬물을 맞은 것처럼 정신이 확 들었다. ‘이건 참을 게 아니구나. 안전과(나뿐 아니라 가족의) 연결되는 중요한 문제구나.’
며칠 후, 안경점을 찾았다. 역시 이곳엔 노안용 특별 안경이 있었다. 일명 다초점 안경. 안경렌즈에 2개의 시력이 담긴 것이다. 렌즈의 하단은 도수가 높아 가까운 거리의 사물을 볼 때 용이하고, 나머지 부분은 원래 도수와 비슷해 산책하거나 풍경을 바라볼 때 문제없이 볼 수 있다.
시력 검사를 하고 다초점 안경으로 바꾸었다. 일주일 뒤, 새 안경을 꼈을 때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이 좋은 걸 왜 이제야 바꿨을까. 아직 적응이 안 되어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노안 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다. 책을 볼 때도, 스마트폰을 볼 때도, 운전할 때도.
마냥 청춘인 줄 알았는데, 동안이라 노화도 더디 올 줄 알았는데 그건 완전한 착각이었다. 얼마 전엔 코가 간지러워 코털을 손으로 뽑았다(할 짓이 못 된다. 너무 아프다). 흰 털이었다. 원래 새치가 많아 30대부터 염색을 했다. 그런데, 흰 털이라니. 그것뿐이 아니었다. 턱밑에도 흰 수염이 삐쭉 나와 있었고, 구레나룻에도 선명한 하얀색이 보였다. 이제 염색도 소용없을 정도로 흰 머리카락이 내 머리 전체를 공격하고 있었다.
면역력도 눈에 띄게 안 좋아졌다. 평소에도 감기에 자주 걸려 병원을 자주 찾았다. 보통은 잘 쉬고 약 먹으면 1~2일이면 괜찮아졌다. 그런데 올해 여름, 감기에 걸렸다. 오뉴월엔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에 말이다. 약 먹고 괜찮아졌지만, 며칠 지나니 다시 기침과 재채기를 하는 게 아닌가. 결국 다시 병원행. 이러기를 3~4번을 반복했다. 유난히 더웠던 올여름, 오히려 나는 병원을 출퇴근할 수 밖에 없었다.
이뿐 아니다. 집중력도 떨어졌다. 평소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 주말 저녁 간만에 스트레스라도 풀 겸 OTT의 영화를 검색한다. 두 시간 남짓한 영화. 예전에는 거뜬히 봤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한 시간 지나면 눈이 침침하고, 허리가 아프다. 언제 끝나는지 타임라인을 확인해본다.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나면 무슨 큰일이라도 치른 듯 온몸이 뻐근하고, 곧바로 침대행으로 직행한다.
나는 늙고 있다. 노화라는 단어가 더 이상 내게 무관하지 않다. 씁쓸하기도 하고 기분이 묘하다. 며칠 후면 새해가 밝는다. 특별한 바람이나 소망은 없다. 이젠 나와 가족의 건강이 일순위 아닐까. (당연한 소리지만) 이젠 건강을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부디 생각으로 그치지 않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