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서울 나들이
우린 그냥 여행을 가는 거야.
우리는 서울대학교병원으로 1년에 두 번 정기진료를 다니고 있다.(우리 아이가 처방받을 약도 없고 진행 속도가 느린 덕분에 코로나 동안은 1년 반 정도 병원을 가지 않았고 그러고 다시 찾은 후로는 1년에 한 번 다니고 있다.) 그 곳에는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선생님이 계신다. 관련 질환을 검색하면 인터뷰며, 다양한 영상 자료로 만나실 수 있는 분이다. 하루에만 몇 십명의 환자들을 만나는, 마음은 다르겠지만 업무에 치여 굉장히 까칠한 그런 선생님이 있는 곳이다. 다른 엄마들은 이 교수님의 명성을 익히 알고 첫 진료실을 찾는다고 하는데, 우리는 정말로 아무 것도 모르고 약간의 기대를 안고 서울 나들이를 갔다. 가서 주변 관광지도 알아두고 여행처럼 다녀오자 마음 먹고 서울 가는 기차에 올랐다. 기차를 유난히 좋아하던 우리 아이는 기차도 타고 지하철도 타고 가는 길을 즐거워했다. 우리는 타 지역 대학 병원에서 이제 막 진단을 받고 거의 하루 이틀 만에 얼떨떨한 상태로 서울대학교병원으로 가게 되어 아무런 정보도 없었던 상태였다.
그런 상태로 갔으니, 첫 진료는 아주 대충격이었다. 진료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고, 이미 다 찾아보고왔죠? 확실하네요, 6개월마다 봅시다. 라는 몇 마디 말로 끝났다. 그리고 인터넷 너무 찾아보지말라고 당부하며 다음 예약 설명은 간호사에게 들으라고 하였다. 한 동안 벙찐 상태로 진료실에 쫓겨나왔다. 간호사를 기다리며 나는 쉬지 않고 투덜거렸다. 너무 짧은 진료시간과 의사의 퉁명스러운 진료 방식, 아무런 설명 없는 답답함에 계속 투덜거렸다. 신랑의 듣고만 있는 모습에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며 채근했다. 결국 신랑은 그만 하라며 짜증섞인 대답을 했다. 아픈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좋지 못한 모습이라는 말에는 동의했지만, 나도 이 상황에서 제정신을 찾기 힘들었다. 서로 기분만 상해버렸다.
지금도 그 날의 충격이 생생하다. 병원 진료를 저렇게 볼 수도 있구나, 놀라웠다. 그 뒤에도 진료는 다르지 않았다. 나의 충격적인 경험을 같은 교수님에게 진료 받은 엄마들에게 말하니 그럴만하다며 웃었다. 물론 치료 방법이 있는 병도 아니거니와, 하루에만 몇 십명의 환자와 그 부모들까지 대면하다보면 수백명의 사람을 만나야하는 교수님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라지만 얼굴 한 번 마주치지 않고, 재촉하듯 급한 진료에, 톡톡 쏘며 아이의 병과 마주보게 만드는 교수님의 태도는 지금도 적응되지 않는다. 갈 때마다 끝없는 바닥으로 마음이 뚝 떨어져버린다.
우리는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첫 진료를 봤던 그 날 창덕궁에 가기로 했었다. 그런 상태로 창덕궁을 갔는데 이놈의 아들 녀석은 지독히도 말을 듣지 않았다. 여름이라 날도 더운데 자기 멋대로 가느라 궁 산책은커녕, 부부 사이는 더 없이 틀어져버렸다. 분명 푸른 녹음이 아름다운 궁의 모습이었는데,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된 여행으로 끝이 났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병원 가는 날은 서울 나들이 가는 날이다. 처음 병원갔을 때 마음 먹었다. 우리는 여행을 가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