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s done is done, and life moves on.
"그럼 난 뭘 기다리는 건가 생각하게 되죠, 가끔.
손님을 기다리나 싶은데 막상 손님이 오면 손님을 기다렸던 건 아닌 것 같거든.
퇴근하길 기다리나 싶은데 막상 퇴근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월급을 기다리나 싶어도 월급을 타면 또 그렇게 반갑지만은 않고, 뭔지 모르겠어. 뭘 기다리는지. 근데 기다리긴 한단 말이에요.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도저히 모르겠다 싶을 때 내가 뭘 하느냐면."
-<오늘의 커피>, 최진영 중에서
내가 기다리는 게 뭔지 도저히 모르겠다 싶을 때 내가 뭘 하느냐면..
영어 공부를 한다.
육아서 읽고 실천하기, 발도르프 교육 공부하고 삶에 적용하기에 지쳐있었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속에서 자아가 분열하고 우울감이 들었을 때, 나는 영어 공동 육아 모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내 육아 일상에 가속도가 붙었고, 자연주의 육아와는 반대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왜일까? 영어는 왜 자연스럽지 못할까?
내로남불.
내가 하는 영어 모임과 영어 육아는 발달 친화적이고, 가장 자연스러운 영어 노출이 방식이며,
남이 하는 영어 유치원이나 엄마표 영어, 영어 사교육은 지나친 영어 조기 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만 3세까지 모국어에 집중하자며 느긋하던 마음이 갑자기 조급해졌다.
모임의 운영 방향을 고민하기 위해 이중 언어 교육 관련 책을 읽고
가입했던 커뮤니티나 스터디방의 미션이 바쁜 육아 일상 속으로 쓰나미처럼 몰려들었다.
조금 피곤해졌다. 남들처럼 엄마표 영어를 배워보겠다고 영어 전집을 들이고 음원을 노출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아이 역시 그렇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고, 내게 에너지를 주던 영어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끊임없이 부모의 불안을 자극해 뭔가를 하게 하고 사게 하는 SNS 속 광고,
육아 선배이자 동지를 자칭하는 인플루언서들의 친절 어린 공유와 공구의 유혹, 유료화된 많은 육아 스터디들. 우리는 부모의 두려움을 먹이 삼아 증식하는 거대한 자본 시장 속에서 표류하고 있는 외롭고 고단하고 날로 가난해져 가는 엄마다. 나는 육아 인플루언서들의 친절에 어느 순간부터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뭘 하고 있는 거지?
아무런 이익도 좇지 않고?
아니, 솔직해지자. 나와 내 아이의 이익을 가장 비생산적인 방식으로 좇고 있는 건 아닐까?
바이링구얼 육아에 대해 설왕설래가 많다. 공부할수록 영어라는 언어 교육에 대한 견해가 정말 다양해서 혼란스러웠다. 개인차가 크고, 사회 문화 경제적 배경이 큰 영향을 주는 언어가 가진 특성 때문인 것 같다.
모임 공지나 대화를 하고 나면 뼛속까지 모노링구얼인 나는 과부하가 온다. 아주 오랜만에 영어로 말하기를 시작했던 모임 초기에는 영어로 꿈을 꾸고 생각하기 시작해서 그 스위치를 껐다 켜는 게 자유롭지 않아 버벅대기도 했다.
3개월이 지나니 영어가 늘고 자신감이 생겼다는 느낌보다는 점점 더 부족한 느낌이 든다. 분명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는데 웬걸, 점점 쭈글 해진다. 원어민 친구를 사귀어도 발음이나 표현을 고쳐주지는 않다 보니 멋모르고 자신감만 늘었던 것이다. 영어 인생에서 처음으로 멤버에게 발음 지적도 받고 한동안 어안이 벙벙했는데, 녹음해서 들어보니 정말 엉망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분명 공용어로서의 영어에 발음은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아니었다! 발음이 달라서, 자연스럽지 않아서 소통이 잘 안 되거나 집중력이 떨어지기도 했다! 적어도 한국에서 영어 발음은 상당히 중요해 보인다. 유창성이 떨어져도 발음이 좋으면 영어를 잘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집안일과 건강 챙기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영어 고급자가 되기 위해 혹독한 영어 공부와 훈련을 할 것이냐, 이 도전을 그냥 넘길 것이냐로 고민을 좀 했다. '모임장으로서 어느 정도 영어를 잘해야 되지 않나'라는 생각과 '내가 못해야 못하는 사람들도 용기를 내서 들어오지'라는 자기 위안 사이에서 나는 무리한 결심을 했다. 가보자고! 감사한 기회로 삼자고!
그리고 책은 치워야겠다. 한 번에 아이가 소화할 만한 책의 양- 한 주에 열 권 정도만 두고 나머지는 모두 안 보이게 치워야겠다. 얼른 이사 가서 큰 책장을 사면 치워야지- 하고 더는 미뤄서는 안 되겠다. 지금 가진 공간에서 비우고 버리고 나누는 작업을 다시 내 삶의 그 무엇보다 열심히 시작해야겠다.
비워진 책장. 적은 책으로 깊이, 오래 놀면서. 많은 놀잇감과 책 없이도 한국어든 영어든 다양하고 재밌게 놀고 상호작용하면서 즐겁고 끈끈해지고 행복한 우리 집의 모습을 꿈꿔본다.
간혹 멈춰 서더라도 어떤가? 잠깐 쉬어가도 어떤가? 월 2회, 많게는 주 1회 정기적으로 영어로 듣고 말하는 시스템을 모임을 통해 만들어놓았으니.
영어 육아야 말로 엄마표 영어보다 돈 안 들고, 공간 안 들고, 부모와 아이 모두의 스트레스가 더 적은 방법일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싶다. 나를 잃어버리는 육아에서 나를 채우는 육아라고 믿고 싶다.
지역 내 작은 영어 공동 육아 소모임을 꿈꿨는데, 지역 내에서 찾기가 어렵다 보니 모임이 지역적으로도 넓어지고 규모도 커져가고 있다. 어떤 철학으로 어떤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꾸려나갈지를 고민하다가 이 영상을 만났다.
https://www.youtube.com/watch?v=wXXKyGA-LXc
한참 웃다가 씁쓸한 뒷맛이 남았다. 학원과 과외로 배변훈련 등의 가정교육을 대신하는 엄마의 모습을 통해 영어나 학습이 먼저여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준다. 그리고 알고리즘이 연이어 보여준 다음 영상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https://youtu.be/DysyxTqFlnY?si=ltvEOIcF3y0Is7yD&t=355
'어린아이들에게 고등학생 수준의 시험을 요구하는 건 가히 정서적인 학대'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는?
나는?
이 모임은? 어때야 하는가?
나는 왜 특정 지역의 신청자를 보고 멈칫했을까.
영어로 말할 수 있는 부모님을 찾아 낙담했을 때만 해도,
모임을 열면서 처음으로 학군에 대해 절감했다.
거대 사교육 시장, 교육열의 한가운데에 발을 들여놓은 듯 한동안 속이 메스꺼워져
'내가 대체 무슨 일을 벌인 거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은,
'좋은 사람과의 연결, 품앗이 공동 육아'라는 데 집중하면서,
나와 내가 지향하는 삶과 육아의 방향을 고민하면서,
나답게 운영하고, 나답게,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럽고 즐겁고 의미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가야지.
그럼 난 지금 뭘 기다리는 걸까.
결국 다 지나간 일이고, 또 계속될 일이야.
"What’s done is done, and the journey goes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