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그리 재나?"

낭만사전 #1 자 / 우리가 재고 있는 것

by Philip Lee

자를 돌린다. 아이는 조그마한 손으로 이리저리 자를 움직인다. 뭘 하는 걸까? 사각형의 가로, 세로 길이를 잰다. 삼각형 한 변의 길이를 구하기도 한다. 10센티미터 내외, 길어봤자 30센티미터의 그것. 아이에겐 수업 시간에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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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놀 거리가 없을 때는 예쁜 색깔펜을 자에 대고 선을 긋는다. 친구와 나의 손을 재서 누구 손이 더 큰지 알아본다. 남자 아이들에겐 칼싸움의 흔한 도구로도 쓰인다. 좀 짓궂은 아이는 자기 자리에 넘어온 짝꿍의 손을 찰싹 때리기도 한다.


이젠 도형을 재야 할 일도 없고, 친구의 손 길이를 알고 싶은 호기심도 없다. 종종 다투던 짝꿍도 이젠 옆에 없다. 어른이 되어가며, 자는 필요 없어졌다. 조금씩 사라졌다. 그럼에도 무언가 자꾸 ‘재고’ 있는 우리.


이사 가고 싶은 아파트 평수를 머릿속에 항상 잰다. 출근길엔 외제차를 보며, 몰고 싶은 자동차의 폭과 길이를 잰다. 정기검진 때마다 “살 좀 빼셔야겠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도무지 줄지 않는 허리 치수를 재기도 한다. 도통 크지 않는 아이를 데려다가 “옆집 애는 쑥쑥 크던데...”하며 키를 재는 것도 한 달에 여러 번. 똑같은 곳에 맨날 상처가 나는 하얀 벽지만 애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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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냉장고, 세탁기, 싱크대, 스마트폰, 노트북... 조금만 고개를 돌려 보면 자꾸 잴 것이 보인다. 부푼 희망을 갖고 잰다. 꿈이라도 꿔보자는 마음으로 잰다. 남의 것과 비교하며 잰다.


십수 년을 안 쓰고 모아 산 널찍한 아파트. 부푼 마음으로 잠자리에 드는데 문득 떠오른 생각. ‘잠자는 건 어디서나 똑같지 않나.’ 남들과 비교하느라, 남들보다 앞서느라 이리저리 밟히고 찢긴 내 마음은 어떻게 잴까? 야근 탓에 자주 보지 못한 아이들. 키는 여러 번 쟀지만, 얼마나 마음이 크고, 아름다워졌는지는 잴 수 없었다.


재자. 쓸데없는 것을 재지 말고, 남들과 비교하며 재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러기에 더욱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을 재자. 참 잴 것 많은 이 세상, 내게 묻는다.


"뭘 그리 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