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문중일기 08화

보람 따윈 필요 없어

'조금'이 내게 가져다 준 것

by Philip Lee

세 번째 에세이. 두 번째는 간신히 썼고, 이번에는 좀 쉬울지 알았는데, 시작부터 어렵다. 마음 먹고 컴퓨터를 켜고 워드프로그램을 열었다. 그렇지만 마주하는 하얀 얼굴이 부담스럽다. 한 번도 아이셰도우를 해 보지 않은 내게 누군가 와서 “예쁘게 풀메이크업을 해 주세요!”라는 부탁을 받은 기분이랄까. 눈썹을 움직이듯 깜박이는 마우스 커서는 “한번 쓸 테면 써 보던가. 쉽지 않을 걸.”이라며 도발한다. 얼른 문서창을 닫고 밀린 드라마나 봐야 하나. 에잇, 작심삼일은 되기 싫다. 무슨 일이든 삼세 번 아닌가. 한 번만 더 써 보자.


저녁 9시가 좀 넘은 시간. 가게를 마무리하고, 집에 간다. 집은 바로 코앞 아파트. 패딩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잡동사니가 가득이다. 꼬깃꼬깃한 지폐 몇 장과 달그닥거리는 동전 몇 개(요즘 보기 힘든 오십 원, 십 원도 가끔 있다), 카드 영수증 몇 장, 거래처 영수증, 무엇을 닦았는지 모를 휴지조각까지... 몸을 계속 움츠린 영하의 겨울날씨에도 땀냄새가 시큼하다. ‘아, 오늘도 바쁘게 살았구나.’


어떨 때는 번듯한 양복을 입고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부럽기도 하다. 잘 다려진 와이셔츠를 입고, 계절마다 새로 장만한 넥타이를 매고, 한껏 광을 낸 구두를 신고 다니는... 주머니에는 언제든 나눠줄 수 있는 정갈한 명함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반대편 주머니에는 이름만 대면 알법한 회사 중견의 명함들이 있겠지. 야근이 많긴 하지만, 야근 수당도 제법 받고, 최소한 일요일은 쉴 수 있겠지... 가끔은 싱가포르나 일본, 호주로 근사한 캐리어를 들고 출장도 다니겠지...


문구점 아저씨로 살아온 지 4년 반이 되었다. 소파 방정환 선생님을 삶의 모델로 삼아 어린이를 극진히 사랑하고 아껴서 문구점을 연 것은 아니었다. 출판사 편집부 일을 하는 게 뒤늦게 갖게 된(무려 삼십 세 중반) 꿈이었다. 원래 하던 일을 과감히 내려놓고(그땐 용기인줄 알았는데 무모였다), 출판사 면접을 보았다. 경력이 없으니 당연히 떨어졌다.


계속 도전해 보려던 차에 동생과 어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문구점 자리가 났다는데, 한번 해 볼래” 평소에는 불효를 일삼던 내가 그때에는 갑자기 망조가 들었는지, “해 볼까”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시작한 거다. 서비스업을 해 본적도 없고, 물건의 가격도 모르고 시작했다. 역시, 무식하면 용감한 건가.

그동안 여러 일이 있었다. 3~4살 먹은 아이부터 머리가 허연 어르신까지 손님은 다양했고, 각종 진상을 만났다. 동전을 마구 던지는 사람, 이리저리 다 뜯어보고 사지 않는 사람, 반말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 물건을 훔치는 아이도 많았다. 500원 짜리 샤프심부터 이만 원에 이르는 장난감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다행히 다 검거했다(못 잡은 아이도 많겠지. 흑흑). 게임기를 뜯어 동전을 훔친 아이도 있었다. 이번에도 검거. 주위에 팬시 전문점과 모든 게 ‘다 있는’ 상점이 생겨 매출 그래프는 아래로 점점 기울었다. 설상가상으로 학생 수도 줄어 그래프는 도통 오를 생각을 안 한다(이건 현재진행형이라 가슴 아프다).


