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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담 Sep 21. 2023

1-3. 시간은 흐른다

누구에게나 슬픈 인생의 한 컷 정도는 있어.

우리 아이가 처음 진단 받았을 때 나이가 2살이었다. 또래보다 조금 느리게 걸음마를 시작했던 작고 작은 존재였다. 그 때 우리는 참 단란하고 행복했다. 나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였고,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고 원하던 때에 아이는 우리에게 왔다. 아이를 기다리는 동안 내 인생의 모든 것이 탄탄대로로 흘러가는 듯했다. 아이를 기다리며 설레었고, 우리 둘만의 시간은 소중했다. 열 달을 품고 태어난 나의 아이는 어찌나 우리 둘을 반씩 닮았는지, 게다가 닮은 부분이 어찌나 이쁜 부분들만 모아놨는지 신기하고도 귀여운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그저 행복했다. 물론 퇴근이 늦은, 바쁜 신랑을 기다리며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힘들기도 했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참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그런 아이가,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건강하게 태어나 보이는 내 아이가 점점 아플 것이란 사실은 믿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8살 초등학생이 되었다. 행동도 느리고 말도 느렸던 아이가 다행히도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한글을 떼고 더하기를 할 수 있었고 의젓하게 커다란 책가방을 등에 지고 등교를 했다. 물론 아이의 성장이 달갑지만은 않은, 성장하면서 근육은 점점 약해지는, 그런 슬픈 병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입학하는 그 순간만큼은 충분히 행복해했다. 


5-6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단단해지지 못할 줄 알았고 매일 눈물 바람으로 살 줄 알았던 나는 이제 꽤나 단단해졌다. 그 동안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냈냐고 물어본다면 그건 아니다. 나를 담금질하는 고난이 있었는가 돌이켜 보아도 그냥 아이를 키우며 힘들었던 그 정도이다. 아마 아직 병의 진행이 가속화되지 않았고 증상의 발현이 거의 없는 것과 같은 상태라 그런 것이지, 내가 단단해진 것은 아닐 지도 모르겠다. 


보통 3~4살이 되면 스테로이드제를 먹어서 보행할 수 있는 시간을 늘려 주어야 하는데 아직은 약의 도움 없이 보행을 하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달리기를 할 수 있으니, 뭐 그리 힘든 일이라고 징징대겠느냐마는, 그저 또래들과 놀다가 혹시나 다치지는 않을까 남몰래 노심초사하면서 남보다 유난을 떨며 놀이터에서 아이를 주시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것 말고는 그저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감사하기만 한 일상인 것을.


 물론 왜 나에게만, 우리 가족에게만, 내 아이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나의 인생은 왜 이런거냐며 원망을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느니 지금이 가장 건강할 때일 아이에게 좋은 경험들, 추억들을 많이 만들어 주자고 다짐하며 지금의 행복에 집중하려고 무던히도 애써왔다. 물론 처음에는 그렇게 애써야지만 가능한 일들이었다.  머릿 속으로 쉴 새 없이 관련 질환에 대해서만 생각하느라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날들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눈물도 줄어들거라고, 조금씩 적응될 거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상상조차 할 수 없이 힘겨워했었다. 그런데 진짜로 시간이 약이었다. 조금씩 괴로운 생각을 하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행복하게 놀러를 가서도 억지로 슬픈 생각이 차오르려는 것을 눌러야 하던 시간도 줄어들었다. 아이의 걸음걸이 하나에도 곤두서던 마음을 조금은 침착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누구나 저마다의 아픔은 있기 마련이고 나의 아픔은 그저 내 인생에서 한 부분일 뿐이다. 아이가 아프다고 하더라도 나는 나의 인생을 살아갈 것이고, 나의 인생이 있듯이 아이의 인생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내가 헤쳐나가야 할 길은 상상하는 것보다 더 험난할지라도 나는 그냥 내 인생을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내 인생은 왜 이러냐고 듣는 이 없는 원망보다는 그냥 나의 인생의 한 컷이라고 받아들이며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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