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3살에 첫 어린이집을 갔다. 첫 어린이집 원장과의 면담에서 아이의 병명을 오픈하고 어린이집에 잘 다닐 수 있을지를 염려하며 상담하였다. 그땐 나조차 질환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그저 미리미리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원장에게 아이의 병에 대해 알려주었다. 하지만 원장은 그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잘 돌봐주겠다고 했다. 생소하다 보니 그냥 그런가 보다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건 나의 실수였음을 깨달았다.
우리 아이는 말이 조금 느렸는데, 일을 하면서 어린이집에 맡기다 보니 내가 을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아이가 자꾸 공격적인 행동을 한다며, 하원할 때마다 원 생활을 힘들게 한다며 20분이고 30분이고 아이가 옆에서 듣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했다. 그땐 첫 아이라 어찌할 줄 몰라하며 그저 듣고만 있었는데 전후 상황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니 나는 그저 죄송하다고 할 뿐이었다. 그때는 도움 받을 곳 없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을 했었기 때문에 그저 죄송하다고 말하는 것 말고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 보니 아이가 친구로 인해 어떤 불편한 상황을 경험하였고 그 방어 기제로써 했던 행동이었는데, 그때 좀 더 아이를 믿고 선생님께 전후 상황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종종 선생님은 멀쩡히 걷고 뛰는 아이를 왜 걱정하느냐며, 근육은 운동하면 되고, 아이를 위해 기도해 줄 테니 기적이 일어날 거라고 하였다. 나도 기적을 믿고 싶지만, 현실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일어날 수 없는 기적을 꿈꿀 수 없었다. 이 병은 운동으로 낫는 병도 아니고, 바라는 것은 기도나 기적이 아니라 신약의 성공뿐이다. 기적이 일어난다면, 신약의 임상이 성공하여 보험적용된 가격으로 우리가 처방받을 수 있게 되는 일일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약이 개발되기 전까지 최대한 근육과 신체 기능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다.
그렇게 1년을 버티고 휴직을 하며 그 어린이집과는 작별했다. 그다음 어린이집은 정말 너무나도 감사한 곳이었다. 이번엔 한 번 경험을 해봤으니 자세히 병명을 말하지는 않았다. 태어날 때 근육이 약한 아이였다고, 조심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며 신경 써달라 부탁을 했다. 아이들의 차이를 인정하며 믿고 맡겨달라는 원장 선생님의 말씀이 신뢰가 갔고 정말 감사했다. 그리고 휴직을 해서 시간적 여유가 생겨 언어치료도 시작하였다.
우리 아이는 참 귀엽다. 우리 가족 눈에는 정말 잘 생기고 귀엽다. 예전 어린이집에서는 우리 아이보고 집에서나 자기 자식이니 귀엽고 예쁘지 행동이 어떻고 저떻고 듣고 있는 아이 앞에서 별의 별 말을 다했는데, 새로운 어린이집에서는 우리 아이의 모습을 그대로 봐주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걱정이 되니 이전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며 문제행동이 있을 수 있다고 하였다. 나는 아이가 불편한 상황이 생겨서 그랬다는 것을 알고, 그 상황에 대한 대처를 하는 것이 어린이집에서 할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을이었던 나는 말을 하지 못하고 매일 죄송하다고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새로운 어린이집에서는 아이가 싫어하던 상황을 잘 관찰하고 그 상황에서 아이를 이해해주고 그 원인이 되는 상황을 해결해주니 문제행동이 몇 번 보이고는 사라졌다. 아이는 이해를 받기 시작하고 불편한 상황이 사라지니 문제행동이라고 보던 행동이 사라진 것이다. 아이에게 문제 행동의 원인이 가정에 있을 수도 있지만 심한 경우가 아니라면 전후 상황에 따라 일어날 수 있는 아이의 방어기제로 볼 수 있다. 이런 부분은 원에서 부모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상의하고 원에서 필요한 관리를 해주어야 할 부분이지, 아이 앞에서 말을 가리지 않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은 옳지 않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 때까지는 그래도 아이의 신체 기능이 좋을 때라 친구들과 노는 경험을 많이 만들어 주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중간에 이사오다보니 없는 사회성을 발휘해 엄마들에게 다가갔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4살이었던 아이가 5분도 채 뛰지 않았는데 절뚝 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날쌘 남자친구들을 좇아 달려가는데 따라잡기가 쉽지도 않을 뿐더러 다리가 아픈지 따라잡지 못하자 속상해하며 짜증을 냈다. 나는 안그래도 매일매일 마음을 다잡아도 아직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증상이 시작된 것 같아 눈물이 터질것만 같았다. 친구를 따라 잡지 못해 속상해하며 절뚝절뚝 뛰어가는 아이를 보는 게 감당하기 어려워 집에 가지 않으려는 아이를 들쳐업고 집으로 왔다. 아마 그 날 나는 울었었겠지. 아이의 병을 안 뒤로 우는 날이 많았던 나는 그날 내가 울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뒤로 며칠 뒤 한 번 더 어린이집에서 절뚝거리는 모습을 보고 선생님이 걱정하며 말씀을 하셨다. 아이는 놀고 싶은데 힘들어 하니 쉬게 하려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아 상의를 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묻는 말에 여러 사람이 들락거리고 있는 어린이집 현관에서 나는 "저도 모르겠어요" 하고 울어버렸다. "저도 처음이라 방법을 모르겠어요." 라고 대답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감사하게도 선생님은 나를 달래며 선생님이 함께 방법을 찾아보자며 잘 돌봐줄테니 걱정말라고 해주셨다. 두 번째 어린이집은 아이가 있는 선생님들이 많았는데 항상 "우리를 믿고 맡겨주세요, 저희는 어떤 아이든지 돌볼 수 있어요." 라며 안심시켜줘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었다. 다행히도 일시적인 상황이었는지 그 뒤로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 그 날 절뚝거리며 울상을 짓던 아이가 생각나 마음이 아프다.
그 뒤로는 친구들과 만나 놀 때마다 조마조마해서 빨리 집에 데리고 가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신체적으로 뚜렷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나만 마음을 졸이고 간혹 아이의 손을 잡고 뛰는 친구들을 보면 걱정이 되지만 티 낼 수가 없었다. 그나마 좀 가까웠던 친구 엄마에게는 말을 했다. 아이들이 손 잡고 뛸 때면 지나치게 제지하다 보니, 친구 엄마 입장에서는 기분나쁘지 않을까 싶어 어쩔 수 없이 그 이유를 설명할 수 밖에 없었다. 함께 걱정하고, 조심해주기는 했지만 한번씩 열심히 운동하면 괜찮아질거라는 속 모르는 이야기에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일반 상식으로는 당연히 운동을 하면 근육이 생기니까, 운동을 해서 극복하면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였어도 근이영양증을 몰랐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테니까.
그 뒤로도 친해진 아이친구들과 만나 노는 것은 꽤 힘든 일이었다. 나도 모르게 아이가 다칠까 염려되고 주변사람들에게 움츠러들고 눈치를 보게 되어 아이들과 만나서 노는 상황들을 피하게 되었다. 물론 이건 나의 문제이지 같은 상황이라도 나와 다르게 대처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나는 그냥 외톨이 엄마가 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