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by 윤지WORLD

안 먹어도 배부른 나날이었다.

설렘은 식욕을 앞서는 것이었으며 그 대단한 설렘의 대상이 겨우 화면 속 모르는 타인이라는 사실 역시 대단히 수치스럽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기꺼이 내 일상을 할애하게 만든

어떤 경호원이 있다.

나도 나이가 있고 가오가 있지 더이상 어지간한 네모액정 속 인물엔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현실 속 인물에는 더..)

나 외에는 좀체 관심 두지 않는 걸 미덕으로 여기는 자기중심형 인간의 삶은 좀 그렇다...

나의 올해는 안 하던 짓을 하는 해인가 보고,

해서 어느 저명한 인물의 경호를 맡은 한 잘생긴 경호원이 눈에 들어 오게 되었다.


처음엔 그냥, 하 수상한 시절 속 누군가를 넘겨 보다가 그냥 얻어 걸린 한 장면이었다.

외모지상주의자인 내 시야에 하필 들어 온 게 불필요하게 훌륭한 비주얼일 게 뭐람.

근데,

이 경호원의 경호대상이 원체 저명한 터라 몇번 좋아요를 눌렀더니 매일 눈 뜨면 실시간 동선을 담은 쇼츠가 떠서 눈을 꿈뻑꿈뻑 뜨게 만들었다.

그렇게 일어나 루틴처럼 오늘의 경호원을 확인하고

그러면서 출근 준비를 하고 강의실에서 열라게

<임차인 보호를 위한 임대차 계약의 갱신>에 대한 수특 지문을 떠들어 대고

임대차 계약의 갱신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아이들이 사적인 호기심을 빙자한 딴소리를 걸어 사실상 수업 종료를 시도하려 할 때

기꺼이 말려 들어

나의 경호원의 멋있음을 설파하고 싶은 것을 억누르느라 힘든, 그런 나날이었다.


날도 봄이어서 혼자 걷는 벚꽃길이 이리 설렐 수 있어도 되나 싶은 경호원 시차를 살던 어느 날.

루틴처럼 뜨던 쇼츠 속 잘생긴 경호원만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나는 이상하게 불길한 쪽으로 촉이 좋은 인간이고

그날 하루만 어디가서 빠져 있는 게 아닐 거란 불길이 현실이 되었다.

물갈이 되듯 굴러 온 다른 이들로 박혀 있던 기존 경호원이 싹다 교체된 듯 했다.


혼자만의 절망 타임이 시작되었다.

자다 봉창 두드리듯 새로 뜬 쇼츠 속엔 있길 바라다 절망의 절망을 확인사살하는 시간이었다.

이건 뭐 연예인 덕질이었으면 정보라도 있지

자유인이 된 경호원의 추후 행방는 영원히 알 수 없게 됐고 경호원이라는 직업이 이렇게 순간에 대체되는 것인가 아니면 임대차 계약만료처럼 경호업체와의 계약이 만료된 것인가에 대해 헤아리는 헛짓거리를 해댔다.

(에이스경호원을 질투한 어떤 내부자와 외부자가 만든 알력다툼의 결과인가에 대해 아주 하찮은 궁예질을 한 것은 심히 수치스러워 더 밝히지 않겠다.)


정신나간 짓을 하던 나는 그만 정신을 차려야 했고

고찰을 해보았다.

나는 왜 그토록 그에게 꽂혔는가.

왜 이 일방적 끝맺음을 놓지 하는가.


난 자유의지를 한껏 쓰는 삶인 만큼

응당 선택에 따르는 모든 감당할 것을 감당하느라 주체적인 방향으로 살아 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센 척을 하게 된다.

허세 가득한 깡통의 센 척 말고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돌같은 내공,

우아하게 웃으면서 말로 조지는 촌철살인,

무림 속 은둔 고수 같은 기를 갖고 싶었다.

(하여 요즘은 손자병법을 읽는 중이다.)


세상 제일 이해 안 가는 단어가 자기연민이며

기회될 때마다 울 준비가 되어 있는 비련의 여주인공을 보는 내 눈이 오글거려서 채널을 돌려 버리는 때가 종종 있었다.

그렇게 단단한 돌이 되다 못해 망부석이 되어 버리는 게 아닌가 싶은 때쯤

퇴근길에 날아든 어느 벚꽃잎 하나에

울컥한 때가 있다. 황당한 일이다.

그날은 퇴근 직전에 고3 학생 한 명이 수줍은 벚꽃 얼굴로 초코우유를 사다 건넨 날이었는데?

신나게 마시며 걷던 초코우유에 불시착한 황당한

울컥.

작고 아름답고 일상적인 것들은 힘이 세다..

그런 순간에 생각나는 경호원이었다.

경호원의 피지컬이 우월해서이기도(이게 맞는 듯)

안 어울리게 착해 빠진 큰 눈이 아련해서도

경호대상 수행중에 다른 많은 시민의 안전도 케어하며 건네던 단호하고 예의바른 문장도.

생각나는 것이

그 순간은 그냥 어느 초딩이 되어 보호 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필요하면 뒤로 완벽하게 숨겨줄 것 같은 나의 경호원이 간절했나 보다.


오늘의 실시간 그를

다시 볼 수 없게 된 지금,

얼마간의 절망과 상실감을 뒤로 하고

나는 다시 개썅마이웨이망부석으로 돌아왔고,

이 일방적인 내면의 파동을 원천 삼아 집필에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되겠는 기회주의적 인간으로 나아가려 하는 바.

나의 경호원은 나의 대본 속에서 재구성되고 있다.

히히.


keyword
이전 14화이토록 사적인 취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