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üyükada, TURKEY
이상하리만치 덥다. 정말 일 월이 맞는 걸까 하고 생각이 들 정도로, 1월 5일의 이스탄불은 20°를 웃돌았다.
선착장에 가려면 버스를 타야 해서 어김없이 교회를 지나쳤다. 사실 선착장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어딜 가든 버스를 타야 하는데 그러면 항상 버스정류장엘 가야 해서 교회를 지나치는 건 매일 있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일월이 되니 시간이 흐른 느낌이 들었고 오늘은 교회 서큐리티분과 꼭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진을 찍자는 말에 환한 미소를 보이셨고 내 생각이 누군가를 화나게 웃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더 기분이 좋아졌다.
어제, 오늘 배를 타고 여행을 하지만 오늘 여행이 어제와 다른 점은 어제 간 쿠즈군주쿠는 버스나 전철을 타고도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오늘 가는 뷰유카다는 이스탄불에 있는 네 개의 섬 중에 가장 크고 먼 곳이며 배로만 이동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사실 터키에 오기 전에 터키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이스탄불, 케밥, 카파도키아의 열기구뿐이어서 이스탄불에 지내는 동안 놀란 사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이스탄불에 섬이 있다는 사실도 내게 놀라운 사실 중 하나였고 배를 버스나 전철 같은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집에서부터 바리바리 짐을 싸왔다. 항상 카메라가 함께라 더 그렇기도 하지만 오늘은 자전거를 탄다길래 혹시 몰라 간식거리에 휴지, 두 개의 보조배터리, 800미리짜리 물까지 챙겨 왔다. 옛날에는 그러지 않았던 거 같은데 점점 준비성이 철저해지고 예상치 못한 상황을 두려워하는 것만 같다.
선착장에 도착해 푸른 하늘에 기분이 좋아 그에게 카메라 어플을 켜 핸드폰을 전달해 줬고 푸른 하늘 아래 나를 담았다. 사실 처음에는 그의 사진실력보다 생명력이 없는 삼각대의 구도를 믿는 게 마음이 편했지만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그의 실력이 괜찮아지기만을 바랬다. 나의 잔소리에 사진을 찍을 때마다 눈치를 보는 그가 안쓰러웠지만 아무래도 이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사진으로라도 남기고 싶은 나의 마음은 여전히 지워지지가 않았다. 2시간 30분쯤 배를 탔을까, 우리는 마지막 종착지에 도착했다.
섬이라 그런지 선착장에 도착하자마자 숯불에 구운 생선 냄새가 섬을 가득 메운 거 같았다. 아침 겸 점심으로 생선 요리도 나쁘지 않은 나였지만 아침식사에는 좋지 않은 거 같다는 그의 고집에 빵집으로 향했다. 터키를 포함한 지중해 문화권에서 즐겨 먹는 부렉은 크로와상 같은 느낌인 파이류의 음식으로 안에 넣는 재료마다 종류가 다양하다. 그중에도 내가 좋아하는 부렉은 ’수부렉‘인데 겹겹이 쌓인 치즈와 크로와상 같은 생지의 조화가 아주 완벽하다. 가게마다 맛도 느낌도 천차만별이라 우리가 주문을 할 때면 항상 그의 느낌으로 심의를 거치는데 그는 크게 나빠보이지 않지만 크게 괜찮아 보이지도 않다고 했다. 배를 채우기 적당히 음식을 먹고 우리는 자전거를 빌리기로 했다.
식사를 끝내고 티를 마시고 있었다. 라이터가 없던 그는 우리 자리 바로 옆에 있던 자전거 렌털샵에서 라이터를 빌렸다. 그리고 또 스몰토크가 시작되더니 그는 빌린 라이터와 함께 돌아왔다.
‘라이터 돌려줘야지 왜 그냥 왔어?’
‘자기 안 쓴다고 가지라던데?’
스몰토크로 라이터를 얻을 수 있는 터키였다. 우리에겐 사라진 타인에 대한 정이 아직 남아있는 나라임에 분명했다. 여행지가 아닌 도시에서는 빵집에 가서 배고픈데 빵을 좀 줄 수 있냐 내일 와서 돈을 내겠다 하면 당연하다는 듯이 빵을 준다니 굴러다니는 낡은 라이터 하나쯤으론 놀랄 것도 없었다. 결국 그 자전거 가게에서 자전거를 빌렸다. 처음엔 비싼 가격을 불렀지만 터키어로 몇 마디 대화를 나누더니 50% 정도 할인 되는 금액을 불러 기분 좋게 자전거를 빌렸다.
