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사전#3 시집 / 이젠 그 책을 펼칠 때
모두가 머리를 숙이고 있다. 대부분 스마트폰을 쳐다본다. 게임을 하고, 영상을 보고,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고... 모두 조용하다. 폰과 혼연일체다. 어느 샌가 익숙해진 전철 안 풍경이다. 그중 손에 책을 들고, 게다가 읽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면 흠칫 놀랄 것이다. 구석기 시대의 유물처럼 낯선 광경이니까.
‘빨리’ 직장 가야 하고, ‘빨리’ 일을 끝마쳐야 하고,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야 하고. ‘빨리’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져야 하는 우리. ‘빨리’의 시대에서 책 한 권 읽는 건 그 자체로 말이 안 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다른 책도 아닌 ‘시집’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바쁜 시대에 시를 읽는다는 건 사치라고까지 여겨진다.
짧고 쉽게 읽힐 것 같은 시. 그렇지만, 시 한 편 읽는 것보다 짧은 동영상을 휘리릭 감상하는 것이 편하다. 시 한 구절 외우는 것보다 최신 유행하는 개그에 피식하거나, 나와 전혀 상관없는 연예 뉴스에 희비애환을 느끼는 것이 우리다. 그렇다면, 인생에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시시해 보이는 시. 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안도현, <스며드는 것> 중)
이것이 시인의 눈이다. 맛있게 먹고 끝나버리는 꽃게. 시인은 그 속에서 생명을 본다. 어미와 알을 본다. 하나의 알이라도 더 품으려는 어미의 마음을 끝끝내 시인은 보고 만다. 시 속에는 다른 사람이 미처 보지 못한 특별한 것이 들어 있다. 그것들을 발견함으로 매일 반복되는, 시시한 삶이 조금이라도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한 편을 더 보자.
시 한편에 삼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함민복, <긍정적인 밥>)
어떤가. 국밥 한 그릇을 먹은 것처럼 배가 불러오지 않나? 절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순간 내 인생을 돌아본다. 굽이쳐 흐르는 강물 같은 인생 속에 나의 자리는 과연 어디일까, 나는 잘 살고 있는가? 자문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시는 세상을 바라보고, 나를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이 시의 힘이리라.
어느덧 강렬한 햇빛은 조금 줄어들고,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간질인다. 바야흐로 시 맛을 제일 느낄 수 있을 때다. 책장 구석에 처박혀 있던 시집 한 권을 꺼내보자. 오래된 책일수록 좋다. 표지 먼지는 이따 털고, 일단 책장을 펼치자. 시를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보자. 그냥 시에 나를 맡겨 보는 것이다.
혹, 가슴 한켠이 아리고, 무언가가 깊은 곳에서 울컥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시가 부리는 마술에 취한 것일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