그래도 숱한 풍파 속에서, 살아남았다. 주위의 문구점이 네 곳이나 문을 닫았다(그래도 매출엔 별 영향이 없는 걸 보니 신기하다). 몇 년 전엔 정신과 치료도 받고, 우울증 약도 먹었지만 이젠 약도 끊었다(흠. 고혈압 약은 먹고 있구나). 매년 말, 경찰서로부터 표창도 받는다. 올해도 상장과 (별 쓸모없는) 수건을 받았다. 학교 앞이라 ‘아동안전지킴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경찰서의 일방적인 통보다. 사실, 하는 일은 별로 없다).


문구점을 하면서 제일 어려운 것은 진상도, 도둑도, 매출의 극감도 아니다. 일을 하면서 보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세상 모든 일이 다 어렵다.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다. 내가 부러워한 비즈니스맨이 나 같은 자영업자를 부러워할 수도 있다. 1년차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장사했지만, 차차 보람이 없다고 느껴졌다. 그게 힘들었다.


“감사합니다.”, “고생하시네요.” 이런 말을 듣는 건 고사하고, “안녕”해도 아무 말 없이 가게 들어와서 살 것만 사 가지고 나가는 아이들의 뒷모습만 보는 게 일상이다. 일을 하며 배우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늘은 것이라곤 욕설과 뱃살뿐이다.


적성도 안 맞는다. 서비스업이 원래 간과 심장, 오장육부 다 빼고 하는 거라고 했는데, 난 그럴 수 없었다. 오장육부가 다 있어야 했다. “오른뺨을 치면 왼뺨도 대라”는 “오른뺨을 맞으면 상대가 오른뺨을 대야지”라는 말로 바뀌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내게 맞는 신조였다.


일이 힘들더라도 보람이 있으면 괜찮은데, 스스로 보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쓸데없는 거 사지마.”라는 아줌마들의 합창 속에 나 자신이 쓸데없는 것만 파는 사람이라 느껴졌다. 비교했다. 다른 사람과 나를. 정확히 말하면 다른 사람의 직업과 나의 직업을. 직업엔 귀천이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나 스스로 내가 하는 일이 가치 없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에게 내 직업을 이야기하기가 머쓱했다. 나는 보람이 없고, 가치가 없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지금은 바뀌었다. “안녕” (솔 음으로) 하며 아이들을 경쾌하게 맞이하고, 엄마들을 만나면 “헤어스타일 바뀌셨네요. 아이가 요즘 인사를 잘 해요. 호호호.” 곰살맞게 얘기하고, 물건을 훔친 현행범한테 “사랑의 이름으로 너를 용서한다.”고 말하진 않는다. 나는 여전히 무뚝뚝한 문구점 아저씨일 뿐.


조금 마음이 바뀌었다. 예전엔 보람과 의미를 찾았다면, 굳이 찾지 않는다. 보람을 찾다가 없으면 더 실망하지 않나. 물론, 기대하는 게 하나도 없는 것도 문제겠지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건 더 큰 문제이다. 무언가를 향해 기대치가 크면 클수록 실망감은 더 커진다는 삶의 지극히 당연한 원리를 스스로 깨우쳤다. 하루 잘 살았으면 그만이다. 하루 탈 없이, 손님과 큰 갈등 없이 하루를 마무리하면 그만이다. 하나뿐인 아내와 하나뿐인 아들을 건사하는, 가장의 역할을 최소한이나마 감당하면 됐다. 내일도 지리한 일상이 펼쳐지겠지만, 아침에 나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다행이다.


이 ‘조금’이 생각보단 크다. 조금 마음을 달리 먹었을 뿐인데, 예전보다 일 하는 게 수월해졌고, 진상을 만날 때도 예전처럼 치명적인 마상(마음의 상처)을 입진 않는다. “새로운 종류의 진상을 만났군. 허허. 이런 류는 다음부터는 이렇게 대처해야겠어.”하며 씩 웃을 뿐.


얼마 후엔 책이 나온다(나중에 책 나오면 사 달라는 부탁. 협박?). 문구점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쓴 책은 아니지만, 문구점에서의 일이 자양분이 된 건 확실하다. 오늘 에세이는 이쯤 마친다(응, 갑자기?). 더 듣고 싶다면, 다음번에 쓰겠다.


결론은 보람 따윈 필요 없다. 그래도 있으면 더 좋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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