자전거를 타고 지도를 켰다. 지도를 키는 게 첫 번째 일이었지만 오랜만에 본 자전거에 눈이 돌아가 무작정 페달을 밟아버렸다. 제발 이 섬에는 오르막이 적기를 바랐는데, 얼마 타고 가지 않아 광대한 오르막을 맞이하고 겨드랑이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전거를 사랑하게 된 지 언 20년, 이 정도 오르막에 자전거를 멈춰세우는 건 자존심이 상한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는 자전거로 경주를 하고 있었고 말이다. 중간에 있는 뷰포인트에서 잠시 멈춰 서기로 약속하고 우리는 파란 하늘 아래서 미소를 가득 머금고 자전거를 탔다. 길가에 유기견이 가득하다. 아니 유기견이라는 표현이 맞는 걸까? 주인이 버리지 않았다면 그냥 그들은 이곳에 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 길가에 도시를 집 삼아 머무는 강아지들이 가득하다. 우리나라처럼 팔뚝만 한 강아지가 아니라 일어서면 나 정도의 키를 가지고 있는 그렇게 큰 강아지들이 아무런 시선도 의식하지 않은 채 곳곳에 널브러져 있다. 딱 하루만 저 강아지들처럼 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눈에 초점이 흐리고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할지언정 그냥 내일 내 걱정은 미래에 대한 걱정은 잠시 미뤄두고 그냥 오늘만 즐기는 그런 삶 말이다.
섬의 끝을 돌아 목적지 없이 한참을 달리다 리조트를 지나쳤다. 여름에만 운영을 하는 것 같아 보였던 이 리조트의 입구에는 리조트의 내부와 전경을 보여주는 광고판이 있었다. 읽을 수 없는 언어들과 멋진 사진들이 가득했다. 그의 말로는 이 섬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다가 원래 부자거나 아니면 돈을 많이 벌었던 사람들이 은퇴를 하고 편안히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 이 섬으로 들어온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이곳의 물가는 어마무시했다. 오랜만에 생선 요리를 먹고 싶어 알아봤던 식당들이 죄다 우리나라에서 먹는 금액보다 비쌌으니 말이다. 리조트의 광고판을 보는 순간 물가가 비싼 이곳의 저렇게 멋진 이곳은 얼마나 더 비쌀까, 또 내가 여름까지 돈을 모아 온다고 한들 그 돈을 아깝지 않게 쓸 수 있을까, 그냥 내가 이런 곳에 머물 수 있는 사람일까 하고 생각했다. 여행을 할 때 호텔에서 묶는 일은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한 나이지만 어마무시하게 좋은 것들을 보면 이런 생각들이 머리에 뒤섞이는 나였다.
리조트를 지나고 나니 식당 하나가 나왔고 그 옆에 꽤나 널찍한 잔디밭이 보여 이곳에서 쉬다가 항구 쪽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피크닉 매트 따위는 챙겨 오지 않았지만 집에서부터 챙겨 온 초코바와 감자칩 그리고 미네랄워터를 꺼냈다. 맥주를 사자고 할 때 사지 그랬냐는 그의 말에 나는 이렇게 맥주가 잘 어울릴 풍경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네가 더 설득하지 그랬냐며 반박했다. 과자 냄새를 맡고 고양이들이 점점 모이더니 우리는 7마리는 족히 되는 고양이들한테 둘러싸여 있었다. 고양이가 많기로 유명한 나라인 터키에서 이 정도는 별 놀랄 일도 아니었지만 그들이 싸움을 하려는 걸 알아채는 그가 더 대단했다. 고양이의 싸움을 중재하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사진을 계속 찍는 내게 그냥 이 순간을 즐기면 어떻겠냐는 그의 말에 딱 바로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나는 기억을 먹고사는 사람이라 매 순간을 남기는 일이 나에겐 원석을 깎아 보석을 만드는 일과 다를 바 없는데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저 그가 어느 날 우리의 추억을 되돌아볼 때 나의 이 행동들의 소중함을 느끼기만을 바랬다. 머릿속에서 문장이 계속해서 쓰였다가 지워지기를 반복했다. 결국 나는 ‘나한텐 너무 소중한 일이야.’ 하고만 되뇌었다.
자전거를 반납하고 젤라토 가게를 찾다가 본섬으로 돌아가는 배를 타기 1분 전에 선착장으로 들어섰다. 젤라토를 하나씩 들고는 ‘그래도 우리 해냈어.’라고 여러 번 이야기를 나누곤 정적 속에서 쉼을 찾았다. 카디쿄이에 내려 간단히 저녁을 먹고 돌아가기로 했다. 아이친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추천했고 부락은 왁자지껄한 펍을 추천했는데 우리는 펍으로 발길을 향했다. 훗날 그들의 앞에서 ‘그 펍 완전 내 취향이었어.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무조건 또 갈 거야.’라고 하는 나를 보고 아이친은 그 시끄럽고 아메리칸 락만 나오는 어두컴컴한 펍을? 이런 표정을 지었고 부락은 거봐 내가 너 취향 잘 안다니까?라는 표정과 함께 무언가 승자의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자전거를 타고 항구에 돌아오는 길에 끝내주는 석양을 맞이했다.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듯한 노을이 본섬의 번지르르한 건물들을 비추면서 그 아름다움의 위대함을 더 보여주는 듯싶었다. 주절주절 그런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가득 채울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아무도 봐주지 않는 누구나 그냥 스쳐가는 것들에 그냥 덮어두면 좋을 감정들, 누군가한테 들키고 싶지 않은 옅은 속살 같은 것들에 더 마음이 쓰인다. 굴러다니는 라이터를 받은 마음, 신호 앞에 누워있는 내 몸만 한 강아지, 배 선착장 교통카드 리더기 위에 앉아있는 고양이, 그리고 가지지 못하는 것들을 본 나의 마음 같은 것들이 지워지지 않는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JAN5