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장, 한 구절, 한 단어라도...

낭만사전#5 쓰기 / 쓴다는 것은

by Philip Lee

펜을 잡고 쓰기 시작한다. 어떤 주제든, 어떤 표현이든 괜찮다. 화려한 미사여구나 포장도 필요 없다. 잘 써야겠다는 다짐은 안 해도 된다. 맞춤법이 좀 틀려도 상관없다. 맥주병 같은 나도 글 속에선 헤엄친다. 글을 쓰며 조금씩 나는 무장해제된다. 내가 글이 되고, 글이 내가 되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푸념,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어려운 문제, 터무니없지만 간절히 바라는 꿈, 소중한 사람과의 소소한 추억... 이 모든 것이 글로 써진다. 내가 겪은 모든 일, 상상하는 모든 꿈, 만나는 모든 것이 글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굉장하지 않은가. 나는 쓸 뿐인데, 세상의 모든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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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작가만 글을 쓰는 것 아니냐고? 쓰는 순간, 쓰는 그 사람은 이미 작가(作家). 잘 짜진 플롯과 매력 있는 인물이 나오는 소설이 아니라도 괜찮다. 탁월한 비유와 풍자가 넘치는 시가 아니라도 괜찮다. 나의 진심과 땀이 오롯이 배여 있을 때, 이미 그 글은 걸작품(masterpiece).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작품이 된다.

잿빛 세상에 빠져 허우적대는 나. 더 이상 꿈을 말할 처지가 아닌 나. 다른 사람을 도울 힘 없고, 내 몸뚱이조차 건사하기 힘든 나. 내게 필요한 건 오직 하나. ‘글쓰기’. 글만이 나를 숨쉬게 하리라. 글만이 나를 일으키리라. 오직 글만이 나를 구원할 것이다.


숨 쉬는 지금, 무엇이라도 쓰자. 더 이상 아까운 생(生)을 허비 말고! 한 문장, 한 구절, 그것도 아니라면 한 단어라도 쓰자.


쓰는 그 순간 내 인생은 기록되고, 깊어지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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