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사적인 취향

장르물

by 윤지WORLD

알고보면, 우리는 저마다의 무기가 있다.

취향이라는 무기.

이 무기는 인생이 주는 온갖 중상모략에 맞서

각자의 내밀한 시간 속에서 내적으로 기능한다.

뭐 요즘은 너튜브 같은 매체를 통해 개인의 취향을 전시하면서 외적인 생산기능을 할 수도 있는 세상이긴 하다.

나는 생산 기능과 무관한 나의 브런치를 택했다.


세상도 나도 한 치 앞을 전망할 수 없이 을씨년스럽게 돌아갈 때,

나는 더 스산한 네모 화면 속 범죄수사물 현장으로 나를 피신시킨다.

그 속에서 펼쳐지는 심각하고 잔혹한 남의 상황을 안전하게 관망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의 평화가 찾아 온다.

가상의 남의 불행에 안정을 취하냐고 비난한다면 저항없이 받아 들인다.

그리고 비극의 정화 기능을 더 없이 만끽하겠다.

이 땅의 재능 있는 그러나 아직 충분히 펼쳐보지 못한 이야기꾼들이여 카타르시스 고퀄장르물들 많이 많이 만들어 주십사.


언제나 나를 고조시키는 장면 하나 투척!


S# 재개발을 앞둔 주택가.

외벽의 일부는 내려 앉았고 군데군데 철근이 삐져 나왔고 스프레이따위로 자비없이 칠해진 낙서가 보이는 그런 철거지뷰.


그곳을 수색하는 젊고 스마트하며 잘생긴 형사.

아직 서른이 못 됐는데 직급은 경위쯤 되는,

그래서 나이는 더 많은데 직급은 낮은 형사들로부터 싸가지 없는 경대새끼 소리를 뒤로 들으면서도 아랑곳하지 않는 깡 소유.


이토록 재수없고 간지나는 형사가 멋은 있는데 불편해 보이게 (꼭)수트 입고 철거지뷰를 헤집고 다니며 용의자를 수색한다.

그리고 날 밝기 전에 끝내 용의자를 검거해 와선 수트 차림으로 날라다닌 걸 트집 잡기 뭐하게 종료된 현장을 먼저 빠져 나가면서 남은 이들을 계면쩍게 만든다.


난 이런 클리셰에 왜 매번 빠지는가.

라는 하찮은 고찰을 하면서 범죄수사물을 보는 동안 난 또 살 만해져 버렸다.

그러니 뭔가 힘이 잘 안 나는 분들 각자의 무기들 개발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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