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을 쓰는 유형은 다양한데
지금은 현역작가가 된 내가 아는 어떤 언니는
쓰고 싶은 씬부터 대중없이 써 놓고
취합하는 식의 집필을 선호했다.
난 연수원에서 배운 FM방식으로
클라이막스를 염두해 놓고
1장 2장 3장 틀을 세운 뒤
꾸역꾸역 씬을 채워 넣는 대본쓰기를 고수했는데
그러다 보니 하기 싫은 시험공부를 임박해서 하는 고딩같은 모습으로 언제나 마감에 쫒겨서 허접한 대본을 간신히 제출하는 가망 없는 지망생이 되곤 했다.
그렇게 별로인 연수시절을 지났고
현업에 집중해 살아가며 틈틈이 습작을 이어 나가고 있는 지금.
난 아는 작가언니와 같은 방식으로 대본을 쓰고 있는 나와 조우했다.
그땐 딱히 와닿지 않았던 쓰고 싶은 씬부터 쓰는 그녀의 방식은 '쓰고 싶은'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내가 거창한 주제의식을 갖고서 클라이막스를 향해 가야 한다는 의식에서 시작했다면 그녀의 집필은 즐거움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런 두 대본은 쓰는 속도가 달랐을 것이고
받는 애정이 달랐을 것이었다.
이젠 씬부터 쓰는 나의 좌뇌우뇌는
똥 누러 갔다가 생각난 장면을 똥 싸면서 구상했다가 머리 감으면서 다음 씬으로 연결 짓고 머리 말리면서 완성하는 대중 없지만 멈추지 않는 샘이 되었다.
그런 집필을 하면서 알게 된 또 하나의 신기함!
내가 의도하지 않고 쓰게 된 씬 중에는 언젠가 내가 겪어 보고 싶었던 누군가의 부러운 것 혹은 살면서 인상 깊었던 것들이 현재 쓰고 있는 극중 상황에 맞게 구현되어 있다는 점이다.
써 내려간 씬을 보다 까먹은 줄 알았던 지난 날의 기억이 중첩되면서 언젠간 쓰고 싶던 씬을 써 버린 나에게 약간의 소름이 끼칠 때가 있는 것이다.
이래서 작품은 작가의 인생여정이 녹아 있기 마련이라는 건가.
잊을 수 없는 희노애락의 순간과
의무적이고 반복적으로 펼쳐지는 노동의 일상과
그런 삶을 살아온 자의 결함까지도.
내가 산 오늘이 모여서 미래의 내가 만들어 진다.
내가 산 별 볼 일 없는 오늘이 앞으로 내가 만들어 낼 온갖 장면들의 습작 노트가 된다.
다른 하루는 하루도 없다고 하니
난 매일의 노트를 눈만 떠도 새로이 받게 되는 셈이다.
쓰고 싶은 씬을 수준급으로 쓸 수 있는 좌뇌우뇌의 가동풀을 최대치로 만들기 위해 오늘치의 띠부띠부씰을 신나게 모아 보자!
오늘이 엿같을수록 미래의 나에게는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