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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갓 된 엄마

아무도 못 믿겠는데 내가 제일 못 믿겠다는

육아의 딜레마

by 빛율

아이를 기관에 맡기면 원인 모르게 다쳐오죠, 이불에 벌레도 달려오죠, 양말은 새까맣죠, 정신없는 자극에 계속 노출되죠, 일찍이 염도 높은 음식 먹죠, 단팥빵 크림빵 등 일찍 단 간식도 주죠, 응가를 해도 화학성분 가득한 물티슈로 처리하죠, 먹여주고 갈아주고 해 주는데 익숙해진 수동적이고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죠. 내 마음대로 기를 수 없어서 육아효능감 떨어지고 아이와 떨어져 있는 시간의 공허함에 우울감도 오죠.


그렇다고 아이를 제 자신에게 맡긴다고 덜하지 않습니다. 젖물잠으로 안 좋은 식사수면습관 부활하죠, 규칙적인 일과와 시간 개념 못 배우죠, 제대로 못해먹이죠, 낙상 잦죠, 엄마는 제대로 못 먹고 운동할 시간은커녕 폰 볼 시간도 없어 마음과는 별개로 몸이 망가지죠.


확실한 건 가정보육할 때의 아이와 나는 훨씬 연결되어 있고 같은 리듬 생활을 하게 되면서 엄마와 아이 모두 안정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엄마와 있는 시간을 분명 더 편안해하고 좋아하지만, 나가면 더 재밌어하고 언어적 인지적 도약이 눈에 띄게 성장하는 동시에 긴장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습니다. 한창 원에 다니기 전에는 호기심에 매일 나가자고 하더니, 이제는 집에서도 스스로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며 하고 싶은 일이 많아져서인지 등원할 생각을 안 합니다. 친구들이랑 선생님 보고 싶지 않은지 물어보면 엄마랑 있는 게 더 좋다고 하고요. 그런 아이 등을 떠밀어 아이를 기관에 맡기는 마음이 내키지 않습니다. 지금 일하는 엄마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돌볼 수 있는 상황이면서 왜 굳이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있나 하는 자책감이 듭니다.


엄마의 불안은 아직 아이가 의사표현이 안 되는 가운데 통제불가능한 상황 속에 아이를 혼자 놓아두는데서 옵니다. 친절한 어린이집의 식단표는 음식의 염도와 맛, 내 아이가 먹은 양과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했는지까지 모두 말해주지 못합니다. 아이는 원하는 때 원하는 만큼 자지 못하고 자기 생체리듬과 무관하게 정해진 때 잠에 들어야 하며 친구가 먼저 깨면 같이 깨게 됩니다. 무엇보다 이러저러한 아이의 상황을 매일 브리핑하고 부탁을 드리는 입장이 편안하지 않습니다. 예민 맘이라는 프레임에 갇힐까 봐 말을 해도 안 해도 괴롭습니다.


윗집 작은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는 아이를 보면서 생각합니다. 둘 만의 적막 속에 오래 단둘이 있다 보면 평화롭지만 고립되어 있다고도 느낍니다. 하루는 빨리 가지만 한 주는 더디 갑니다. 매 순간이 다정하고 사랑스럽고 경이롭기에 아이의 지금을 놓치고 싶지 않지만 내 건강과 젊음을 놓고 있습니다. 늘 아이와 같이 아프지만 아이의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서야 내 약도 받는 걸 깜빡했음을 알아차리고 그냥 약 없이 견디고 지나가기로 합니다.


일을 한 해 더 쉬기로 큰 결정을 하고서 최근 가정보육을 하는 소신 있는 엄마들을 많이 만나게 되면서 자신이 부끄럽고 한심해졌습니다. 만족하지 못하고 불안하고 불행하다고 하면서도 멈추지 못한 나 자신의 결단력 없음을 반성했습니다. 나 역시 불안보다는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가정보육에 용기를 내어볼까 고민했습니다.


'그게 용기까지 낼 일인가, 그냥 함께 있으면 되지, 안보내면 되는 것을. 반찬 사서 잘 차려주고, 가끔 지금처럼 원하는 수업을 듣고, 아이와 책 읽고 도서관과 미술관 가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면서, 공동 육아도 하면서 그렇게 보내면 어떨까.'

자뭇 호기로운 결단은 '혹시'에서 늘 멈춥니다.


'내가 혹시 아파서 아이를 못 돌보는 상황이 되면 어쩌나. 이제 엄마와 분리가 가능하니 근처 시간제 보육 돌봄 서비스를 이용해도 되고 안되면 아이 아빠가 휴가를 써도 되지. 만약의 상황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원치 않는 상황으로 세팅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러다 이미 아이가 기관에 적응했는데 빽도하면 다시 보낼 때 적응 기간을 또 가져야 해서 힘들 거라는 사실과 아이가 상당히 외향적이고 사람을 좋아한다는 사실, 이제야 조금씩 의사표현이 가능해지고 있다는 세 가지 사실에서 다시 멈춰 섭니다.


무급 휴직으로 인한 경제고, 한 달 후 원을 옮기는 일과 반년 후 완전 새로운 곳으로의 이사, 갓 시작한 영어공동육아 모임 운영에 대한 고민까지. 올해 삼재라더니. 너무 많은 변화와 불확실함 속에 있게 되었습니다. 기회로 삼을 위기들. 이 모든 기회들을 나와 아이, 우리 가족의 심신 건강과 안정, 성장과 도약의 계기로 삼아야겠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한 해는 어떻게 될까요? 입학 설명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째깍째깍.. 나라는 사람은 뭐든 끝날 때까지 치열하게 고민을 물고 있는 습성이 있어 큰일입니다.


'주 3일만 보내지 뭐. 이틀은 혼육아와 공동육아하고.'


'그것보단 주 5회 오전만 보내는 게 훨씬 나을걸? 차 태우지 않을 거니까 이제 데려오고 가는 시간도 훨씬 좋은 산책이 될 거야.'


'그래, 오전만 운동과 독서, 글쓰기와 공부, 집안일과 요리를 하고 오후에 아이와 가정보육한다고 생각하자.'


'넌 기관의 도움을 받으며 가정보육하는 중인 거야 왜! 순도 100프로를 고집할 필요가 있니?!'


'어차피 양가 도움도 못 받고 혼자 키우면서 백 프로 가정보육하겠다는 건 네 몸을 돌보고 다른 진로를 모색해 보겠다는 새해 결심은 내려놓겠다는 거지!'


그래, 오늘도 화장실 갈 시간을 못 냈단 걸 알아차렸어요. 변비가 생겼습니다. 편히 원하는 때 일을 마칠 여유를 못 내고 있습니다. 아이가 깨어있을 땐 항상 교감 상태인지 아이가 잠들면 그제야 신호를 보내오는 내 몸. 등원 후, 낮잠이나 밤잠 후 홀로 화장실에서 느낄 고요가 필요합니다.


늘 마무리는 이렇습니다.

"어린이집 선생님, 나의 육아 동지님, 오늘도 무조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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