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선언문
생일을 맞이하는 마음 자세에 대한 사적인 공언
오늘은 내 탄생을 빌미로 나를 아끼는 이들로부터 선물이나 축하를 실눈 뜨고 겸손한 척 감사히 받아 챙기는 날이 아닙니다. 선물이나 축하 메시지의 양과 질로 내 한 해 관계농사를 점치는 날은 더더욱 아닙니다. 좋아하지도 않고 몸에 좋지도 않은 생일 케이크를 반드시 받아먹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나는 내 생일이 내 가족들에게 미역국을 끓이거나 선물과 이벤트를 준비하는 수고로움과 부담을 주는 날이 아니길 바랍니다.
나는 매년 돌아오는 내 생일에 나를 아끼고 내가 아끼는 모든 이들에게 어떠한 심적 재정적 짐을 지우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에게도 선물을 받지 않아도,
그 누구의 축하도 받지 않더라도 나는 다만
내 탄생을 내 스스로가 진심으로 기뻐하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주어진 생에 진심으로 감사하기를 소원합니다.
나를 짓고 세상과 만나도록 돕느라 고생하셨을 부모님의 노고를 기억하며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내 손으로 미역국 한 그릇 끓여 드릴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나는 내 생을 스스로 축복합니다.
나는 완벽하지 않은 이번 생을 사랑합니다.
나는 부족하고 서투른 나를 이해하고 아낍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온전하고 충만합니다.
나는 내가 궁금하고
내가 나를 아끼며
나의 꿈을 누구보다 응원합니다.
그리고 내 생을 귀히 여기듯
다른 생에게도 그러하기를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나의 생일입니다.
오늘 당신의 축하를 정중히 사양하는 까닭은
온전히 내 생의 신비에 집중하기를 위함이며,
동시에 당신의 생과 시간이 내게도 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신과 나의 생일에 오가던 선물과 축복의 말을 준비하던 열정을 잘 아껴두었다가
나는 이제 드디어 당신의 존재가 진심으로 감사한 순간에 필요한 곳에 그 사랑을 보다 자연스럽고 진실되게 흘려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축하와 선물, 특별함을 기다리며 내 생일의 행복을 다른 이들에게 수동적으로 내맡기다 우울해지기 일쑤이던, 고통이고 부자유이던 생일은 이제 다신 없습니다.
'받는' 생일대신 '존재하는' 생을 삽니다.
세포 하나하나에 깊숙이 깃든 나에 대한 경멸과 증오를 몰아내고 오로지 기쁨과 감사로
단 한 번도 건네보지 못했던 진심 어린 축복을 내게 건넵니다.
나는 내가 언제 태어났는지 기억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나는 내 생이 기억되고 또 잊히기를 바랍니다.
잊히기를 바라는 까닭은 그것이 생의 섭리임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생일' 축하대신 '생을' 축하하고 싶습니다.
나는 살아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도 안녕하겠습니다!
ㅡ '생일 축하'보다 '생의 축복'을, '생일'보다 '생을' 살기를 기대하며.
가을의 한가운데 시작된 한낱의 생, 빛율 쓰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