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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담 Sep 21. 2023

1-1. 그 날

희귀난치병인데, 어떻게 고치면 되느냐 물었다.

 남들 보다 조금 늦게, 이제 막 걷기 시작한 두 살의 나의 아들이 희귀난치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그 날은 이상하게도 햇살이 눈부셨고 여름휴가 기간이라 무더운 날씨였지만 에어컨 덕분에 실내가 쾌적해서 그 햇살이 참 따뜻하다고 느꼈다. 그 날, 너무나 큰 절망감을 안겨준 곳인데도 이상하게 쾌적한 공기로 인한 기분 좋은 느낌과 아름다운 햇살이 또렷이 기억이 난다. 마치 내가 슬픈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조명이 비춰주는 것 같았고,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세상이 멈춘 것 같았던 기억이 머리 속에 강하게 남아있다. 마음은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았고 너무나 큰 절망으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제 걸음마를 뗀 이 작은 아이가 점점 근육이 약해져 가고, 아니 없어져간다는 것이 맞는 말이겠지. 그리고 커가면서 점점 걷지 못할 것이고 근육이 사라지면서 몸은 야위어 가고 결국은 누워서 생활해야 한다는 사실이 상상이나 갈까. 결국은 심장을 움직이는 근육조차 심장을 뛰게 하지 못해서 그 수명이 겨우 20년이라는 사실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던 그 날, 병원의 풍경은 왜 그리도 평화로울 정도로 조용하고 햇살은 따뜻했는지.


 이런 우리 부부의 마음을 알지도 못하고 그 작은 아이는 막 걷기 시작해 세상의 모든 것이 신기했고 진료실의 곳곳을 누비기 위해 내 품을 벗어나려고 하였다. 결국 남편을 남겨두고 아이를 끌고 진료실을 나왔다. 근이영양증. 처음 들어보는 병명이었다. 그 때 의사에게 못 다 들은 정보를 알기 위해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다. 희망을 찾아볼 수 없고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병원에서는 서울대병원을 가보라고 하였고 바로 이틀 뒤에 예약을 잡아주었다. 혼란스러웠다. 겨우 감기 때문에 아동병원에 입원했을 뿐이었는데, 피검사를 하다가 간수치가 이상해서 지역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가게 되었고 그 작은 팔에 수십 번 바늘을 꽂으며 수많은 검사를 해왔다. 그날도 원인을 못 찾겠지, 병원 오는 거 지긋지긋하다, 또 피검사하자고 하겠지 하며 투덜투덜 병원을 찾았는데 드디어 원인이 밝혀졌다. 우습게도 무지한 나는 드디어 원인을 찾았다며 후련하다는 생각을 하며 의사의 말을 기다렸다. 원인을 알면 치료를 하고 병을 고친다는 것이 내가 이때까지 살아온 세계의 이야기였다. 그랬기 때문에 이제 치료만 하면 되겠지, 하며 안도하였다. 하지만 이 놈의 병은 참 끔찍한 병이었다. 멀쩡히 걷던 아이가 휠체어를 타게 된다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차츰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서 그제야 눈물이 났다. 마음 아픈 남편에 대한 생각은 하지 못하고 남편을 붙들고 질문을 쏟아부었다. 말이 되냐면서, 그런 병이 세상에 어딨냐고 울었다. 그래도 서울에 가면 마음이 좀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서울대병원을 찾았다.


 세상에, 이렇게 아픈 아이들이 많을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한 시간 반이나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온 세상을 돌아볼 것처럼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아들 녀석 덕분에 병원 로비를 쉴 새 없이 좇아 다녔다. 하지만 그 바쁜 중에도 아픈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눈물이 터져 나왔다. 기나긴 대기 시간을 지나 드디어 진료실로 들어갔다. 힘들게 찾은 병원인데 진료시간은 허무할 정도로 짧았다. 아무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우리 아이의 병을 확신하며, 더 할 얘기도 없다는 태도. 모든 질문은 끝나기도 전에 차단당해버리고 제대로 된 설명도 듣지 못했다. 어차피 검색하면 다 나오는 이야기. 그저 병의 진단을 확정하기 위해 몇 시간을 달려 병원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났다. 지나가는 남자아이들만 봐도 눈물이 터져 나왔다. 미래가 너무 두려워졌다. 절대 검색은 하지 말라는 의사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정처 없이 인터넷 세상을 헤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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